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영성 Ⅲ - 믿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우리 두 번째 시간에는 주제 강의로서 믿음의 연단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 러분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믿음의 관계인거 같아요. 그죠? 믿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다. 그래서 우리 히브리서 11장 6절 함 가봅 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가보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을 가져야죠. 그죠? 기뻐하는 믿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어 떤 믿음이냐 이거죠.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
적당한 믿음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면 정말 믿는 거죠. 응?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할지라도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의심치 않는 믿음인데 이런 믿음을 우린 생명 적인 믿음이라 그러죠. 생명적인 믿음.
하나님은,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그분이 원하시는 믿음,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생 명적인 믿음인데... 주님도 제자들에게 뭐라 그랬냐면?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 심하였더냐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항상 제자들을 책망하셨어요. 그죠?
그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하냐면 생명적인 믿음이 더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다할지라도 정말 믿는 믿음이죠. 그 죠? 의심치 아니하는 믿음. 그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 져야 되겠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히브리서 10장 함 가봅니다. 히브리서 10장 앞쪽으로..
32절에 39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32절에서 39절. 다같이 시작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후에 고난의 큰싸움을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 업이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을 가진 자 니라. 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 뭘 나눴냐면요. 기억나시죠? 믿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째 뭐가 있다 그랬습니까? 의지적인 믿음이 있다. 의지적인 믿음, 이거는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지를 드려서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거라 그랬어요. 근데 하나님은 참 이걸 기뻐하신다 그랬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셨더라.
두 번째 종류는 은사적인 믿음이였죠. 그죠?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부어주는 믿음. 우 리는 이 믿음 때문에 주의 종들이 주의 길을 가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 고, 또 우리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거죠. 이것도 은사적인 믿음. 하나님이 믿게 해주신 거지. 우리가 믿을라고 해서 구원받은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의지적인 믿음과 은사적인 믿음이 우리 인생에서 교차, 계속 반복되고 교 차하면서 (반복되고 교차하면서) 우리에게는 뭐가 생겨나냐면 생명적인 믿음이 생겨나 더라는 거예요. 이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거예요. 아무 런 의심이 없이. 옛날에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물위를 걸었다 그러는데 이게 진짜 하나님 걸었을까? 이게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게 사실일까? 그런 질문이라 도 하고 지나갔단 말이에요. 근데 생명적인 믿음이 되면은 그게 그대로 믿어져요. 아~ 구름을 움직여서 비를 내리시는 분이고 메추라기를 다 불러서 이스라엘 진 곁에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이고, 그런 분이 왜 물위를 못 걷겠는가? 죽은 자도 살리시는데 분인데...
“물아 나를 떠받쳐라” 그러면 떠질 수 있는 거잖아요.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깐, 이제 그때 그런 믿음이 생명적인 믿음으로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는 왜 믿음의 연단이라 부르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 하시는 분이시더라는 것입니다. 연단하신다 하나님이.
그래서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아브라함의 그 행위를 보면 처음에 보면 과연 그를 우리 가 믿음의 조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이 연단을 하셔서 우리에게 감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렇게 부르게끔 만드 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인생 속에서 믿음을 연단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생명적인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첫째,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가 하는겁니다.
연단하시는 방법이 뭐냐?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 방법.
첫째는 환난을 허락합니다. 환난, 환난을 허락하시는데 환난을 통과함으로서 우리의 믿음이 많이 자라게 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자라는 것이 언제냐? 은혜가 있을 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 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이 환란이 환란으로 느껴질까?
안 느껴질까요? 안 느껴져요.
환난이 와도 그냥 기뻐요. 이게 은혜 때문에 그런 거야..
그 은혜가 있으면 환난이 환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연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냐? 여러분이 은혜가 있을 때는, 은혜가 있으니깐 사람을 사랑 하는 것이 쉬워요? 나빠요? 그렇죠~ 은혜가 떨어지면? 어렵죠~
그럼 진짜 나는 누굴까요? 은혜가 없을 때에 내가 진짜예요. 나예요. 본 모습. 그래서 성전에 있을 때, 기도원에 있을 때는 사람이 천사 같은데 집에 오면? 아니예요로 그 냥 끝나는 거야? 독사같이 변하잖아요. 아니가 아니라, 독사같이. 왜 그러냐 이게. 이 은혜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닙니다. 은혜는 잠깐 우리를 마취시키는 거예요. 여러분 아픈데 마취시키면 아파요? 안 아파요? 못 느끼죠?
그러니까 마취를 시켜 놨더니 상처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온정신에 뒹굴고 놀고 오네. 아프면 나갈까 안갈까? 안 나가죠.
어느 게 더 이로워요? 안 나가는게. 그죠? 마취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를 제한하시더 라는 겁니다. 제한.
거두는 게 아니라, 거둔다 그러면 쫌 그렇고...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하시더라는 거예요. 내버려 두는거야 그냥. 환난 당하게끔... 환난이 있어야 자라거든요.
어떤 그 목사님이 소련에 선교 나갔던 목사님이 폐암이예요. 폐암수술을 몇 번을 했다나? 13번을 했다나..
폐가 이제 남은 게 조금밖에 안남은거예요, 한쪽만. 그분이 결국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한 날은 소련에 가니까 부랑자들이 막 때려가지고 귀가 다 나가버렸대. 그러고 다시 들어와서 치료받고 또 가고 그랬는데..
그분이 가끔씩 돌아오면, 두 아들이 있다는 거야.
두 아들 앉혀놓고 “너희들은 고난을 안 받을 생각을 하지마라”. 근데 부모들은 자식들 고난 받기 원해요? 안 받기 원해요? 내가 받기 원하죠. 그래요?
근데 여러분이 사람 된걸 생각하면 고난이 있어서 사람 됐어요? 고난이 없어서 사람
이 됐어요? 그죠? 그니까 자녀들도 그렇게 키워야 돼. 자녀들 다 해주면 안 된다는 거야. 홀로서기까지..
홀로 설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어떤 면에서는 잡초처럼 키우라는 거야.
잡초처럼.. 엄마가 다해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러면 홀로서기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 은혜를 제한하시는 이유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다윗을 보면 고난을 통해서 내가 뭘 배웠다 그래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웠대요. 그런데 하나님 은.. 하나님은 다윗을 고생 안 시킬 수도 있는 분인데 고생시켰어요. 그것도 십수 년 동안이나...
그걸 통해서 다윗은 고백하는 게 나는 그 고난이 없었으면 주의 율례를 못 배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제한하시는 이유. 이 런 때는 어떻게 보이냐면 하나님이 없는 거 같애, 내 삶에.
왜 하나님은 내 인생을 괴롭게 하시나? 내버려두시나? 난 너무 괴로운 거예요. 하나 님이 안 계신 거 같아.
성 요한은 뭐라고 표현하냐면 ‘어두운 밤이다’.
