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혼과영성 열달째 영혼과 영성 III 2-3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하늘이슬 2024. 7. 7. 13:19

영혼과 영성 III 2-3-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오늘 여러분과 제가 볼 것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 우리 같이 한 번 찾아볼 성경구절은 창세기 12장 1절부터 9절까지 먼저 보 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9절’입니다. 다 같이 시작.

“창12:1~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 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 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 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 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 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아멘. 우리 하나만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1장 앞쪽으로 가서 26절. 예, ‘창세기 11장 26절’입니다. 네, 다같이 26절 다같이 시작.

“창11:26”

26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 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그 위에 24절 25절 한 번 읽어봅니다.

“창11:24~25”

24 나홀은 이십 구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 십구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여러분 이 아브라함의 얘기를 볼 때 아버지 데라의 얘기가 나오죠, 데라. 데라의 얘 기가 나오는데 70세에 아브라함과 누구를 낳았다는 거예요? 아브라함, 그다음에 나 홀, 네. 하란을 낳았어요. 하란의 아들이 누굽니까? 롯이죠 그죠. 롯을 데리고 아브라 함은 떠났습니다. 그럼 70세에 세쌍둥이를 낳았냐? 그게 아닌 것 같고요. 이 데라가 부인이 좀 몇 명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래도 지금 이게 낳은 자는 남자만 얘 기하고 있죠, 일단. 사래도 이복누이라 그러잖아요. 이복누이. 그래서 데라가 70세에 아들 3명을 낳은 것 같아요. 그리고 부인들이 낳은 것 같습니다. 자, 오늘 창세기 12 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그죠. 근데 왜 하나 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잖아요. 아브라함을 통하여 많은 백성을 이루고 결국은 이 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택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 브라함이 나타나서, 어디로 나타나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 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거기를 떠나라는 거예요. 그 왜 거기를 떠나라고 했는가?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떠나라고 했는가? 이 얘깁니다. 우리 여호수아 24장 한번 가보겠습니다. 여호수아 24장.

여호수아 24장 2절에서 3절 한 번 가봅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서 3절.” 다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여호수아 24:2~5”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 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었노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그 뭐라 그랬어요?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랬죠. 2절 보니까 “곧 아브라함 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이렇게 되어 있죠.

그러니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그 계획을 갖고 계신데, 하나님 백성을 삼을 계획을 갖고 계신데, 아브라함을 뽑았잖아요. 그럼 그 갈대아 우르에서는 왜 안 되냐 이거예요. 보니까 우상을 섬기고 있더라는 거예요.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야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가나안을 주실 수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요 본문에서 우리가 처음에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은 뭐냐 하면, 우상의 자리에서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한국에서 이렇게 떠나왔어요. 떠나 와 서 예수를 믿게 되고, 또 이렇게 참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쓰임 받는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제가 만일에 한국에 있었다면, 저는 저에게는 학문이 우상이었고, 명예가 우상이었고 그랬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선택했기 때문에, 창세 이전부터.

써야 되기 때문에 불러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불러내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러분 저는 어릴 때부터 미국이란 나라가 내 안에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리 고 아프리카란 나라가 있었고. 하나님이 참 희한해요. 믿기 전부터 내 안에는 그러니 까 내가 미국이란 나라가 나에게 참 언젠가는 가야 된다는 그게 강하게 온 때가 언제 냐? 중학교 때입니다. 예수도 믿기 전이예요. 나는 꼭 미국을 가야 된다는 게 있었어 요. 참 희한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제가 거기 있었으면 우상을 섬겼다. 할렐루야. 안철수가 저랑 같이 공부했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불교인 것 같애. 불교. 하나님은 왜 그를 안 불러냈을까?

여러분 있잖아요, 참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고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행하시는 일들을 보면 너무너무 감사해요. 너무너무 감사해. 그래서 그 사람이 들으면 별로 안 좋아하 겠지만 말이예요. 그렇지만, 왜 하나님은 불러내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왜 미국 왔을 까요? 하나님이 왜 한국에 두시지 왜 미국으로 보내셔서, 미국 와서 예수 믿은 사람 손 한 번 들어 봐요. 할렐루야. 다네~

거의 한국 있을 때부터 예수 믿은 사람? 두 사람 밖에 없네. 손 안 드는 것 보니까. 예, 여러분. 여러분이 한국에 있었으면, 저도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우상을 그대로 섬 기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우상은요, 처음의 그 큰 우상, 우리를 하나님 곁으로 가는 걸 막는 흑암에 거하도 록 그 우상도 있지만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우 상들이 또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늘 우리는 그 영혼이 깨어 있어서 내가 혹이라도 하나님 외에 내가 하나님을 알고 나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는 가? 그것도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의 자리를 떠나야 내 마음

 

안에 가나안, 현세 천국,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심령 천국, 영원 천국까지 주신 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왜 불러내냐?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게 첫째죠, 그죠. 이게 구원입니다.

