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189.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 서사라 목사님

하늘이슬 2024. 8. 7. 16:00

189.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 서사라 목사님

 

이 노래를 많이 부르십시오. 여러분의 여러분을 옭아매고 있는 악한 영들과 또 질병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결박을 푸신 분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 영혼을 자유케 하시고 그 억압 속에서 마귀의 아버지 하나님 종노릇 하던 우리를 아버지 안에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또 아버지 하나님 그 후에도 예수 결박 푸셨도다. 아버지 질병을 가져다주는 모든 영들이 우리의 결박을 풀고 또 아버지 안에는 우리 악한 영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예수로 인하여 그 결박이 풀려난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시간 자유케 하시고 아버지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해방케하는 아버지와는 그 결박을 푸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뭐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우리 오늘 첫째 시간에는 요한복음 15장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1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혹시 또 읽으실 분들은 읽으시고 요한복음 15장입니다. 다같이 151절에서 5절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물은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과 첫 번째로 보고자 하는 그 구절은 뭐냐면 2절 말씀입니다.
2절 말씀에 보면 무릇 내게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이 구절에서 나는 과연 과실을 맺고 있는 가지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죠. 아예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뭐 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끊어내버린다는 거죠. 과실을 안 맺고 있는 가지는 아예 이걸 쳐버린다는 거요. 쳐버린다 제해버린다는 거죠. 그러면 나는 그런데 과실을 맺고 있는 가지는 뭐라 그랬어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그러면 여러분 과연 우리는 나는 과실을 맺고 있는 가지인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실을 맺고 계세요? 여러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실을 맺고 있는 가지가 누구냐? 바로 우리들인데, 우리는 그래도 과실을 맺고 있는 가지들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 와서 앉아있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기 위해서 모여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모여 있는 것이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 뜻대로 행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그렇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지금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은 그렇죠. 그들은 본인이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거나 어쨌든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열매가 크거나 작거나 조금이거나 여러 개거나 한개거나 맺고 있는 가지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그 열매들이 여러분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맺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런 가지들을 하나님은 뭐라고 했냐? 그렇게 열매를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맺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한다고 그랬어요? 깨끗이 하는 작업을 하신다. 깨끗이 하는 작업, 깨끗히 하시고자 하신다. 왜 어떻게 하라구요?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아멘입니까?

우리 시편에 보면 어떤 말씀이 있냐면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확정되었다.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리이다. 내 마음이 확정됐다는 거예요. 어떻게 확정됐냐면 하나님만 따라가기로. 할렐루야. 하나님만 따라가기로 확정된 자들, 그런 자들이 뭐냐면 과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조금이거나 많거나 맺고 있는 가지들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그 가지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냐?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 깨끗히 하시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은 어떻게 그 가지를 깨끗히 하시냐고요? 어떻게 깨끗이 하시냐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시편 119편 에 나와 있어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게 하리까 그랬더니 뭐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가 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끗히 하시는데 뭐를 깨끗히 하시냐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하신다. 할렐루야.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히 하신다는 거에요. 우리를 그러면 말씀을 어떻게 깨끗히 하냐?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 깨끗히 하고 계신다. 그럼 어떻게 깨끗하게 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죠.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히 하는데 그게 어떻게 찾아오냐면은 우리 인생에는 고난으로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히 하실려고 그렇잖아요.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내 말씀, 그냥 성경에만 있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통과해서 그 말씀이 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더라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저 다윗이 얘기했잖아요.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나 고난을 당한 후에는 주의 법도를 지키나이다. 이런 말씀을 하죠.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히 하시는 작업으로 뭘 하고 계시냐면 고난을 허락하시더라구요. 고난. 그 여러분의 삶 속에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말씀이 되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포도나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랬어요. 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못 맺는다고 그랬어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을 책망하신다. 그러면 여러분 이 생명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는 거죠. 우리가 생명으로 살지 못하는 것, 이 생명이 누구냐 하면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시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살지 못하는 삶을 하나님은 책망하시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깨끗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데 생명으로 살지를 못하니까, 예수로 살지를 못하니까 나에게서 예수가 나가야 되는데 예수로 살지 못하니까 생명으로 살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은 그 가지를 깨끗히 하시기 위해서 가지의 삶에 우리의 삶에 환란과 고난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레미야 18장 한번 가보죠. 예레미아 18장 우리 요한복음 15장 이건 또 다시 또 돌아올 겁니다. 예레미야 18장 함 가보죠.
예레미야 181절부터 6절까지 다같이 시작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토기장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네 말을 너에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적 그가 농노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다같이 시작 6절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는 토기장이고 우리는 그 손에 있는 진흙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은 토기장이 그렇죠.
그분은 토기장이 토기를 만드는 사람, 우리는 그 손에 있는 손 안에 있는 손에 있는 진흙이다. 그분의 손에, 그분의 손에 있다는 거예요. 손에 있는 진흙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선하신 대로, 선한 생각대로 그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드시죠. 나는, 우리는 그 손에 있는 진흙입니다.
진흙을 이제 만드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많은 고난을 허락하셔서 많은 고난을 허락하셔서 이거 지나가면 통과하면 다른 것도 오고, 또 다른 거 또 하나 통과하면 또 다른 게 오고, 그래서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이걸 갖다가 물결타기 이왕 갈 바엔 즐겁게 가라, 즐겁게, '아 하나 지나고 통과하면 또 하나가 오는구나' 아멘. 힘들지만 아멘. 파도타기 잘해라 정확하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 생명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아십니까?