어두운 밤은 캄캄한 밤을 통과하는데 그 끝에는 하나님이 계신 거예요, 보이는 거예 요 그때는. 근데 캄캄한 밤이라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자 취를 감추시고 안보이게 하시더라는 거야. 그 이유가 뭐냐?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 기 위해서 진짜 믿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 상황 속에서도 진짜 네가 나를 믿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이 연단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 우리 일들이 잘되면 하나님 찾을 필요 가 없고, 절대적으로 믿음이 연단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믿어요? 다 잘되는데..
안 되는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죠.
자! 그러면 제가 중요한 얘기를 할 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다 참을 수 있었어 요. 별로 힘들지도 않아.
근데 그 힘들지도 않은 거 다 지나고 나니깐 나는 그럼 변해있어요? 안변해 있어요? 그 지낸 거는 하나님 은혜 때문에 지낸 거예요.
나는 변화했다? 안했다? 안 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실 수 밖에 없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 다 하실 수 있어요. 왜 안하십니까?
우리의 믿음을 그 속에서 정금과 같이 만드시기 위해서 안하고 있는 것 뿐이예요. 다 하실 수 있는 분이...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하나님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하시기를 원치 아니하신다. 할렐루야. 그러면 우리가 이 속에서 해야 될 거는 뭐냐? 하나님을 배우는 거예요.
주의 율례를 배우는 거예요. 다윗이 그러고 나서 하는 얘기가 많은 고난을 겪고 난후 에 하는 얘기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라” 고백을 했어요. 고 난을 당한 후에... 그 전에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승한 줄을 몰랐어 요. 그 얘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어 지는 것. 아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제가 되어지는 것.
그래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은 오히려 어떤 때 성장하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 성장합니다. 없을 때 믿음이 성장한다. 참 웃기는 애기인거 같죠? 근데 사실이예요.
예를 들어서 맨날 성전에만 있다? 맨날 은혜만 쫓아다니는 거예요. 은혜만~
그럼 은혜 속에만 있으니깐 그 사람 용서할거 같고 그랬는데, 집에 오니 용서가 돼? 안 돼? 그렇잖아요. 거기서는 은혜가 임하니깐 용서가 돼.
집에 오니깐요? 용서가 안 되는거야.
그럼 진짜 나는 누구라는 거예요? 용서 못하는 내가 진짜예요. 이 내가 변해야 된다는 거야.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내가 변해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지. 아멘? 은혜가 임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아무나.. 은혜만 걷어지면 나는 또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린 거야.
이런 삶의 연속 반복. 그럼 그 사람은 전혀 안변해요. 맨날 어디가 이제? 성전에만 앉아있어야 돼.
왜? 용서 못할 거 같으니깐..
이게 무슨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모습입니까? 은혜가 없을 때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예요. 그래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가? 아멘!
은혜를 주셔서 믿는 거는 아무나 믿어요. 그렇잖아요.
은혜가 없을 때도, 전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전혀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그분을 믿는가 하는 겁니다. 그걸 하나님 보길 원하시는 거예요.
그 때 믿음이 연단되는 거예요. 아닌 상황 속에서도... 그 때 우리는 의지적인 믿음을 하나님께 드려야죠.
그래서 여러분 두 번째 시간에는 믿음의 연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자~ 여러분, 이 환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거든요. 믿음. 환난 속에서 우리는 뭘 해야 되나? 감사해야 되죠. 감사.
원망불평하면 안되죠. 그죠? 환난 속에서 감사해야 되는데 이 감사는 뭐로 하냐는 거
죠? 믿음으로.. 믿음.
뭘 믿어요? 그분은 나의 좋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나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걸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 할렐루야
자! 여러분 이거는 여러분이 좀 들어보고 생각해야... “아 정말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어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감사가 안 되니깐, 약빨이 떨어졌대, 약빨.. 약빨이 뭐예요.? 약빨이 떨어져 갖고 어디 간다 그러더라?
어.. 기도원에 간대.. 기도원에...
약빨이 떨어져서 기도도 안 나오고, 감사도 안 나오고, 찬양도 안 나오고.. 그니까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 같아요.
근데 하나님은 약빨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기를 원하 시고 아멘?
기도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기도자리에 앉기를 원하시고, 아멘입니까? 용서가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용서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거예요.
이 약빨의 문제가 아니라니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그 상태의 내가 진짜 나라는 사실을 깨 달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너무 은혜, 은혜, 너무 은혜만 찾아도 문제가 있어요. 너무 은혜만 찾아도.. 행함이 없는 거야.
진짜는 그런 삶을 보면 사람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은혜로 그냥 다 뒤집어 씌워서 마취 시켜져서 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성장하지 않았고 변 화하지 않았고 성숙되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저 사람은 이상하게 은혜도 별로 없는 사람 같은데 가만히 보면 나중 에 믿음이 단단해진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그렇다는 거야.
너무 은혜, 은혜... 은혜는 받아야 되지만, 너무 은혜에 심취되어져서, 마취되어져서 그렇게 살기만 원하는 것도 아니더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자신이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쫌 거두어져야 돼. 없어져야 돼. 없어지는 그런 어두운 시기를 통과해야 돼. 할렐루야.
근데 이 어두운 밤이 한번만 오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와요.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없는 거 같은 그런 때.
아니 어떤 때는 내 마음이 정말 설렐 정도로 하나님이 막 함께 하시는 게 느껴지는데 길가가면서도 막 노래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어느 순간 보니까 없는 거야. 그게 어머.. 어디 가셨어 하나님이?
아무리 느낄라 그래도 안 나타나시고 어머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어졌어..
그때가 뭐예요?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시더라는 겁니
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발견되어지지 아니할 때 ‘아 나는 지금 믿음의 연단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계시록 3장 8절 한번 가보죠. 계시록 3장 8절. 점심 먹고 나니깐 졸리죠? 말하 는 사람은 신이 나서 하는데 계시록 3장 8절입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 니다. 다같이 시작!
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 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 였도다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말씀 하는 거죠? 그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네가 내말 을 지켰다.
하나님은 많은 능력을 주지 않고 적은 능력을 줘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성실할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하나님 앞에 더 신실하고 성실할 수 있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을 배반치 아니하고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 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열린 문을 둔다잖아요. 열린 문 얘기했죠? 열린 문이 어떤 문이라 그랬어요? 새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갈 문을 열어놨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자! 그 다음에 여러분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서 뭐하시 냐? 환경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연단하십니다.
이 환경이라고 하는것은 어떤 환경이냐면 분명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와 반대되는 환경을 갖다놓고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네 남편을 정말 잘 만들고 잘 쓰리라” 하여간 뭐 그런 식으로 하 나님 말씀 받았다 칩시다.
아침에 기도할 때, “내가 네 남편을 변화시키리라 정말 어떻게 되리라” 했는데... 이 남편은 그 말씀에 오히려 따라가 주지를 않고 더 이상하게 나오네 더 괴팍하고 더 난 폭하고 더 이상하게 나온단 말이예요.
이게 왜 그러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냐? 나는 그를 놓고 기도했는데 말이야.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리고 하나님 은 네 남편을 변화시킨다고 했는데..
정작 나에게 보이는 모습은 더 안 좋은 거야.