영원한 불못에서 구원 받는 거. 백성 삼으시기 위해서 부르셨고,

두 번째는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부르셨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 젖과 꿀은요, 누가 주시는 거냐?

하나님이 주시는 건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뭐냐? 내 안에 내 심령 안에 심령천국이 이루어 지는 거.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는 나라. 가나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얘기합니다. 그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내셨어요.

어디서? 흑암 중에 거하던 우리를, 할렐루야. 귀한 빛으로 우리를 불러 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도 그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낼 때도 그랬고, 우리도 그랬는데 불러 내셔서 구원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디로 인도하시냐? 가 나안으로 인도하시더라는 거예요. 구원하시고 나서, 구원하시고 나서는 우리를 가나안 으로 인도하시더라. 그런데 이 가나안을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내 안에 통치하는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은 광야를 거치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광야를 거치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광야가 없다면, 가나안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그 다음에 가나안을 주시기를 원 하는데 그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는 나는, 우리는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되더라는 것 입니다. 광야를 거쳐야 된다.

여러분, 이 광야라고 하는 것은 이 광야라고 하는 것은 헐벗고, 주리고 그런 데죠. 그 죠. 그렇지만 거기 안에서 하나님이 안 계시냐?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떠나 지 아니하시잖아요.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헐벗고 주리고 목마르고 하는 이것에 대하여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하고 살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광야는 하나님께서 왜 있게 하시냐?

하나님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의 물질을 앗아가시고 얻게 하시고 안 되게 하시고 어려움이 있게 하시고 환난이 있게 하시고...

왜 있게 하신다고요? 내가 눈에 보이는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걸 배운

 

자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죠.

가나안은 누가 얻냐? 누가 가나안으로 들어 가냐?

누구에게 하나님이 그 통치하시는 나라가 그 심령 안에 심령천국이 임하느냐? 하나님 으로 사는 걸 배우는 자에게.

여러분, 저는 전도사 시절 때 참 물질적으로 궁핍했어요. 너무 궁핍했어요.

1불 하나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돈은 안 주시는데 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게 왜 그런가, 처음에는 잘 몰랐었어 요. 아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좀 풍족하게 해 주시지, 내가 원하는 건 좀 풍족한 건데 내가 어렵지 않게 주의 길을 가면서 말이야. 그걸 원하는데 정말 간당간당 그렇 게 해 주셨어요.

근데 그러면서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걸 꼭 보여주시는 거야. 왜 그러냐 이거예 요, 왜 그러냐 이게, 난 이게 Question이었어요. Question. 그러면 함께한다는 사인 이라도 보내 주지 말지. 그렇잖아요. 근데 인제 제가 생각을 해 보는데 저에게 신명 기 8장 3절 “너는 보이는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 다”는 거를 철저하게 훈련시키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내 몸으로 경험하고 내 삶으로 경험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가 깨닫습 니다. 할렐루야.

이 광야의 삶을 지나고 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 광야의 삶이 사실은 나에게 너무 복인데도 그것을 잘 모르더라는 거예요. 그 때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드리는 믿음이 필요한데 제가 얘기했잖아요. 어떤 식으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걸 보여주느냐? 제가 얼마나 가난했냐 하면은 저 뒤 식탁에 놓는 네모잡이 종이 있잖아.

그 신학교를 운전하고 가야 되는데 40분을 운전해서 가야 되는데, 5분 타고. 가스비 는 있었나 모르겠네. 내 수중에 1불이 없었다니까.

근데 가는데, 99센트의 두루마리 휴지가 그 때, 요즘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 때는 참 처음이라서 그렇지. 두루마리 휴지가 6개 들어서 1불이야. 그걸 사서 썼 거든요. 근데, 손을 씻고 나서 부엌에서 이렇게 닦으려고 휴지를 두루마리 휴지를 구 해 닦으니까 휴지가 더 묻는 거야, 내 손에. 근데 빨리 가야되는데 그걸 떼 내려니 시간이 더 걸리는 거예요. 오 마이 갓.