생명으로 산다는 거,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그냥 예수가 흘러나가는 것이지요. 나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이게 가지된 된 삶입니다. 예수가 나를 통해서 흘러나가는 삶, 흘러나간다. 예수가 나를 통해서 흘러나가는 삶입니다. 그러면 진리적인 삶, 진리의 삶은 진리단계 우린 생명단계 진리단계를 얘기하는데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죠.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거, 몸을 쳐서 이거는 흐른다기보다도 억지로, 억지로라도 내가 하나님 말씀 앞에 굴복되어지는 것이지요. 진리적인 삶과 생명적인 삶이 어떻게 틀린가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옛날에 저에게도 있었던 사건인데 저는 이제 목사기 때문에 목사님들을 많이 만납니다. 같이 점심식사를 할 때도 있고 어떤 일로 해서 만날 때도 있고 다른 데서 여기서 말고 다른 데서 만날 때, 근데 어떤 인제 분들을 만나면 잘 알고 있는 처지는 아닌데 만나면 그런 게 좀 느껴져요. '내가 너보다 훨씬 낫다.' 말을 안 해도 그분의 모습이나 포즈나 태도에서 느껴집니다. 어떤 분은 아예 팔짱 딱 끼고 앉아있죠. 그럴 때 저는 제 안에서 올라오는 반응을 한번 봅니다.
왜 이런가? 옛날에 제가 본능으로 살 때는 그 자리에서 인제 제가 본능으로 살 때입니다. 그 자리에서 막 해댔어요. 니가 그만큼 잘났냐? 나도 그만큼 잘났다. 이렇게 막 해대는 거예요. 이게 본능적인 삶이에요. 근데 인제 훈련을 받고 그 영혼의 모습이 보이고 이럴 때는 인제 진리적인 모습 어떠냐? 표현은 안 합니다. 안에서는 근데 좀 부글부글 끓어요. 전혀 표현을 안 합니다. 억지로 복종해야 되니까. 안 해요. 그렇지만 어떻게 진리적인 모습 그래도 억지로라도 순종해서 그들을 이제 결론이 어떻게 나냐? 아 별로 기분은 안 좋지만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냐?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자가 아니라 뭐라 그랬어요. 섬기러 왔다 그러니까 저 분의 모습이 저렇지만 나는 그를 섬길 것이다. 할렐루야. 결론이 이렇게 나는 겁니다. 아멘. 같이 싸우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굴복이 되어지는 거에요. 하나님 저분의 모습이 아직도 저렇지만 나는 별로 기분은 안 좋지만 그래도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 굴복하겠습니다. 이게 진리적인 삶이에요. 무슨 얘긴지 아시죠. 그럼 생명적인 삶은 뭐냐? 그냥 예수가 흘러나가는 것 그런 고민이 없어요. 지금 얘기한 하나님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진 않지만 제가 그래도 하나님 말씀 앞에 굴복되어져서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다 하니까 저도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과정이 없어요. 생명적인 삶은 뭡니까? 그냥 그들을 섬기는 겁니다. 예수로 흘러나가는 우리 주님이 오셨을 때 고민한 게 있습니까?
그냥 지인들을 위해서 죽어주신 거 아닙니까? 그것처럼 이 생명적인 삶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는 거죠. 여러분 요셉이요. 요셉이 안 만들어진 지지 않았습니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그렇죠. 막 자랑하고 그리고 남의 잘못을 아버지한테 가서 고자질하고 말이에요. 아주 못됐었어요. 근데 그를 인제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고난이지 않습니까? 그거를 깨끗히 하는 작업 종살이 11년에다가 감옥살이 2년을 했죠. 종살이 11년을 마칠 때쯤 되니까 요셉이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냐? 형들이 잘못하던 고자질을 막 하던 그가 보디발의 아내가 먼저 꼬셨잖아요. 1~2번 꼬신 게 아니죠.

유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집어 씌워서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보내는데도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 그걸 뒤집어 씁니다. 여러분 옛날 같으면요. 요셉은 옛날 같으면 막 손 들고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잘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 나를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겁니다. 그랬겠지요. 근데 요셉은 많이 다루어져 있었어요. 그는 감옥에 갈 때쯤 되니까 벌써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워도 자기네 이제 생명의 삶을 사는 그런 단계까지 갔지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냐 말이에요. 우리를 어떻게 깨끗이 하시느냐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내 말씀이 되게 하시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생명으로 살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시고, 또 우리 삶에는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한 그 하나님의 작업이 시작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작업을 하시는데 언제까지 하시냐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게 되기까지. 할렐루야. 그래서 그분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그분에게 있는 진흙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에베소서 4장 한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413절에서 15절까지 한번 읽어봅니다.