이럴 때 반대되는 환경을 놓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할 렐루야~
네가 보이는 상황을 믿을래? 내가 한 말을 믿을래?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예요. 보이는 상황도 잘 돼 가면 하나님 말대로 잘 되어져 가면... 우리의 믿음의 연단이 안 되죠.
아 하나님 말씀대로 되어져 가고 있구나! 믿음이 연단이 안 되는 거야. 근데 분명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상황은 반대로 벌어지네. 여러분 그런 상황들 없습니까? 나는 가끔씩 그런 상황을 만나거든요.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딱 앉으면, 아 이건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구나! 이게 딱 와요. 왜냐면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안했으면 그건 내가 바라는 거지만 하나님 미리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반 대로 보인다. 그럴 때는 기도자리에 앉으면 이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구나 이게 딱 와요. 어떤 때요? 하나님이 이미 말씀을 주셨을 때.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이 열 두 정탐을 보내서 가나안 정탐을 했잖아요. 가나안 정탐 을 했는데 하나님은 분명 그들에게 가나안을 주리라 그랬어요? 안 주겠다 그랬어요? 주리라 그랬죠. 근데 딱 가서 보니깐 상황이 반대인거 같아.
왜냐면 여리고성은 크게 버티고 있고, 그리고 사람들도 보니깐 키가 똥짤막하고 난쟁 이 같으면 우리가 이길만 한 대. 우리보다 훨씬 크고 무기도 많고...
그니까 상황이 너무 반대니깐 어머 이건 안 되나 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보이는 상황에 더 빠져가지고 믿음을 상실해버리고 믿음을 보여드려야 되는 상황 속에서 믿 음을 상실해 버리더라는 거야.
그니까 하나님은 우리 앞에다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펼치게 하시더라 는 겁니다.
왜? 우리의 믿음을 정말 정금과 같이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할렐루야~
그래서 상황이 반대로 벌어질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 상이 하늘에서 큼이니 라”. 할렐루야~
여러분 있잖아요, 저는 그 생각을 해봤어요.
하나님이 끌어내라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끌어 냈잖아요. 끌어낼 때 하나님에게 순종했어요. 그죠?
어디 가서? 홍해앞 바다에 가서 진을 쳐라. 순종하고 진을 친 거예요.
쳤는데 상황은 어떻게 벌어졌어요? 뒤에는 군사가 오고 앞에는 바다인거예요. 인간의 생각은 ‘이제 이거는 죽은 거야, 완전히...’ 아니 하나님한테 순종했는데 왜 이런 현상 이 벌어져?
근데 하나님 어떻게 하셨어요? 홍해를 갈라버렸잖아, 그냥 아예.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을 반대되는 상황 속에 집어넣어갖고 믿음을 시험한다. 하나님은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홍해를 가르듯이 갈라버린다니깐.
우리 인간의 생각에는 홍해를 갈라질 거는 생각도 못하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느냐?
홍해를 갈라서라도 그들을 구출하시더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한테 분명히 말씀이 임했어요. 분명히 나는 들었고 그런데 상 황이 반대로 돌아간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할렐루야.
그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시키는 일을 보면 기가 막혀요. 우리 가 보기에는 더 반대로 돌아가고 더 악랄하게 되는 거 같고, 더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그 속에서도 “네가 보이는 상황을 믿을래? 나를 믿을래?” 이거 거든요. “내가 할 말을 믿을래? 네가 지금 눈에 보이는 그걸 믿을래?”
근데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 정말 내가 각고의 결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붙들면 반드 시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원래 원하셨던 목적대로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더 잘 되더라는 거야. 우리는 그분의 자녀예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못되게 하려고 환난을 하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으로 하여금 근심케 하고 고생케 하는 게 본심이 아니라 그러 잖아요. 그분은 우리에게 좋은 걸 주시려고 지금 내가 만나져있는 환난이 허락이 되 어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눈에도 보지 못한 그거를 주시 려고 지금 나에게 이 환난이 허락되어져 있다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걸 잘 인내하면 정말 끝까지 안내하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만 배가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더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막 기가 막혀요.
우리 하나님은 너무 기가 막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럼 그 환난 속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되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좇아가야 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지 아니하는 분인 것을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분은 정말 좋은 나의 아버지인거예요. 아버지가 매를 때리는 이유가 뭐라고요? 나에게 있 는 더러운 것 처리하기 위해서..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오히려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이 먼접니다.
반대로 일이 벌어진다. 그때는 아~ 내가 오히려 더 믿음을 드려야 되는 상황임을 알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요.
세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연단하시는가? 세 번째는 실패케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인생에 있어서 실패케 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더라는 거예요. 여 러분 하나님은 실패케 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음성을 들려줘 갖고..
이 실패란 어떻게 오죠? 불순종으로 불순종. 그죠? 순종했으면 실패 안 할텐데...
무슨 얘긴지 아시죠? 불순종하니깐 실패하는 거야.
근데 하나님은 때로는 이 실패를 하게 하셔요. 그래야 된통 한번 맞고 이 불순종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이 얼마나 나에게 그 댓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알고 나면 그 다음에 불순종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일평생 안 한다니깐요.
하나님은 그 목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때때로 종종 우리로 하여금 실패를 당하게 하십 니다.
여러분 요나.
요나를 강권해서 가게 하실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도망치는 거 그 대로 내버려뒀어요. 다시스로 가는 거..
다시 한 번 나타나 갖고 “야 너 안가면 안 된다” 설득할 수도 있고, 강권적으로 할 수도 있는 거고, 믿음을 부어져서도 할 수 있는 거고 다 할 수 있는데 왜 안했냐 이 거야.
요나. 요나가 불순종해갖고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그랬는데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 가서 외치라고 그랬는 데.. 요나는 그게 싫었잖아요.
니느웨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게 싫으니깐 어디로 도망가는 거예요? 다시 스로 도망가고 있다. 다시스.
도망 못 가게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요나를 보내실 수 있었어요. 무슨 얘긴지 알죠?
안하신 이유가 뭐냐? 불순종하면 실패케 하시려고. 자! 그래서 불순종해서 요나가 어떤 상황을 만납니까?
자기가 바다에 던져졌잖아요. 불순종의 댓가로 죽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그를 죽이 려고 내버려 두신 거예요? 아니면 회개케 해서 다시 돌리려고 내버려두신 거예요? 후 자 쪽이잖아요. 하나님은 내버려 두신 이유가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그를 바다에 던 져지더라도 큰 물고기를 마련해서 그를 삼키게 했잖아요.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다는 거예요.
내버려두신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실패케 하도록 내버려 두신 이유가 그렇다는 거예 요. 그랬더니 요나는 진짜 죽으려고 떨어졌거든요.
자기는 죽는 줄 알았지. 바다 한가운데.
근데 살아 있잖아요, 고래 안에.
그래갖고 하나님 앞에 삼일 삼야를 부르짖으면서 감사하잖아요.
하나님 내가 살려주시면 다시는 불순종하지 않겠습니다. 살려줬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는 어디로 갑니까? 이제는 다시는 그에게 불순종하지 아니하고 니느웨 로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요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라 그 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곡식을 주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없을까?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하셨어.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그 상황을 허락하신거야. 허락했더니 가서 어떻게 합니까? 마누라 팔고 그 다음에 팔고나서 그 밤에 어떻게 했 을까? 아브라함은 죽을 맛이지 뭐, 죽을 맛 아니겠어요?