그래서 내가 중얼중얼 했어. 뭐라고 했냐? 하나님, 아무리 나한테 돈을 안 줘도 이거 네모잡이 저거는 안 붙잖아, 손에. 저거 사서 쓸 만한 돈은 줘야 되지 않겠냐고. 그러 고 신세한탄, 신세타령인가 뭐 하여간 하나님한테 한 마디 뱉고 지나갔어요. 나왔어 요. 하나님, 아무리 나한테 안 줘도 저거 살 돈은 좀 줘야 되지 않냐고. 그러고 나왔 거든요.

근데, 5분을 타서 20분을 내가 운전을 했어요. 아침이야. 그 때가. 8시, 9신가 그래.

 

운전을 막 20분을 하는데, 5분이니까 그 한 60마일, 50마일 속도로 갔을 거 아니야, 고속도로니까.

가는데, 내 앞에 저 네모잡이 휴지 저게요, 스무 개가 앞에 떨어져 있는 거야. 근데, 그 순간 뒤를 딱 돌아봤지. 그랬더니 차가 거의 안 오는 거야. 저 먼데야. 그래서 어 떻게 하겠어요, 제가. 비상등 깜박이를 켰지. 노란 거 켜고 딱 내려가지고 앉았는데, 가슴에 안았는데, 다섯 개밖에 안 안기네, 스무 개가 다 안겨야 되는데. 다섯 개. 딱 안고 딱 타려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탔지. 나는 아니까~ 순간적으로 오니 까.

딱 탔는데, 딱 다섯 개를 안고 타려고 하니까 뒤에 차가 벌써 와 있는 거야. 외국 여 자가 머리 긴 여자가.

그러면서 내가 그랬지. 너도 몇 개 주워 줄까 그랬죠.

그랬더니 아니래. 그래서 기다리니까 할 수 없이 내가 다섯 개만 딱 놓고 왔는데 내 가 후회를 했죠. ‘다 갖고 탈 걸. 왜 내가 열다섯 개를 남겨 놨나?’

그래서 와가지고는 전도사님들한테 자랑을 했지. 점심 먹을 때.

야,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다고. 내가 아침에 그 한마디 했는데 이 주시는 거 봐. 보라 고. 갖고 가서 하나씩 쓰시라고. 그랬더니 자기도 기분 좋아가지고 갖고 가서 썼어요. 그리고 두 개 나눠 주고 난 세 개를 갖고 왔어요. 그런 일들 뿐만이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은 내가 정말 네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 있다는 걸 정말 보여주시면서 까 지. 근데도 돈은 안 주시네. 왜 그런가? Question이었어요.

내가 주면 뭐, 내가 그 당시에 그렇게 주의 길을 가겠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 한테 돈 줘도 좀 괜찮지 않아요? 뭐 딴 데 내가 쓰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주시는데? 그런데 내가 꼭 한 마디씩 하는 거는 주는 거예요. 그럼 그 때가 무슨 때였냐? 신명기 8장 3절.

내가 보이는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사는 걸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저에게 헐벗게 하시고, 굶기시고, 못 입게 하시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 니다. 정말 근데 그게 너무 감사해요. 그 때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못 하죠, 왜냐? 지금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편이니까. 광야의 삶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때가 옵니다. 이게, 하나님이 내 안 을 통치하고 나면, 삶이 형통하게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삶을, 나에게 왜 광야의 삶이 필요한가? 꼭 필요하다. 근데 이 삶을 통해서 고쳐 야 만이 나에게 가나안을 주시더라는 거예요. 나에게 왜 어려움이 와 있는가? 내가 왜 이 고통을 당해야 되는가? 거기에 대한 모든 해답은 바로 신명기 8장 3절에 있습 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사는 거를 알게 하기 위해서 지금이 현재의 고난과 고통과 환난이 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요? 여러분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죠. 할렐루야.

그래서 광야의 삶을 내가 지나고 있을 때, 힘든 거 압니다. 헐벗고, 주리고, 목 마르

 

고, 눈물 나고, 힘든 거 알아요. 그러나, 그걸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을 인정해 드리며, 이렇게 지나고 나면 반드시 가나안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아브라함에게서 봐야 될 게 뭐냐면, 두 번째 우리가 그 ‘창세기 12장 4절’을 다시 한 번 봅니다.