다같이 시작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에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거. 그리고 1415절 다같이 시작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계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의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라기를 원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생명으로 사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생명으로 사는 사람 예수님밖에 없죠. 처음부터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셔요. 우리가 자라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생명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생명으로 살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시고, 또 고난을 또 허락해서라도 우리를 연단시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수의 모습 그 모습을 우리가 이루기까지 하나님은 그 열심을 거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그것을 이루리라.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서 구약에서 보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다룸을 받았어요. 그죠. 그들에게서 누구의 모습이 나타기까지?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그들에게서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그들은 다룸을 받았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뭐였냐면은 이삭을, 그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볼 수 있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하나님 말씀을 갖다가 자기 생명보다도 더 믿었다는 거예요.

뭐냐면 이게 예수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까지 연단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틀림이 없고,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믿음이 실제가 되기까지 하나님은 그를 연단하셨어요. 이게 예수의 모습이에요. 그다음에 모세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하셨는데 모세에게도 예수님의 모습이 있어요. 그게 뭐냐?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때까지 하나님이 연단하셨죠.

우리 예수님은 살아계셨을 때 여기 공생애 시대 뭐라고 그랬냐면 나는 내가 하는 말은 내 안에 계신 아버지가 나에게 하라고 시킨 말들이래요.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아버지가 계셔서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 그랬어요. 자기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게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모세가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발견하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어때요? 그를 연단하셨어요. 이게 생명 생명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이죠. 예수로 사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우리를 연단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끗히 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깨끗히 하셔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삭을 한번 볼까요? 이삭, 이삭은 가는 데마다 양보했습니다. 양보했다. 니가 우하면 내가 좌리라 우물을 싸움이 일어나면 다 이렇게 양보하잖아요. 싸우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않았다. 이게 예수님의 모습이죠. 싸우지 않았다.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 이렇게 싸우지 않는 자가 생명으로 사는 자죠. 니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이삭의 모습입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요셉도 그렇죠.

요셉은 예수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나타나냐면 보디발의 아내를 용서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자기가 대신 죄를 뒤집어 써도 아무 말이 없는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죄지은 건 우린데 그분이 우리 죄를 뒤집어 쓰셨잖아요. 그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의 모습이 우리 삶에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나는 토기장이요, 너희는 내 손에 있는 진흙이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만들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삶에 있어서도 지금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나에게 일을 하고 계시는가? 그 삶 속에서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맺어져있는 모든 인간관계 있죠. 지금 나에게 맺어져 있는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께서 나를 넓히시기 위한 그 사람이 아니라 나를 넓히시기 위한 작업을 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넓히시고자 할 때 넓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넓혀져라, 넓혀져라. 하나님께서 넓히고자 할 때 넓혀져야 그걸 통과합니다. 아멘입니까? 통과하고 또 다른 거 만나자. 그래야 성장하는 것이지요. 성장이 따로 있습니까?

성장은 내가 이걸 통과하고 또 오면 또 다른 건 또 통과하고 이렇게 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지요. 맨날 그 자리에서 머물고 있으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냐? 너희는 성령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의 내 마음을 강팎하게 하지 마라 아멘. 여러분 우리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5절입니다.
다시 한번 가볼게요. 요한복음 155절 다같이 시작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생명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예수가 나를 통해서 사는 것이다. 아멘 생명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가 나를 통해서 사시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가? 살고있지 않는가는 어떻게 나타나냐면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예수가 나를 통해서 살고 있는 거니까 나를 만나는 자는 누구를 만나야 돼요. 그렇죠.
나를 만나는 자는 예수를 만나야 되는 거예요. 이게 뭐라고 거러죠? 무슨 표라 그러잖아요? 그걸 무슨 표라고 그러죠. 이런 거를 예수가 나를 통해서 사는 것이 생명의 삶인데 내가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안 있는가가 뭘 통해서 나타나냐면은 나를 만나는 자가 예수를 만났느냐? 안 만나느냐? 지표가 되죠. 지표. 내가 예수를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 가 지표가 되더라고요. 지표. 그걸 결정하는 내가 정말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안 살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지표가 뭐냐? 그렇잖아요.
내가 생명의 삶을 과연 살고 있는가 살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나를 만나는 자는 예수를 만나는가? 안 만나는가? 하더라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이 말씀 앞에 참 부끄러움을 느낄 줄로 믿습니다. 정말 다 됐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저는 제가 옛날에 영성훈련을 받을 때, 앞에 서 있는 강사의 안 된 점들이 참 많이 보였어요. 물론 저도 그렇겠지요. 그리고 그냥 있었던 우스갯소리 같은 얘기인데 함 들어보셔요. 그분은 남자분이었어요. 남자분이었는데.