그 모든 상황을 거치고 났는데 세상에...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둔 게 아니라, 사라를 구출해내고 오히려 재물까지 얻게 해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져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담을 쌓고 울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나 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데 실패를 통해서 다시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지 않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는 이런 실패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한테 한번 불순 종하고 나서 된통 당했어요. 정말 큰 댓가를 치뤘어요.
그러고 나서는 이제는 내가 하나님 뜻이라고 하면 어떤 것도... 어떤 것도 제가 하나님 뜻이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이제는... 아무것도 눈에 안보이고 하나님 뜻밖에 안보여.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이 왜 실패케 하셨나?
그 답이 우리로 하여금 그 이후의 평생에는, 다시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지 않는 우 리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통해서 여러분이 얻는 것이 더 많았다면 그걸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 니다.
오늘 믿음의 연단에 대해서 짧게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주여 한번 부르고 한번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만난 이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상황이라면 내가 하나님 이 지금 나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주님 제가 이 반대되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어드리겠습니다. 한번 기도하 겠습니다. 주여 부릅니다. 주여~~
(3주째-4)
영혼과 영성 Ⅲ- 아브라함의 실패를 통한 믿음의 연단
오늘 첫시간 이번 주가 성장반 두 번째주죠? 그죠? 이번 6월달에는 성장반 두 번째주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우리가 창세기를 나누고 있죠? 그죠? 창세기. 창세기를 나누고 있습니 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오늘 볼 것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
우리 같이 한 번 찾아볼 성경구절은 창세기 12장 1절부터 9절까지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9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 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 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 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멘
우리 하나만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1장 앞쪽으로 가서 26절.
창세기 11장 26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 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이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그 위에 24절 25절 함 읽어봅니다. 다같이 시작.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여러분 이 아브라함의 얘기를 볼 때 아버지 데라의 얘기가 나오죠. 그죠? 데라. 데라의 얘기가 나오는데 70세에 아브라함과 누구를 낳았다는 거예요? 아브라함 그 다음에 나홀, 하란을 낳았어요.
하란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롯이지요. 그죠? 롯을 데리고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그럼 70세 세쌍둥이를 낳았냐? 그게 아닌 거 같고요.
데라가 부인이 좀 몇 명이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래도 지금 낳은 자는 남자만 얘기하고 있죠? 그죠? 일단 사라도 이복누이라고 그러잖아요. 이복누이. 그래서 데라 가 70세에 아들 세 명을 낳은 거 같아요. 그 부인들이 낳은 거 같습니다.
자 오늘 창세기 12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그 죠? 근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잖아요. 그죠?
아브라함을 통하여 많은 백성을 이루고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조상 으로 아브라함을 택했단 말입니다. 근데 아브라함에 나타나서..
어디 나타났죠?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뭐라고 얘기하 냐면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거기를 떠나라는 거예요. 왜 거기를 떠나라고 했는가?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왜 거기를 떠나라 했는가 이 얘깁니다. 우리 여호수아 24장 함 가보겠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서 5절. 다같이 시작.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아브라 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 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었노라
그니까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뭐 냐면 거기 뭐라 그랬어요?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랬죠? 2절 보니깐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 이렇게 되있죠? 그니까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그 계획을 갖고 계신데 하나님의 백성을 삼을 계획을 갖고 계신데 아브라함을 뽑았잖아요. 그럼 왜 갈대아 우르에서는 왜 안 되냐 이거예요? 보니깐 우상을 섬기고 있더라는 거예요.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야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가나안을 주실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이 본문에서 처음에 생각해봐야 할것은 뭐냐면 우상의 자리에서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한국에서 이렇게 떠나왔어요. 떠나와서 예수를 믿게 되고 또 이렇게 참 하 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쓰임받는 인생을 살게됬습니다. 제가 만일에 한국에 있었다면 저 는 저에게는 학문이 우상이였고, 명예가 우상이였고 그랬었을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선택했기 때문에 창세이전부터 써야 되기 때문에 불러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불러내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이란 나라가 내 안에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 리고 아프리카라는 나라가 있었고... 하나님 참 희한해요. 믿기 전부터 내안에는.. 그 니까 내가 미국이란 나라가 나에게는 참 언젠가는 가야된다는 그게 강하게 온 때가 언제냐면 중학교 때입니다. 예수도 믿기 전이예요. 나는 미국을 꼭 가야 된다는 게 있었어요. 참 희한하죠.
그니까 하나님은 제가 거기에 있었으면 우상을 섬겼다. 할렐루야 안철수가 저랑 같이 공부했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불교인거 같아. 불교. 하나님은 왜 그를 안 불러 냈을까?
여러분 있잖아요. 참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고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행하시는 일들을 보면 너무너무 감사해요. 너무너무 감사해.
그래서 그 사람이 들으면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아... 그니까 왜 하 나님은 불러 내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왜 미국 왔을까요?
하나님은 왜 한국에 두시지 왜 미국으로 보내셔서 미국에 와서 예수 믿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봐요. 할렐루야 다네 거의...
한국에 있을 때부터 예수 믿은 사람 두 사람 밖에 없네. 손 안드는 거 보니깐.. 여러분이 한국에 있었으면 저도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우상을 그대로 섬기고 있지 않 았나..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상을 떠나기를 원합니다. 근데 이 우상은요. 처음에 그 큰 우상. 우리를 하나님 곁으로 가는 걸 막는 그런 흑암에 거하도록 그 우상도 있 지만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는 우상들이 또 있을 수
가 있어요.
그래서 늘 우리는 영혼이 깨어있어서 내가 혹이라도 하나님 외에 하나님을 알고나서 도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도 봐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의 자리를 떠나야 내 마음 안에 가나안. 현세천국 하나님이 통 치하시는 나라 심령천국 영혼 천국까지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근데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왜 불러냈냐?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게 첫째죠. 그죠? 이게 구원입니다. 영원한 불못에서 구원 받는 거. 백성 삼으시기 위해서 부르셨고...
두 번째는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부르셨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 젖과 꿀은요, 누가 주시는 거냐면 하나님이 주시는건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뭐 냐? 내 안에 내 심령안에 심령천국이 이루어지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는 나라.
가나안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얘기합니다. 그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불러내셨어요.
어디서? 흑암중에 거하던 우리를.. 할렐루야. 기이한 빛으로 우리를 불러내셨습니다.
근데 여러분 아브라함도 그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낼 때도 그랬고 우리 도 그랬는데 불러내셔서 구원하고, 구원하시고 나서 이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나 안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겁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디로 인도하시느냐?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더라는거예요
구원하시고 나서, 구원하시고 나서는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더라....
근데 이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내안에 통치하는 나라를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은 광야를 거치게 하신다. 광야를 거치게 하시더라는 겁니다. 광야가 없 다면 가나안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그 다음에 가나안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그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광 야를 거쳐야한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거쳐야한다.