다 같이. ‘창세기 12장 4절’. ‘창세기 12장 4절’입니다. 다 같이 시작.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참, 여기서 여러분, 은혜도 받아야 되겠지만, 이 성경에 적혀 있는 얘기들이 때로는 조금 사람의 손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 있는 데, 자,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잖아요 그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다. 그 때 하나님이 뭐라고 그랬냐 하면, “너는 본토 그 다음에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랬잖아요. 떠나 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런데, 이 아브라함은 떠나긴 떠났는데 누구를 데리고 갔습니까? 아버지 데라도 함께 갔고, 친척 롯도 함께 데리고 갔어요. 하지 말 라는 짓을 한 거예요. 아브라함 보고 너는 가라. 뭘 떠나라 그랬냐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너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랬는데 아브라함은 데라를 데리고 떠났고 롯을 데리고 떠났어요. 그런데 이 데라가 아버지잖아요. 70세 때 세 명을 낳았 다 그랬죠.

나홀, 아브라함, 하란. 그죠? 이름이 하란이죠, 아브라함. 낳았는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가 몇 살이라 그랬어요? 이 하란이 아니죠. 이름이 지역명이죠, 이거는? 75세다. 그러면 이 때 데라의 나이는 몇 살이겠습니까? 145세죠. 우리 하나 보고 지나가겠습니다.

스데반이 한 얘긴데 사도행전 7장 2절 한 번 가봅니다. 사도행전 7장 2절. 사도행전 7장 2절. 사도행전 7장 2절이 되겠습니다. 다 같이, 197페이지.

7장 2절, 다같이 시작.

“사도행전 7:2~8”

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 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 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

여기까지만 읽겠습니다.

자, 4절 한 번 봅니다. 7장 4절 다시 한 번 시작.

“ 행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 하란에 머물렀다 이거죠. 하란에 머물렀다. 그런데 하란에서 지금 거하는 이 땅, 가나안이죠 그죠. 지금 스데반이 있는 데가 가나안이죠.

지금 이 곳으로 옮기셨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언제요? 데라가 죽을 때요. 그죠? ‘데라가 죽으매’ 이 얘기가 뭡니까? 하나님이 데려 가신 거예요. 왜냐?

아브라함이 가야 될 데는 어딥니까? 가나안이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데라가 집의 가 장이니까 가다가 하란이 좋으니까 하란에 머물러버린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기에 하나님은 경륜을 이루셔야 되는데 이루시기 위 해서 어떻게 합니까?

데리고 떠나지 말아야 되는 아비를 데리고 떠났는데 그 데라가 하란에 같이 머물자 그랬더니 다 거기서 머물렀더니 하나님이 데라를 데려가시고 그제서야 아브라함은 가 나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나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온전히 순종하라는 거. 온전히 순종해야 해야 된다는거. 우리의 생각을 거기다 끼워 넣거나, 하나님, 이건 왜 안 됩니까? 이것쯤이야. 그런 게 아니라 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반드시 그 가는 길에 올무가 되고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방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갈 걸 한참 기다려서 왜 하나님이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25년이나 걸려서 줄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도 다 이

 

유가 있어요. 25년이나 걸렸어. 25년. 일찍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애. 그러니까 여러 분,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분적인 순종이 아니라, 온전히 순 종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데라를 놔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아비를 떠나라고 그랬는데 아비를 데리고 떠난 거예 요. 그렇잖아요. 떠나긴 떠났는데.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처음부터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것을 보였으면, 그의 믿음이 아직까지도 그렇게 안 되었다는 거죠. 아직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브라함을 감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나 그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는 아브라함이 처음에 믿은 가지고 있던 그 믿음은 너무나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까지 만들어 주셨다는 그 사실 앞 에, 우리는 희망을 갖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구나!’

그러니까 여러분, 하지 말라는 짓을 했더니 데라 때문에 하란에서 얼마간을 머물렀는 지는 몰라요. 그러나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갈 때 75세였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 하나 찾아보고 넘어갑시다.

창세기 11장 32절. 창세기 11장 32절.

“ 창11:31~32”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 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뭐가 잘못된 걸까요? 나이가 잘못 됐죠? 지금 창세기 11장 35절에서는 205세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죠?