사모님이 젊은 분이시데 사모님이 인제 늘 와서 앉아있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그러셔요. 근데 이제 제가 느끼기에는 부부싸움을 했던 거 같애요. 전날에 근데 이제 부부싸움을 했는데 강사님이 서갖고 영성훈련 강의를 해야 되잖아요. 강의를 하러 선 거예요. 섰는데 이제 뭐 잠깐 싸운 얘기를 했나 안 했나 그랬는데 뭐라고 얘길 하냐면은 자기 사모님이 그랬대는 거예요. 내가 영성훈련 가서 다 불어버릴 거야. 그랬다는 거예요. 그 말을 앞에서 하시면서 하는 얘기가 저는 그런 자입니다. 그때는 제가 그냥 흘러넘겼어요.

그 말을 그랬나 보다 그냥 그렇게 넘겼는데 지금 제가 이렇게 수많은 세월을 그때가 뭐 10년 전에 얘기를 하면 5~6년 전에 7년 전의 얘기를 하면 세월을 거치면서 보내면서 '그렇구나 우리는 아무도 다 된 자가 없구나 위에서 내가 생명으로 완전히 살아서 내가 이곳에 서는 것이 아니구나' 할렐루야. 여러분 그때는 그분이 좀 그렇게 보였지만 지금은 제가 보면서 우리는 같이 가는 거구나. 할렐루야. 같이 간다는 사실이 참 감사한 거구나. 아멘. 여러분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성장한다는 말하고 성장한다는 말하고 생명으로 산다는 말 여러분 우리가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죠. 그죠. 그런데 이 말씀이 내가 연단 받은 말씀 만큼만은 나는 생명으로 살더라 이거예요. 동의하십니까? 내가 그 말씀에 대해서 연단받은 말씀만큼만은 내가 생명으로 살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과연 이게 연단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몇 가지가 되냐? 이거야. 몇 가지, 몇 가지, 몇 가지가 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어 나가고 계시는데 이 얘기는 낙담을 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실제를 얘기해요. 실제. 우리가 영적인 실제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내가 연단 받은 말씀에 대해서는 나도 우리도 그 말씀 하나에 대해선 내가 생명으로 살아지는 것을 보게 되고 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연단받지 않은 말씀에 대해서는 생명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 아직도 내가 본능단계에 있을 수 있고, 윤리단계에 있을 수 있고, 진리 단계에 있을 수 있더라는 거예요. 아멘. 우리는 그러면 우리가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한 말씀에 대하여, 한 말씀에 대하여 이거 통과하면 또 통과하고, 또 통과하고, 또 통과하고, 하나씩 통과하는 이것이 쌓여져서 그렇잖아요. 하나씩 쌓여져서 그것이 나에게 성장을 가져와서 저분에게는 정말 예수님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렇게 되는 것이지. 하루 한꺼번에 내가 갑자기 예수로 태어나고 내가 갑자기 예수처럼 살아지고 이런 게 아니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고있는 것입니다. 아니 강사가 돼 갖고 무슨 모양이 저래 그렇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우리는 하나하나,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다루신 말씀 하나하나가 생명이 하나하나 되게끔 이루어지는 것이지. 강사니까 저분은 목사님이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런 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앞에서 강의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그래서 안 된 모습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단지 그분이 가신 그 길을 같이 가는 길일 뿐이죠. 동료일 뿐이죠. 아무리 나의 멘토라 할지라도 어떻게 예수님과 똑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단지 그분과 함께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아멘입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젊었던 그분도 감사한 일이더라고요. 같이 가고 있는 모양, 모습이었구나.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어떤 분들은 그래 이 영성훈련에 와서 '아유 강사 모습이 뭐 저래 나랑 똑같네' 그리고 가버려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영성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누누히 얘기하지만 이전에는 내가 10가지 사건 속에서, 10가지 사건 속에서 7번 넘어졌는데 7번 안 넘어진 사람 아무도 없죠. 영성훈련 3년을 마칠쯤 되니까. 7번 넘어지던 것이 한 43번으로 줄었네. 이게 영성훈련한 사람의 모습이에요. 안 넘어진다는 게 아니고 숫자가 줄었다는 거에요. 근데 여러분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맨날 넘어지기만 하면 또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한 사건에 대해 한 문제에 대해서 오늘도 넘어지고 내일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한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의인는 뭐냐? 한 문제에 대해서 7번 넘어졌다 할지라도 그다음에는 여덟 번째는 똑바로 서서 가는 그게 영성훈련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결국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느냐? 하나의 면에 대해서 너가 생명으로 살지 못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다루시고, 그거 넘어가면 그다음에 다른 모습에 있어서 거기에 대하여 생명으로 살지 못한 것에 또 다루시고, 그렇게 해서 내가 생명으로 살아지는 그 모습들이 그 면들이 많아지게 하셔서 하나님은 우리를 열매를 더 많이 맺게끔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감사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가만히 생각하니까 옛날에 저도 한번씩 이렇게 넘어질 때가 있었어요.