여러분 이 광야라고 하는 것은...
이 광야라고 하는 것은 헐벗고 주리고 그런 데죠. 그죠?
그렇지만 거기 안에서 하나님이 안계시냐?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 으시잖아요.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헐벗고 주리고 목마르 고 이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원망불평하고 살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광야는 하나님께서 왜 있게 하시냐? 하나님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의 물질을 앗아가시고 없게 하시고, 안 되게 하시고, 어려움이 있게 하 시고, 환란에 있게 하시고 왜 있게 하신다고요? 내가 눈에 보이는 떡으로 사는 존재 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 게 하기 위해서...
그걸 배운자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누가 얻냐? 누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냐? 누구에게 하나님이 그 통치하시는 나라가 그 심령안에 심령천국이 임하느냐? 하나님으로 사는걸 배운 자에게...
여러분 저는 전도사 시절 때 참 물질적으로 궁핍했어요.
너무 궁핍했어요. 1불 하나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안주시는데 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나는 그게 왜 그런가? 처음에는 잘 몰랐었어요. 아니 하나님 함께하시면 풍족하게 좀 해주시지. 내가 원하는 건.. 어렵지 않게 주의 길 가면서 말이야 그걸 원하는데 정말 간당간당 그렇게 해주셨어요.
근데 그러면서도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걸 꼭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이거야? 왜 그러냐 나는 이게 퀘스쳔이었어요. 퀘스쳔. 그럼 함께한다는 사인이라도 보여주지 말지. 그렇잖아요.
근데 이제야 제가 생각을 해보는데 저에게 신명기 8장 3절. “너는 보이는 떡으로 네 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철저하게 훈련시키 기 위해서 실제적으로 내 몸으로 경험하고 내 삶으로 경험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가 깨닫습니다. 할렐루야~
이 광야의 삶을 지나고 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 광야의 삶이 사실은 나에게 너무 복인데도 그거를 잘 모르더라는 겁니다. 그 때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드리는 믿음이 필요한데.
제가 얘기 했잖아요 어떤 식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걸 보여주느냐..
제가 얼마나 가난했냐면 저 뒤에 식탁에 놓는 네모잡이 종이 있잖아요. 신학교를 운 전하고 가야... 40분 운전하고 가야하는데 5번 타고, 그 때 가스비는 있었나 모르겠 네. 수중에 1불도 없었다니깐..
근데 가는데 99센트에 두루마리 휴지가 그때 (요즘에는 그런 거 없어요), 그때는 참 처음이라서 두루마리 휴지가 여섯 개 들어가지고 1불이야. 그걸 사서 썼거든요. 근데 손을 씻고 나서 부엌에서 이렇게 닦으려고 두루마리 휴지로 닦으니깐 휴지가 더 묻는 거야. 내손에..
근데 빨리 가야하는데 그걸 떼내려고 시간이 더 걸리는거예요. 오 마이 갓.. 그래서 내가 중얼중얼 했어. 뭐라고 했냐... 하나님 아무리 나한테 돈을 안줘도 이거 네모잡 이 저거는 손에 안 붙잖아요. 저거 사서 쓸 만 한 돈은 줘야 되지 않겠냐 그러고 신 세한탄, 신세타령 인가 뭔가 하나님께 한마디 뱉고 지나갔어요. 아무리 안줘도 저거
살돈은 좀 줘야 되지 않냐고 그러고 나갔거든요.
5번을 타고 근데 20분을 내가 운전했어요. 8시 9시인가 그래 운전을 막 20분인가 하 는데 5번이니깐...
60마일 50마일 속도로 갔을 거 아니예요. 고속도로니깐..
가는데 내 앞에 저 네모잡이 휴지 저게요. 스무 개가 앞에 떨어져 있는 거야. 근데 그 순간 뒤를 딱 돌아봤지. 그랬더니 차가 거의 안 오는 거야. 저 먼데야... 그래서 어떻게 했겠어요, 제가?
비상등 깜빡이를 켰지. 노란 거. 키고 딱 내려가지고 안았는데 가슴에 안았는데 다섯 개 밖에 안 안기네. 스무 개가 다 안겨야 되는데.. 다섯 개.
딱 앉고 딱 타려니깐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탔지. 나는 아니깐 순간적으로 오 니깐 딱 탔는데 다섯 개를 안고 딱 탈라 그러니깐 뒤에 차가 벌써 와 있는거야.
외국 여자가 머리 긴 여자가..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내가 너도 몇 개 주워줄까?” 그랬더니 아니래.
그래서 기다리니깐 내가 할수 없이 다섯 개만 딱 넣고 왔는데 내가 후회를 했죠. 다 갖고 탈껄. 왜 내가 15개를 남겨놨냐...
그래갖고 와가지고는 전도사님들한테 자랑을 했지. 점심 먹는데 “야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다 말이야 아침에 내가 한마디 했는데 주시는 거 보라”고 갖고 가서 쓰시라고 그 랬더니 자기도 기분 좋아하고 갖고 가서 썼어요.
그러고 2개 나눠주고 난 3개를 갖고 온거야. 근데 그런 일들 뿐만이 아니예요.
정말 하나님은 내가 정말 네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 있다 정말 보여 주시면서까지.. 근데도 돈은 안 주시네 왜 그런가. 퀘스쳔이었어요.
내가 주면 뭐, 내가 그 당시에 그렇게 주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좀 줘도 괜 찮지 않아요? 뭐 딴 데 내가 쓰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주시는데 근데 꼭 내가 한마디씩 하는 건 또 주는 거예요.
근데 그때가 무슨 때였냐? 신명기 3장 8절.
내거 보이는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사는걸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저에 게 헐벗게 하시고 굶기시고 못 입게 하시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근데 너무 감사해요. 그때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은 못하죠. 왜냐?
지금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편이니깐 광야의 삶을 지나고 나면 하나님 이 부어주시는 때가 옵니다. 이게 하나님이 내 안을 통치하고 나면 삶이 형통하게 되 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삶을 나에게 왜 광야의 삶이 필요한가?
꼭 필요하다. 근데 이 삶을 통해서 거쳐야만이 가나안을 주시더라는 겁니다. 나에게 왜 어려움이 와있는가? 내가 왜 이 고통을 당해야 되는가?
거기에 대한 모든 해답은 바로 신명기 8장 3절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 사는 거를 알게 하기 위해서, 지금 현재의 고난과 고통과 환난이 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요? 여러분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광야의 삶을 내가 지나고 있을 때 힘든 거 압니다.
헐벗고 주리고 목마르고 눈물 나고 힘든 거 알아요.
그러나 그거를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인정해드리며 이렇게 지나고 나면 반드시 가나안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아브라함에게서 봐야될 게 뭐냐면... 두 번째 우리가 그 창세기 12장 4절을 한번 다시 봅니다. 창세기 12장 4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참 여기서 여러분 은혜도 받아야 되겠지만 이 성경에 적혀있는 얘기들이 때로는 조금 사람의 손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자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잖아요. 그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다.