그러면 예를 들어서 205세가 맞으면 아브라함이 75세때 하란을 떠났으니까 75세를 빼면 얼마일까요? 아닌가? 75세를 빼는 게 아니라 70살을 빼야 되겠죠. 왜냐하면 70 세 때 아브라함을 낳았으니까. 그럼 몇 살이예요? 135세.

그럼 아브라함이 만일에 이게 맞다면, 아브라함이 135세, 아 이게 데라의 나이죠, 데 라. 제가 이게 요즘에 계산이 잘 안 돼요. 제가 항상 이렇게 저번에 창세기 우리 처 음 강의하면서 제가 계산 때문에 제가 조금, 저는 수학을 참 잘 하는 사람이었어요. 해법수학까지 그냥 다 푸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산수가 잘 안 되네. 산수가.

지금 이게 70세가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나이죠, 그죠. 그렇잖아요.

그러면 135세 이게 왜 나왔냐? 그렇지. 135세가 왜 나왔냐 하면, 여러분도 모르겠죠.

 

내가 모르는데 여러분이 알 리가 있겠어요?

135세가 왜 나왔냐 하면은,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란을 떠났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 때 데라의 나이가 몇 살이라는 겁니까? 135세.

만일 이게 맞다면. 그러면 75세 때 하란을 떠났어요. 그럼 205세 때 죽었으니까 아브 라함이 몇 세 때 데라가 죽었다는 얘기예요? 그렇죠, 하란이 60넘었을 때. 그러니까 60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거야, 데라는. 그죠?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 나이는 몇 살 이예요? 135세죠.

그러면 데라가 135세에 죽었다는 얘긴데 아브라함은 이게 맞는 얘깁니까?

그런 얘기가 있어요, 성경에? 예를 들어서 데라가 아브라함이 135세에 죽었다면, 100 세에 누굴 낳았어요? 이삭을 낳았죠?

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는 어떤 거, 하나는 잘못 기재가 되었다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데, 어느 게 잘못 기재된 것이냐면 이게 잘못 기재가 된 것 같아요. 제 생각은. 왜냐하면 말이 안 맞으니까. 어떻게 아브라함의 나이가 135세면 이삭의 나이가 35세 인데. 그 때 죽었다는 얘기가 어디 있습니까? 가끔 가다가 왜냐하면 4복음서도 보면 동일한 사건을 놓고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렇듯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썼지만, 오류가 조금씩 생길 수도 있다는 거. 뭐 사람 죽었다고 하는 게 중요합니까?

내가 이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갈 수도 있어요. 왜? 은혜받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근데 여러분은 나중에라도 이게 밝혀지면 Question마크가 생길 거 아니에요. 저도 생겼었으니까. 제가 어떻게 지금 얘기해 드렸습니까?

아무래도 205세가 아닌 것 같다고. 할렐루야. 뭐 이런데 할렐루야 안해도 되지만. 그 래도 조금 알고 가자. 조금 생각하고 지나가자.

그래서. 중요한 건 뭐냐?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반드시 우리가 가는 신앙 에 있어서 발목을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발목을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오히려 그게 뭡니까? 결국 뭐예요? 내 육신의 생각은 뭐예요? 사망이예요. 내 생각 끼워 넣으면 결국 그것은 결국 사망을 갖고 오더라. 예를 들어서 데라를 안 데 리고 떠났으면, 아버지를 안 데리고 떠났으면 자기는 더 빨리 가나안으로 들어 갔을 것이고, 데라는 고향에서 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 얘깁니다.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은, 생각 고만.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그 다음에 롯을 데리고 떠났잖아요. 롯도 데리고 떠 나지 말았어야 돼. 롯을 데리고 떠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집니까?

이것도 올무 역할을 해요.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올무 역할을 하다가 소돔과 고모라 거기서 죽을 뻔 했는데 아브

 

라함의 중보 기도로 살아났죠.

살아났지만, 나중에 결국 또 롯은 자기 두 딸하고 자식을 낳잖아요. 그래서 그 낳은 자녀들이 누구냐 하면, 모압과 암몬 자손이거든요. 모압과 암몬 자손이 지금 어디냐? 이란과 이라크예요. 요단 동쪽.