왜냐면 멘토의 모습이 왜 저래? 예를 들어서 멘토의 모습이 왜 저래? 그런 면에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게 뭐냐 하면 우리는 같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의 자리에 서서 같이 가자, 같이 가자고 말해요. 그렇잖아요. 그게 아름다운 거예요. 다 됐다는 사람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분들을 다시 용서할 수 있고, 할렐루야. '아 그분은 그 면에 있어서는 조금 약하시구나.'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되고 같이 간다는 사실 앞에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이 하고 계시는 그 작업들, 그 작업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이 영성훈련에 들어와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시고 앞에 서 있는 강사가 온전한 자가 아니라 온전하게끔 가는 길 속에 같이 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여러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비방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그만큼 못 찾아먹죠.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고 우리가 간다는 건 사실 앞에 다시 한번 우리는 다시 한번 정말 나 자신도 내 모양이 이런데 그렇잖아요.

서로 용서하고 봐주면서 그때는 저도 그랬어요. 그때는 어리니까 '아유 강사들이 좀 못해도 그런 게 보여도 용서하세요.' 그 말이 안 들어오더라구요. . 그러나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각자 다루는 면들이 다 틀리고 그분들이 얼마나 지금 생각하면 훌륭했는지 몰라요. 자기 결점을 다 드러내고 자기 부인이 다 불어버릴 거야. 그랬대. 얼마나 여러분 참 우리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같이 가는 거란 말입니다. 그걸 우리는 비방하고 그 모습이 어떠니 저떠니 말이에요. 나가서 비방하고 그러지 말자는 거에요. 영성훈련한 사람들의 행동이 뭐가 틀리냐? 이거예요. 뭐가 어떻게 틀려야 되냐? 이거예요.

어떻게 틀려야 되냐?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결점을 보이고 단점이 보인다 할지라도 같이 가는 거. 아멘.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각자에게 있어서 생명이 생명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각자 다 다르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이 하시는 이 일에 대해서 감사하시고 함께 길을 같이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 생명을 인제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이신데, 예수님만 생명이십니다. 예수님만 생명이시다. 그럼 그분이 나무고 우리는 가지잖아요. 가지다. 그럼 이 가지는 어떻게 열매를 맺냐면 그죠. 그분의 생명이 이렇게 흘러서 그렇죠. 그분의 생명이 막힘이 없이 이렇게 흘러서 우리를 거쳐 가지고 그다음에 인제 열매를 맺으시는 것이죠. 그 열매를 실질적으로 맺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렇잖아요. 그분의 생명이 흐르는 거니까. 이 열매는 그분의 것이다. 그렇잖아요. 그분이 맺게 하시는 거 우리가 맺는 게 아니라 그분이 맺게 하시고, 또 그의 맺어진 열매는 또 그분의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뭐하면 되냐? 생명을 통과시키는 통로의 역할만 잘하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통로는 통로된 역할을 잘 하려면은 생명을 잘 이렇게 받아들이고 빨아들여서 빨아들인다. 이게 공급이죠. 그죠. 공급. 공급받는 거죠. 생명을 잘 빨아들여서 이렇게 흘러나가게 흘러나가게끔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이 생명을 공급받는 데 있어서 생명이란 예수를 어떻게 공급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어떻게 공급받는가 여러분 예수를 공급받는 것은 어떻게 받을 수 있냐면요 참 간단한 것 같기도 하고 한데 가장 또 어려운 거예요. 이게 뭐냐? 기도죠. 기도. 첫째는 기도입니다.
가장 쉬운 것 같은데, 가장 우리 삶에서 흔하기도 하고, 가장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또 어려운 게 기도더라는 거에요. 바빠서 시간을 못 내고 하나님 앞에 앉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마음만 둥둥거리고 앉지를 못하고 다른 일부터 하고, 이 모든 것들이 가장 쉬운 거 같은데, 가장 어려운 게 기도더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먹잖아요. 예수를 공급받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공급받는 첫째 수단이 뭐냐면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우리가 공급받습니다. 이게 힘이라고 그러잖아요. 나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기도할 때 예수라는 생명을 내가 함께 풍성히 내가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도하셔야 돼요. 내가 생명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깨어 있을 수 있죠. 깨어 있는 자가 생명으로 살 수 있어요. 깨어있지 못한 내가 어떻게 생명으로 삽니까? 육신에 젖어서 육신에 젖어 사는 자가 어떻게 생명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나를 깨우는 작업이 기도입니다. 나를 깨우라고 하나님 앞에 대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뭘 원하시는 거에 대해 깨우는 작업이 뭐냐면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 기도할 때 다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 그 힘이 오지 않습니까? 공급을 받아야죠. 생명을 공급을 받아야 내가 예수로 살 수 있는 그 기본이 마련되는 것이지요. 그 기도하지 않는 영혼을 보니까 기도 안 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지금 기도합니다. 저기 얘기하는 겁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들 보니까 첫째, 왜 기도 안 하냐?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은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삶, 그러니까 기도 안 하죠. 그렇잖아요. 두 번째는 이 기도라는 거는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제물로 드리는 거죠. 기도의 제물.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받길 원하시지요. 나를 드리는 거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나를 제자드리는 거죠. 하나님 앞에 그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헌신이 부족해서요. 내가 기도의 재물을 못 바치는 거예요. 헌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 보면 이런 모습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나를 깨워나가고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고 나를 주장하시고 내 삶을 이끌어 가시고 그분의 인eh함을 받게 되고, 여러 가지가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시간을 냄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붙들려 가는 거예요. 아멘. 기도해야 되니까.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아니하면 나는 이런 생명의 삶을 살 수가 없는 거에요. 오늘도 기도했으면 내일도 기도해야 되고 모레도 기도해도 날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아멘이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그 끈이 끊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하나님을 공급을 받아야 되는데 두 번째는 방법은 뭐냐하면 말씀 생활이죠. 말씀.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성숙한 자에게 오는 징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죄가 있거나 할 때 오는 징계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냥 글자야 읽어도 감동이 없고 읽으면 잠만 오고 그런 상태, 그 상태는 하나님이 지금 징계하고 있는 중입니다. 왜냐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막 철철 흘러요. 흘러. 한번 읽어보셔요. 시편, 하나님의 마음이 철철 흐르고 있고 그 말씀 안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어요.