그 때 하나님이 뭐라 그랬냐면, 너는 본토 그 다음에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랬잖 아요.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근데 아브라함은 떠나긴 떠났는데 누 구를 데려갔습니까? 아버지 데라도 함께 갔고 친척 롯도 함께 데리고 갔어요. 하지 말라는 짓을 한 거예요. 아브라함 보고 너는 가라 뭘 떠나라 그랬냐면 “본토 친척 아 비 집을 떠나서 너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랬는데 아브라함은 데라를 데 리고 떠났고 롯을 데리고 떠났어요.
근데 이 데라가 아버지잖아요. 70세때 세 명을 낳았다 그랬죠? 나홀, 아브라함, 하란 이죠. 그죠? 하란이죠? 이름이..
아브라함 낳았는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가 몇 살이라 그랬어요? 이 하란이 아니죠.? 이름이 지역명이죠. 75세다. 그러면 이때 데라의 나이는 몇 살이겠습니까? 145세죠. 우리 하나 보고 지나가겠습니다.
스테판이 한 얘기인데요. 사도행전 7장 2절입니다.
사도행전 7장 2절이 되겠습니다. 다깉이 197페이지
2 스데반이 가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 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 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 곳에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 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여기까지만 읽겠습니다. 자 4절 한번 봅니다. 7장 4절 다시 한 번 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 를 거기서 너희 지금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하란에 머물렀다 이거죠. 하란에 머물렀다. 근데 하란에서 지금 거하는 이 땅 가나안 이죠? 그죠? 지금 스데반이 지금 이스라엘.
스데반이 있는 데가 가나안이죠. 지금 이곳으로 옮기셨다는 거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언제요? 데라가 죽을 때 그죠? 데라가 죽으매...
이 얘기가 뭡니까? 하나님이 데려 가신 거예요. 왜냐? 아브라함이 가야될 때는 어디 입니까? 가나안이거든요.
근데 아버지 데라가 집에 가장이니까 가다가 하란이 좋으니까 하란에 머물려 버린 거 예요. 그니까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셔야 되는데..
이루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리고 떠나지 말아야 되는 아비를 데리고 떠났는데 그죠? 그 데라가 하란에 같이 머물자 그랬더니 다 거기서 머물렀더니.. 하 나님이 데라를 데려가시고 그제서야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온전히 순종하라. 온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생각을 거기다 끼워 넣거나 하나님 이건 왜 안 됩니까? 이것쯤이야.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니깐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반드시 그 가는 길에 올무가 되고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방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갈 걸 한참 기다려서 왜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25년이나 걸려서 줄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25년이나 걸렸어요. 25년이나..
일찍 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그니까 여러분 하나님 하지 말라는 짓.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분적이 순종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겁니다. 데라를 놔두고 떠났어야 됐어. 니 아비를 떠 나라고 그랬는데 아비를 데리고 떠난 거야. 그렇잖아요?
떠나긴 떠났는데...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처음부터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걸 보였으면 그의 믿음이 아직 그렇게 안 됐다는 거죠? 아직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우리가 아브라함을 감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나 그 믿음의 조상이 되 기까지는 아브라함의 처음에 가지고 있던 그 믿음은 너무나 아니었다는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까지 만들어주셨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희망을 갖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구나. 그러니까 여러분 하지 말라는 짓을 했더니 데라 때문에 하란에서 얼마간을 머물렀지는 몰라요.
그러나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갈 때 75세였더라. 근데 여러분 우리 하나만 찾아보고 넘어갑시다.
창세기 11장 32절. 창세기 11장 32절.. 31절부터 32절. 다같이 시작.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그 다음에 중간에 머무른거죠?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여러분 여기서 뭐가 잘못된 걸까요? 나이가 잘못됐죠?
지금 창세기 11장 32절에서 보면 205세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죠?.
그러면 예를 들어서 205세가 맞으면 아브라함이 75세 때 떠났으니깐 75세를 빼면 얼 마일까요?
아닌가? 75세를 빼는 게 아니죠. 70살을 빼야죠. 왜냐면 70세 때 아브라함을 낳았으 니깐.. 그럼 몇 살이예요? 135세.
그럼 아브라함이 만일 이게 맞다면 아브라함이 135세.
아 ! 이게 데라의 나이죠. 데라. 제가 이게 요즘에 계산이 잘 안돼요.
저번에 창세기를 강의하면서 제가 계산 때문에 저는 수학을 참 잘하는 사람이예요. 해법수학까지 다 풀은 사람이예요. 근데 요즘에 와서 산수가 안되네.
지금 이게 70세가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나이죠. 그죠? 그렇잖아요? 그러면 135세 이게 왜 나왔냐.. 그렇지..
135세가 왜 나왔냐면.. 여러분도 모르겠죠?
내가 모르니깐 여러분이 알 리가 있겠습니까? 135세가 왜 나왔냐면... 75세때 하란 을 떠났다 되어 있잖아요. 아브라함이...
그때 데라의 나이가 몇 세라는 겁니까? 135세라는 거야. 만일 이게 맞다면.. 그러면 75세때 하란을 떠났어요. 그러면 205세 때 죽었으니깐 아브라함이 몇 살 때 데라가 죽었단 얘기예요. 응? 그렇죠.
그러니까 60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는 거야. 데라는.. 그죠?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몇 살이예요? 135세죠.
그럼 데라가 135세에 죽었단 얘기인데 아브라함이..이게 맞는 얘깁니까? 그런 얘기가 있어요? 성경에?
예를 들어서 데라가 아브라함이 135세에 죽었다면.. 100세에 누굴 낳았어요? 이삭을 낳았죠.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니까 우리는 하나는 어떤 거 하나는 잘못기재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어느 게 잘못되었냐 하면 이게 잘못된 거 같애. 제 생각에는..
왜냐면 말이 안맞으니깐..
어떻게 아브라함의 135세가 되면 이삭의 나이가 35세인 그때 죽었다는 이야기가 어 디 있습니까?
가끔 가다가 왜냐하면 사복음서도 보면은 동일한 사건을 놓고 조금씩 틀리게 기록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듯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썼지만 이런 오류가 조금씩 생길수도 있다. 뭐.. 사 람 죽은 나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내가 왜 이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갈 수도 있어요. 왜? 은혜 받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 기 때문에..
근데 여러분은 나중에라도 이게 밝혀지면 퀘스쳔 마크가 생길 거 아니예요? 저도 생 겼었으니깐.. 그럼 제가 지금 어떻게 얘기해드렸습니까?
아무래도 205세가 아닌 거 같다는 얘기예요. 할렐루야
뭐 이런데 할렐루야 안 해도 되지만 그래도 조금 알고 지나가자. 조금 생각하고 지나 가자. 그래서 중요한건 뭐냐?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반드시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에 있어서 발목을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발목을 잡힌다. 더 빨리 갈수도 있 는데 오히려.. 그게 뭡니까? 결국 뭐예요? 내 육신의 생각은 뭐예요? 사망이예요. 내 생각 끼워 넣으면 결국은 사망을 갖고 오더라.