그러니까 늘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에 있어서 광야를 거쳐서 이스라엘에 들어가는 길 목에서도 모압과 암몬 자손은 그들을 대적했어요.

그러니까 결국 하지 말라는 짓을 했더니 결국은 뭐예요?

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결국은 사망의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시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자.

그래서 여러분, 우리와 하나님 관계는 사실은 주인과 종의 관계거든요.

하나님도 아브라함 택하셔서 그의 백성 삼아 주신 건데 백성 삼았다는 건 그는 왕이 고 우리는 백성이고 이런 의미가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는 종의 관계가 있는데, 진짜 종은 주인이 한 말에 대하여 따지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집어 넣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종의 신분으로 잘 살기만 하면 되는데, 아브라함의 그 믿음은 아직 도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그의 믿음은 아직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참 아니었다는 말씀이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하지 말라는 짓 하고 앉아있고.

내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다 끼워 넣고 그런 삶을 언제까지 살 거냐 이 얘기 예요. 그럼 어떻게 하냐?

우리 신앙의 여정에 그 모든 내가 생각하는 육신의 생각대로 다 하는 이 모든 것들 이, 나의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나의 발목을 붙들고 사망의 삶을 살게 하고 내가 가 는 그 길을 느리게 가게 하더라는 거예요.

되도록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게 하고자 하는 그 길을 빨리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요, 세 번째 우리가 여기서 나눌 것은 창세기 12장 한 번 가 봅 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창세기 12장 10절에서 20절 말씀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땅은 어떤 땅입니까? 가나안이죠, 그죠? 가나안에 기근이 온 거야. 11절 시작.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 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 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미친놈이죠, 그죠.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내가 감히~. 제가 벌 받아야 되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14절부터 20절까지 시작.

“창 12:14~20”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 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 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네. 지금 이 상황에서 보면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죠. 근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디 로 보냈냐 하면, 가나안으로 보내셨어요.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나안으로 보냈으면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죽든 살 든, 풍파가 일어나든, 죽을 것 같든 안 죽을 것 같든 반드시 거기에 있었어야 됐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될 자리에 지금 있게 하고 계시거든요. 그 런데, 만일에 그 자리가 풍파가 일어나고, 내가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오늘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곤란을 겪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기근이 왔었어도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기근에 대해서 구해야 됐었어요. 애굽으로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는 자는 화가 있을찐저.

이사야서에서 얘기하고 있죠.

기근이 왔더라도 하나님 앞에 앉아 있어야 됐었어요.

 

왜냐? 가나안으로 가라고 한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예요.

그러면, 기근이 왔더라도 하나님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분이거든요. 자기 자녀를 굶어 죽이겠습니까? 자기 자녀를 백성 삼아놓고 죽이려고 보냈겠습니까? 그게 아닌데. 그 믿음이 아브라함이 아직 못 섰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하나님이 나 를 어디에 있어라 라고 딱 박아 논 자리에 있어요. 박아놨다. 그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떠나고 싶어도. 그 자리를 지켜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나를 어느 집에 시집을 보내 놓고 아들 딸을 줘놓고 그런 자 리에 뒀어요. 근데 삶에 풍파가 오고, 그러네. 근데 내가 죽을 거 같아서 그 자리를 떠나면, 어떤 상황이 오냐?

이게 아브라함의 그 예예요. 아브라함이 죽을까봐 내려갔잖아.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그것 뿐만이 아니라 어떤 죄를 저질러요? 더 큰 죄를 저지르잖아. 자리 를 떠나면 그렇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듯이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 자 리, 하나님이 나를 두신 자리 그 자리를 떠나면 그 죄만 짓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죄, 돌이킬 수 없는 죄들을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자리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된다. 그건 철칙입니다. 환 경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뭐냐? 바로 그거예요. 나를 두신 자리. 여러분, 저를 두신 자리가 어딥니까? 여깁니다. 저를 보세요. 거기를 떠나면 안 돼. 그 울타리 반드 시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좀 안 좋은 얘기지만 나오미도 그죠, 나오미. 나오미. 나오미도 가나안에 있 었어야 됐었어요.

근데 가난이 기근이 드니까 어디로 가느냐? 모압으로 가죠, 모압.

자기 남편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두 아들이 결혼을 하죠. 며느리들을 두 명을 얻죠. 룻과 오르바. 근데 10년 내에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자기가 있어야 될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나오미는 알죠. 왜 하나님이 자기 남편과 두 아들을 십년 내에 데리고 가셨는지를 압 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때 나같이 저주 받은 여인이라고 얘 기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더니,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서 지금 아브라 함이 떠났어요.