'어머나 하나님이 이런 분이었네' 알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막 깨어나면서 말이에요. 다시 한번 막 내 마음속에 감동이 넘치고 감격이 넘치고 막 한구절을 읽어도 그냥 마음이 꽉 차 들어오고 꽉 차들어오고 하나님 이런 감격적인 삶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막 먹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오늘 먹지 아니하고 내가 하나님으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공급받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기도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고 내가 생명으로 산다 별로 그렇게 타당치 않은 그런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통로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공급을 잘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 방언 기도를 얼마씩 하라고 그랬어요?

정말 하고자 하는 자는 3시간씩 해야 돼. 기도요 기도가 우습게 보이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죠. 너무 흔한 말들이 기도니까 기도하라 뭐 기도, 뭐 기도 안 하고도 살던데 잘 살던데 하루 세끼 밥 먹고, 근데 기도하면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내 신앙적인 삶에 놀라운 일들이 그 기도 안에는 다 들어있어요. 성령이 나를 인도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냥 끌고 가기 시작해. 방언기도 하루에 1시간씩만 해보십시오. 1시간이나 2시간, 3시간 해보세요.

하나님이 그냥 내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 나를 그냥 하나님 말씀으로 말씀대로 살게끔 끌고 가요.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들인데.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죽은 삶이다. 살아있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도 하는 거 똑같은 거예요. 그다음엔요. 이 통로 역할을 잘 하려면 어떻게 되냐? 우리가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 여러분 우리가 영성훈련을 받는 것이 왜 받느냐면요. 내가 뭔가가 되려고 받는 게 아니에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이거는 목표 설정이 잘못된 겁니다. 내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받고 있다.

아직도 그렇다면 이게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는 우리 영성의 방향은 방향인데 그 사람이 요렇게 삐딱하게 나가고 있는 거예요. 방향 설정이 잘못된 거예요. 내가 뭔가 되기 위해서 내가 영성훈련을 한다. 나중에 인제 끝마치고 다 이렇게 몇 년을 하고 나도 그런 사람을 보면요 잘못된 방향으로 가 있기 때문에 어때요? 잘못된 모습으로 보여요. 방향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러면 영성훈련을 하는 목적이 뭐냐? 이건데 요기로 가는 길입니다. 요기로 가는 길인데 이 길은 뭐냐? 내가 허물어지는 거예요. 허물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내 삶을 주장해야 돼요. 아멘. 이게 목표가 돼야 돼요. 내가 허물어지고 나는 뭔가가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허물어지고 오직 내 삶의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고 그게 중요한 거, 하나님 뜻대로 내가 내가 아무것도 안 돼도 괜찮아. 그렇잖아요. 되긴 뭘 돼? 되기는 아무것도 안 됐으면서. 예를 들어서 될 수도 없어요. 그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영성훈련을 하는 이유는 내가 허물어지고 내가 뭐가 되든 안되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다만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겠습니다. 이거거든요. 이게 목표가 되어져야 된다. 난 아무것도 안 돼도 좋으니까 아예 정하십시오. 나는 아무것도 안 돼도 좋습니다. 영성강사가 안돼도 좋고 또 뭐가 안 돼도 좋으니까 다만 저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모든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아멘. 욕심 자체가 죄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목표 설정이 잘못되면 사망의 길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통로 역할, 그니까는 우리가 영성훈련 하는 이유는 내가 뭔가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나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만이 온전히 나를 주장하기 위해서 아멘입니까? 그거 목표로 가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안 돼요. 아무것도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루어지는 게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 앞에 섰다고 해서 된 게 아니에요.