예를 들어서 데라를 안 데리고 떠났으면 아버지를 안 데리고 떠났으면 자기는 더 빨 리 가나안에 들어갔을 것이고, 데라는 고향에서 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 얘 깁니다. 그렇지만 또 더 어떻게 생각하면은.. 생각 그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그 다음에 롯을 데리고 떠났잖아요.
롯도 데리고 떠나지 말았어야 돼. 롯을 데리고 떠났더니 어떤 상황들이 발생합니까? 이것도 올무 역할을 해요.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올무 역할을 하다가 소돔과 고모라 거기서 망할 뻔했는데 (죽을 뻔 했는데)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살아나죠. 살아났지만 나중에 결국 또 롯은 자기 두 딸하고 자식을 낳잖아요. 그래갖고 그 낳은 자녀들이 누구냐면.. 모암과 암몬자손이거든요. 모압과 암몬자손이 지금 어디냐? 이란과 이라크 예요. 그런 요단동쪽.
그니깐 늘 이스라엘의 민족이 여정에 있어서 광야를 거쳐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길
목에서도 모압과 암몬 자손은 그들을 대적했어요.
결국 하지 말라는 짓을 했더니 결국은 뭐예요? 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결국은 사망의 삶을 사는 것을 보여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말자. 그래서 여러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는 사실은 주인과 종의 관계거든요. 하나님도 아브라함을 택해서 그의 백성 삼아 주 신 건데 백성 삼았다는 것은 그는 왕이고 우리는 백성이고 이런 의미가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종의 관계. 이런 관계가 있는데..
진짜 종은 주인이 한 말에 대하여 따지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집어넣지 않습니다. 그니까 우리는 종의 신분으로 잘 살기만 하면 되는데 아브라함의 그 믿음은 아직도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하란을 떠날 때의 그의 믿음은 아직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참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도. 하지 말라는 짓 하고 앉아있고 내 육신의 생각을 하 나님의 말씀에다 끼워 넣고 그런 삶을 언제까지 살 거냐.. 이 얘기예요.
그럼 어떡하냐? 우리 신앙의 여정에 그 모든 내가 생각하는 육신의 생각대로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나의 발목을 붙들고 사망의 삶을 살게 하고 내가 가는 그 길을 느리게 가게 하더라는 겁니다.
어~ 되도록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게 하고자 하는 그 길을 빨리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요.
세 번째 우리가 여기서 나눌것은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에 대하여 10절에서 20절 말 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땅은 어떤 땅입니까? 가나안이죠. 그죠? 가나안에 기근이 온거죠.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 그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 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미친놈이죠. 그죠?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내가 감히.. 제가 벌 받아야되겠지 만 지금 이 상황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14절부터 20절까지. 다같이 시작.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 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 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그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지금 이 상황에서 보면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죠. 근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디로 보내냐면은 가나안으로 보내셨어요.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나안으로 보냈으면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죽든 살든 풍파가 일어나든... 죽을 거 같든 안 죽을 거 같든 반드시 거기에 있었어야 됐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될 자리에 지금 있게 하고 계시고 있거든 요. 그런데 만일에 그 자리가 풍파가 일어나고 내가 죽을 거 같고 그렇다고 해서 내 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오늘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곤란을 겪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기근이 왔었어도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기근에 대해서 구해야 됐었어요. 애굽으로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는 자는 화가 있을진저 이사야서에서 얘기 하고 있죠.
기근이 왔더라도 하나님 앞에 앉아있었어야 됐어요. 왜냐? 가나안으로 가라고 한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예요.
그러면 기근이 왔더라도 하나님은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거든요.
자기 자녀를 굶어죽이겠습니까? 자기 자녀를 백성 삼아놓고 죽이려고 보냈겠습니까? 그게 아닌데.. 그 믿음이 아브라함이 아직 없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라는거 죠. 하나님이 나를 어디에 있으라하고 딱 박아놓은 자리가 있어요. 박아 놨다. 그 자 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떠나고 싶어도 그 자리를 지켜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나를 어느 집에 시집을 보내놓고 아들딸을 줘놓고 그런 자리에 뒀어요. 근데 삶의 풍파가 오고 그러네. 근데 내가 죽을 거 같아서 그 자리를 떠나면 어떤 상황이 오냐?
아브라함의 그 예에요. 아브라함이 죽을까봐 내려갔잖아.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어떤
죄를 저질러요. 더 큰 죄를 저지르잖아. 자리를 떠나면 그렇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듯이..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자리 하나님이 나를 두신 자리..
그 자리를 떠나면 그 죄만 짓는 게 아니라 더 큰 죄 돌이킬 수 없는 죄들을 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자리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된다. 그건 철칙이예요. 환경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뭐냐? 바로 그거예요. 나를 두신자리.
여러분 저를 두신자리가 어딥니까? 여깁니다. 저를 보세요. 거기를 떠나면 안돼. 그 울타리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여러분 좀 안 좋은 이야기지만 나오미도 그죠. 나오미. 나오미도 가나안에 있었어야 됐었어요. 근데 가나안이 기근이 드니깐 어디로 가냐? 모압으로 가죠. 모압. 자기 남 편하고 두 아들 데리고 모압으로 갑니다.
근데 거기서 두 아들이 결혼을 하죠. 며느리들을 두 명을 얻죠. 룻과 오르바. 근데 10 년 내에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자기가 있어야 될 자 리를 떠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알죠.
왜 하나님이 자기 남편과 두 아들을 10년 내에 데려가셨는지를 압니다.
자기가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때 나같이 저주받은 여인이라고 얘기합니다. 내가 하 나님 앞에 불순종했더니...
그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서 지금 아브라함이 떠났어요. 떠나가지고 곡식 을 얻으러 갔는데, 죽을까봐 갔는데 자기 마누라가 사라가 너무 이쁜거야. 사라가... 너무 이쁘다. 10살 차이니깐 75세. 10살을 빼니깐 65세. 그렇게 이뻤다는 거야. 그 때는 쫌 장수하는 그때 170세까지 살고 그렇기 때문에 65세가 볼만한 나이인지 모르 겠어.
근데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아름다웠대. 바로가 그를 취하려고 궁으로 불러들였죠.
자 이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앉지 않고 가나안으로 도움을 구하러 가는 자체가 하나님한테 벌 받을 짓인데 자기가 살고자해서 자기 아내 사래를 팔아버리잖 아요. 자기 목숨 구하려고..
저는 여러분 오늘 아침에 제가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어요. 내가 과연 내 남편을 사 랑하는가? 얼마만큼 내가 사랑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봤어요. 근데 정말 제가 솔직 하게 말하는데 아직도 저는 제가 제 몸같이 사랑하고 있지 않더라고요. 그것에 대하 여 아침에 잠깐 회개를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남편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남을 내 몸같이 사랑 할 수 있겠는가?
저는 참 황당했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오는데.. 어 아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구나. 내 남편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다른 이웃을 내 몸같 이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해봤어요.
다시 제가 좀 회개하고 아니다..
우리는 항상 나를 가르쳐야 되잖아요. 이게 아니구나. 항상 자기를 훈련하고 자기를 가르쳐야 되는거..