떠나가지고 곡식을 얻으러 갔네, 죽을까봐. 갔는데 자기 마누라가 사래가 너무 이쁜 거예요. 너무 이쁘다. 열 살 차이니까 75세. 열 살을 빼면 몇 살입니까? 65세. 근데 도 그렇게 이뻤다는 거야. 그 때는 좀 장수하는 그 땐 170 몇 살 까지 살고 이랬기 때문에 아마 65세가 볼 만한 나인지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아름다웠대. 그러니까 바로가 그를 취하려고 궁 으로 불러들였죠. 자, 이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하나님 앞에 앉지 않고 가나안으로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는 그 자체부터가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짓인데, 자 기가 살고자 해서 자기 아내 사래를 팔아버리잖아요.

자기 목숨 구하려고.

저는요 여러분, 오늘 아침에 제가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봤어요.

내가 과연 내 남편을 사랑하는가? 얼마만큼 내가 사랑하고 있는가 생각을 해 봤어요. 그런데 정말 제가 솔직하게 말하는데 아직도 저는 제가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고 있 더라고요. 그것에 대하여 제가 아침에 잠깐 회개를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 이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남편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내 가, 어떻게 남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냐.

저는 참 황당했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오는데. 어, 아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 고 있구나. 내 남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이웃을 다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었어요.

다시 제가 회개하고, 아니다, 우리는 항상 나를 가르쳐야 되잖아요. 이게 아니구나. 항상 자기를 훈련하고, 자기를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이 그러니까 지금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냐 하면요,

아브라함은 지금 이 상태 아브라함의 믿음은요, 완전히 절벽에 떨어진 절벽에서 땅으 로 그러니 믿음이 여기 있어야 되는데 이 땅바닥에 완전 곤두박질한 그런 믿음이었어 요.

하나님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 때 부인이 누구입니까? 사래거든.

그러면 사래를 통해서 후손을 통해서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겠다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사래를 자기가 살기 위해서 팔아버리는 거야. 그러 면 이것은 하나님이 딱 그 상황을 봤을 때 도저히 헤어날 가망성이 없는 거야.

이 아브라함은 내가 구해 내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예요. 그 믿음이. 그러니 까 성경에는 무슨 말씀이 있냐 하면은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은 넘어지게 하되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게 하나님이 붙드실 때가 온다는 거예요, 붙드시는 때가. 완전히 넘어질 때는, 완전히 넘어지면 경륜을 못 이루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에게 나타나가지고 그 집을 치고 말씀하기를, 그는 선지자의 아 내라는 거야, 선지자의 아내. 저 사람 아내니까 보내라는 거지. 그렇게 해가지고 아브 라함은 자기의 누이라 그래갖고 넣어놓고 자기는 양과 소를 재물을 받았잖아요. 아내 를 판 것으로. 결국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아내가 자기에게 돌아오고 그 다음에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오는데 이런 상황을 보면 아브라함은 정말 믿음이 완전히 떨어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간섭을 하셔가지고 그를 다시 이끌어 내서

 

제발 달래가지고 돌아오게 하는 그런 장면이예요.

왜냐하면 재물까지 얻어가지고 돌아오도록 그렇게 이상한 짓을 그렇게 큰 죄를 저질 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은 재물까지 얻게 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브라함은 들어와서 먼저 한 일이 뭐냐?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습니다. 뭘 했겠습니까? 회개했지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인데 내가 그를 믿지 못하고 이렇게 저질렀던 그 모든 죄에 대해 서 회개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아브라함은 늘 믿음이 엎치락뒤치락 했어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붙들어 주셨어요. 우리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저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는 영 원히 회복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완전히 넘어질 수도 있었는데 안 넘어지게 하시고 붙들어 주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아 야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돼.

우리 한 군데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31장. 이사야 31장입니다. 예, 1절에서 3절. 1절에서 3절. 이사야 31장 1절에서 3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사야 31:1~3”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 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 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 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여러분 내 인생에 환난이 왔을 때, 우리는 어디로 먼저 가야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먼저 가야 돼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 먼저 맡겨라. 하나님께 먼저 도움을 구 해야 돼. 근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는 먼저, 먼저죠. 하나님 앞에 안 앉고 먼저 애 굽으로 내려가는 자들는 화 있을찐저. 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세요.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6절과 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 그분이시라는 거예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이 도움을 우리가 먼저 어디로 구하러 가야되겠습니까? 하나님께.