저는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냐면 저도 하나님 뜻만 이루어지길 원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지금도 그래요. 하나님 저 안 써주셔도 괜찮아요. 나를 쓰는 게 목적입니까? 하나님이. 내가 그걸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면 나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육신의 삶이에요. 사망의 삶이에요. 나 안 써줘도 괜찮아. 하나님. 단지 저를 하나님의 뜻대로만 인도하시고 하나님 뜻대로만 살게끔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그렇게 가야 되는 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통로 역할을 잘 하려고 그러는데 공급을 그렇게 받지 않았습니까? 기도와 충분한 기도와 하루에 하나님 말씀으로 공급을 받고 그다음 늘 살면서 사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잘 흘러 내보내야 되는데 이 통로가 꽉 막혀갖고는 말이에요. 수도관에 물이 졸졸졸 흘러야 되는데 안에 들어온 게 끼어갖고 막혀 있으면 그 물줄기가 시원하게 쫙 나오겠어요? 아니면은 찔찔찔 나오다가 또 멈췄다가 우리 모습이 그렇죠. 그렇지만 내 표현을 이렇게 하는 겁니다. 시원하게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오고 막혀 가지고 찌익 나왔다가, 멈췄다가 또 나오고 쫄쫄쫄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겠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걸 깨끗히 하시려고 그러시죠. 그렇잖아요. 근데 우리가 통로 역할을 하는 데 막힌 게 있다는 거예요.

막힌 게 막히면 여러분 생명의 삶을 잘 살아드릴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막고 있는 게 뭐냐 막고 있는 게 뭐겠습니까? 나의 뭐예요? 시퍼런 자아예요. 시퍼런 자아의 모습, 나의 옛 자아의 모습, 하나님이 그걸 반드시 무너지게 할려고 하는 그 자아, 그걸 내려놓게 할려고 하는 그런 자아의 모습들, 이것 때문에 이 물이 생명이 예수의 공급을 받았다할지라도 기도와 말씀생활을 많이 했어요. 저 사람 보면 기도밖에 안 해. 저분은 참 말씀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요. 이게 그러니까 2가지가 필요한 거죠. 공급만 갖고 안 된다. 아멘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공급만 하면 된대. 그래서 성전에서 와서 살아라. 공급이 첫째지요. 공급이 없으면 나갈 게 없으니까 그런데 이게 뭐야? 갖고 있는 게 너무 강하면 그렇잖아요. 아무리 공급을 못 받아도 그게 나갑니까? 안 나갑니까? 못 나갑니다. 그리고 흘려보내지 않으면 참다운 공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고인물은 썩게 돼 있거든요. 행함이 없이 말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또 아니라는 겁니다. 기도만 많이 하면 된다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공급을 많이 받았으면 이제는 내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내야 되는 작업을 또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이게 뭡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거죠. 너희가 나를 따라올려거든. 너 자신을 부인해라. 그렇지 않습니다.

시퍼런 자아의 모습, 이 자아들이 생명의 공급을 가로막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가로막고 있냐? 내가 가로막고 있더라는 거예요. 주님은 나가고 싶어 하는데, 기도도 많이 했어요. 말씀도 많이 봤어요. 충만해요. 근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내 안에 뭐가 많아서요? 내가 너무 많아서, 내가 너무 많아서 우리가 길을 비켜 드려야 되는데 주님 하시옵소서.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내가 딱 가로막고 서 있는 거예요. 주님 잠깐만, 주님 잠깐만 이런데, 이런데 주님이 이렇게 얘기하지만 제 사정이 이렇고요. 제 형편이 이렇구요. 어쩌고저쩌고 그가 뭐가 어쨌고 그가 먼저 나한테 잘못했는데 뭣이 어쩌고저쩌고 그잖아요. 내가 딱 가로막고 있는 거야. 주님은 비켜라 이러는데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공급을 많이 받았으면 이제는 그걸 잘 흘려보내야 되는데 그 속에서 내가 너무 많아갖고 나 때문에 주님이 일을 못하게끔 그렇게 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너무나 내가 많아서 안에 주님이 흘러 나가지를 못하더라 생명의 삶을 주님이 흘러 나가지 못한다. 생명의 삶을 살지를 못하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나를 내려놓기 위해서 나를 내려놓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왜 이렇게 참다운 통로 역할을 잘 못하는가? 그렇죠.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는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네 속에 있지 않다 그랬습니다. 세상으로 오는 것은 아버지께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다 세상으로 쫓아오는 것인데 그것은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력과 육신의 정력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이 가로막고 있으면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마음이 들어올 때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첫째는 이생의 자랑,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서 다 시험 받았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이생의 자랑 높아져라. 왜죠? 인정받아라 인정받아라. 니가 잘났다 그래라. 그렇게 얘기를 우리를 유혹하고 있죠. 그죠. 그 다음에 육신의 정욕, 너 배고프지 이번 한번만 거짓말해서 돈 좀 벌어. 이번 한번만 사기 쳐갖고 돈을 많이 벌어. 너 배고프잖아. 마귀는 예수님 보고 돌을 떡덩어리로 만들으라 그랬어요. 그건 진리가 아니죠. 순서가 아니죠.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 세계 질서는 돌은 돌이에요. 돌은 돌, 자기가 만든 세상이잖아요.