근데 지금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냐면요, 아브라함은 지금 이 상태 아브라함의 믿음은요, 완전히 절벽에 떨어진 절벽에서 땅으로 믿음이 여기 있어야 되는데 이 땅 바닥에 완전히 곤두박질한 그런 믿음이었어요.
하나님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때 부인이 누굽니까? 사라거든요.
그러면 사래를 통해서 후손을 통해서 너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라고 분명히 말 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아브라함은 사래를 자기가 살기 위해서 팔아버리는 거 야.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딱 그 상황을 봤을 때 도저히 헤어 나올 가망성이 없는 거야.
이 아브라함은 내가 구해내지 아니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야. 그 믿음이.. 그니깐 성경에는 무슨 말씀이 있냐면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은 넘어지게 하되 완전히 넘어지 지는 않게 하나님이 이렇게 붙드실 때가 온다는 거야.
붙드시는 때가.. 완전히 넘어질 때는, 완전히 넘어지면 경륜을 못 이루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에게 나타나가지고 그 집을 치고 말씀하기를 그는 선지자의 아내 라는 거예요. 선지자의 아내. 그리고 저사람 아내니까 보내라는 거죠.
그렇게 해가지고 아브라함은 자기 누이라고 그래갖고 넣어놓고 자기는 양과 소와 재 물을 받았잖아요, 아내를 판 그걸로..
결국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아내가 자기한테 돌아오고 그 다음에 가나안에 다시 들어 오는데 이런 상황을 보면...
그니까 아브라함은 정말 믿음이 완전히 떨어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간섭을 하셔갖고 그를 다시 이끌어내서 제발 달래가지고 돌아오게 하는 그 런 장면이예요. 제발... 왜냐면, 재물까지 얻어갖고 도로 돌아오게끔 그렇게 이상한 짓 을 그런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히려 재물까지 얻게 해갖고 가나 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브라함은 들어와서 먼저 한일이 뭐냐?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 습니다. 뭐했겠습니까? 회개했죠.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인데 내가 그를 믿지 못하고 이렇게 저질렀던 그 모든 죄에 대 해서 회개하는 거죠.
그니까 이 아브라함은 늘 믿음이 엎치락 뒤치락 했어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붙 들어주셨어요. 우리도 아마 마찬가지일겁니다. 내가 저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하나님
께서 나를 붙들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회복할 수없는 그런 상태에 갔 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완전히 넘어질 수도 있었는데 안 넘어지게 하시고 붙들어 주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됩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됩니다. 우리 한군데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31장입니다. 31장 1절에서 3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 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뢰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 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 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여러분 내 인생에 환난이 왔을 때 우리는 어디로 먼저 가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먼저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 먼저 맡겨라. 하나님께 먼저 도움을 구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 안 앉고 먼저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 들은 화있을진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세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 님이시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6절과 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 그분이시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그니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도움을 우리가 먼저 어디로 구하러 가야되겠습니까? 하나님께 가야한다.
내가 질병에 걸렸다. 하나님께 앉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먼저 앉아라. 하나님께 먼저 앉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고 묻고 왜 이 질병이 왔는지 왜 안 고쳐 주시는지 충분히 기도 해야 됩니다.
근데 우리는 이런 질문이 생겨요. 그럼 질병은 하나님 앞에서만 구하고 의학의 도움
은 받지 말아야 되나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어린애가 아토피가 걸려서 안 나아요. 아무래도 안 낫네. 근데 믿음으로 기도하라 그래서 믿음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잘 안 낫고 애는 고통이 심하고 그럴 때 여러분에게 퀘스천이 생길수가 있어요. 애한테 약을 주지 말아야 되나 믿음 으로 해야 되나 애는 고통이 심한데
자 하나님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의약도 주신 거예요.
만일에 약을 발라서 낫는 것은 약이 낫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낫게 하시는 거예 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낫게도 하시고 싸매기도 하시고 상처주시기도 하시고 그분이시라는 거예요.
약은 어느 정도 잠깐의 도움이지.
하나님이 낫게 하시면 약을 발라서라도 다 낫게 하실 수 있고 다음에 또 재발하게 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그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 아야 됩니다. 약은 사실은 조그만 도움이예요. 수술 조그만 도움이예요.
또 다시 안 생긴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한테 합격되지 못하면..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 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의 마음자세를 보는 거예요. 네가 누구를 인정하고 있는가? 그 모든 것을 주관하 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학도 하나님이 사용을 하셔요.
그니까 우리 마음 자세를 하나님이 모든 걸 하고 계신다. 거기에다가 더 믿음을 둘 수 있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것만 하고 점심 먹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아브라함에 있어서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를 한번 생각해보면 여러 분 두 번째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제가 나눌 거예요.
근데 이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뭔가를 보면 아브라함의 인 생을 우리가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로 한번 나누어보면 하나님은 객관적 인 구속사는 뭐냐? 결국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을 주셨고 이삭을 통해서 야곱과 에서가 나왔고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열두지파를 형성하는.. 그래서 이 열두 지파 속에서 또 아브라함에게 말했듯이 네 씨로 인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이미 이방국가가 복을 받을거라서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얘기해 놨다 말이죠. 유다지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왔잖아요. 예수님.
이방이 모든 민족이 네 씨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객관적인 구속사를 보면 아브라함이 객관적이 구속사에 참여한게 뭐냐? 이삭
을 통해서, 이삭을 줬잖아요, 이삭을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의 민족을 이루게 된 것 이 객관적이 구속사입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받쳐라 하는 그 시험에 통과 하지를 못했다면 하나 님이 처음 하신 약속, 너로 인하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한 나라를 이루 고 이 가나안땅을 너에게 후손에게 줄 것이다 하는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아브라함은 그 믿음에 통과했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인 구속사 를 이룰 수가 있었어요.
그럼 주관적인 구속사는 뭐냐?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아까 우리가 봤듯이 그 의 믿음은 엎치락 뒤치락.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연단하셔서 정말 이삭을 번제로 드 릴 수 있는 죽은 자도 살리셔서 반드시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 질 거라는 그 믿음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연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관적인 구속사입니다.
한 인간을 객관적인 구속사에 쓰임 받기 위해서 그 인생을 다루어 나가신 얘기. 이게 주관적인 구속사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을,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왜 어떻게 해서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어졌는가가 우리 성경에 자세하게 나와 있죠. 그의 실패한 얘기, 넘어졌던 얘기, 다시 일어나게 됐던 얘기 그 모든 것들이 성경에 적혀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또 믿음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 사건들을 통해서 또 아브라함의 엎치락 뒤치락했던 그 믿음이 약했을 때 그 사건 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먼저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이 후에는 광야의 삶이라는 삶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하시고 또 아버지 하 나님을 주시기 위해서,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 광야의 삶을 거치게 하시는 그 하 나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 하지 않기를 원하고 그리고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가는 길 속에서 좀 더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 야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셔서 반드시 성경에 얘기가 적혀있는 것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실패한 얘기들이 적혀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동일한 실패와 실수
를 하지 않으라고 적혀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교훈삼아서 정말 잘 살아드릴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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