내가 질병에 걸렸다, 하나님께 앉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먼저 앉으라는 겁니다. 하나 님께 먼저 앉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고, 묻고, 왜 이 질병이 왔는지, 왜 안 고쳐 주시는지 충분히 기 도해야 됩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 질문이 생겨요. 그러면 질병은 하나님 앞에서만 구하고 의학의 도 움을 받지 말아야 되나?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어린애가 아토피가 걸려서 안 나아요. 아무리 해도 안 낫네. 근 데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해서 믿음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잘 안 낫고, 애는 고통이 심 하고. 그럴 때 여러분에게 Question이 생길 수 있어요.

애한테 약을 주지 말아야 되나? 믿음으로 해야 되나? 애는 고통이 심한데. 자, 하나님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의학도 주신 거예요.

만일에 약을 발라서 낫는 것은 약이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낫게 하시는 거 예요.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낫게 도 하시고 싸매기도 하시고 상처주시기도 하시는 분. 그분이시라는 거예요. 약은 어느 정도 잠깐의 도움이지 하나님이 낫게 하시면 약을 발라서라도 다 낫게 하실 수도 있 고 또 다시 재발하게 하실 수도 있고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주 관하시는 자가 누군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약은 사실은 조금만 도움이예요. 수술? 조금만 도움이예요. 또 다시 안 생긴다는 보 장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합격되지 못하면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 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분 이 하나님이신데, 우리의 마음 자세를 보는 거예요.

네가 누구를 인정하고 있는가?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학도 하나님이 사용하셔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 자세를 하나님이 모든 걸 하고 계 신다. 네. 거기에다가 더 믿음을 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것만 하고 점심 먹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아브라함에 있어서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여러분 두 번째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제가 나눌 거예요. 근데, 이 아 브라함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뭔가를 보면 아브라함의 인생을 우리 가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로 한 번 나눠 보면,

하나님은 객관적인 구속사는 뭐냐, 결국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을 주셨고 이삭을 통해서 야곱과 에서가 나왔고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를 형성하는 그래 서 이 열두 지파 속에서 또 아브라함에게 말했듯이 네 씨로 인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이미 이방 국가가 복을 받을 거라서 아브라함 때부터 얘기해 놨다 이거죠.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왔잖아요. 예수님.

이방의 모든 민족이 네 씨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객관적인 구속사를 보면 아브라함이 객관적인 구속사에 참여한 게 뭐냐? 이삭 을 통해서.. 이삭을 줬잖아요. 이삭을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이 객관적인 구속사입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하는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의 처음 하신 약속, 너로 인하여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한 나라를 이루고 이 가나안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줄 것이다 하는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말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아브라함은 그 믿음에 통과했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인 구속사를 이룰 수가 있었어요.

그러면 객관적인 구속사는 뭐냐?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아까 우리가 봤듯이 그의 믿음은 엎치락뒤치락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연단하셔서 정말 이삭을 번제로 드 릴 수 있는 죽은 자도 살리셔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거라는 그 믿음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연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관적인 구속사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객관적인 구속사에 쓰임받기 위해서 그 인생을 다루어 나가신 얘기 그게 주관적인 구속사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아브 라함을,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왜 어떻게 해서 그분이 믿음 의 조상까지 되어졌는가가 우리 성경에 자세하게 나와 있죠. 그의 실패했던 얘기, 넘 어졌던 얘기, 다시 일어나게 됐던 얘기 그 모든 것들이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예,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또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아버지 오늘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 사건들을 통해서 또 아브라함의 엎치락 뒤치락했던 그 믿음이 약했을 때의 그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힘을 얻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먼저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이 후에는 광야의 삶이라는 삶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하시고 또 아버지 하 나님을 주시기 위해서,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 광야의 삶을 거치게 하시는 하나 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 하지 않기를 원하고, 그리고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가는 길 속에서 좀 더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셔서 반드시 성경의 얘기가 적혀 있는 것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실패한 얘기들이 적혀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동일한 실패와 실수 를 하지 않으라고 적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교훈 삼아서 정말 잘 살아드릴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 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