근데 그 돌을 떡덩이로 만들었대. 그랬더니 예수님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그러고 딱 거절해 버렸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거절해야 되는데 뭘 하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 성령의 검으로 쳐버려야 됩니다. 안목의 정욕, 여러분 안목의 정욕은 이 얘기를 안 할라 그랬는데 하고 넘어가야 되겠네. 그 인터넷이나 티비 보면 여자들 이쁜 빽들이 딱딱 뜨더라구요.

누가 가지고 다닌 빽, 그 연예인 누가 가지고 다니는 빽, 이래 갖고 탁탁 뜨더라 근데 그 빽이 내가 보기에는 한 5001000불 할 것 같애. 그래 안 그래요? 더 해? 얼마 안 짜린데 뭐? 300만이면 삼천불짜리야 오 마이 갓! 난 천불도 지금 많이 얘기한 건데 그래 하긴 있겠죠. 근데 내가 나도 여자니까 보니까 색깔도 이쁘고 이쁘네.이쁜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거 한 500불을 하나 천 불 하나? '아 이쁘다' 생각을 했지만, 가지고 싶다는 얘기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있어봤자 뭐 거기다 성경책을 넣을 거야? 강아지를 넣을 거야? 뭘 넣을 거야? 나는 줘도 쓸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예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이쁘다 참 이쁘게 만들었구나. 근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은 '아 저 갖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거 같애. 그렇잖아요. 나는 그래도 적어도 목회자니까 근데 뭐 초월했으니까. 사실은 뭐 이쁘다로 끝나는 거지 그걸 막 갖고 싶다는 이런 생각 없는 것 같애요. 근데 진짜 다른 사람들은 넘어갈 것 같애. 보니까 이쁘게 했더라고요. 근데 저는 전에 한번 저는 이렇게 다이아몬드 반지 이렇게 조그만 거 갖고 이게 천불짜리, 천불짜리 근데 세일할 때 500불로 샀어요. 500불로. 이게 뭐냐면 결혼반지야. 싸게 샀죠. 근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렇게 3케럿짜리 하고 있는 거에요. '어유 저 사람은 남편이 돈을 많이 벌었나 어 아니 저렇게 큰 걸 갖고 있네' 조금 조금 부를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락말락하다가도 아니야.

내 저 천국에는 더 좋은 집이 기다리고 있고, 할렐루야.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이 안목의 정욕 이런 게 싹싹 끼어 들어올 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탁 쳐버려야 됩니다. 아멘입니까? 저 언덕집에 푸른 집을 보면서 말이야. 만리부 저쪽으로 가고 또 요렇게 하면 집들이 막 크게 똑같은 집들이 막 아주 거창하게 쫙 지어져 있더라고요. 야 저 집에서 사는 사람도 저기 해변가에서 얼마나 참 좋을까? 그런 생각해보니 '아니야. 저 천국에는 이보다 더 좋은 집이 있어' 길바닥이 다 점검이라 그랬는데 그리고 이 세상에 당하는 경한 환란이 다가오는 너희에게 다가오는 장차 다가올 그 큰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고 했는데 내가 무슨 빽이 부럽고 무슨 다이아몬드 반지가 부럽고 저 집이 부럽겠냐 이거야. 아멘입니까?

할렐루야지. 할렐루야지 아멘 그러고 살아라 그걸 다 그래야 마음이 넓어지고 막 막고 있던 그런 것도 다 풀어주고, 할렐루야. 그래서 생명이 잘 공급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잖아요. 우리에게 맺어지는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게 뭔가? 열매 맺는 거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사실은 이게 가장 큰 거잖아요. 우리 열매 맺는다는 게 어디서 열매를 맺겠습니까? 인간관계 속에서 열매 맺는 줄로 믿습니다. 영혼들의 열매를 맺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영혼들의 열매를 맺는 거에 있어서 주님은 뭐라고 얘기하느냐? 서로 뭐라고 얘기해요.

발을 씻겨라. 발을, 발을 씻겨라. 주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 제자들의 발을 다 수건을 두르시고 허리 두르시고 세숫대야 갖다 놓으시고 물을 떠다 놓으시고 그들의 발을 하나하나 다 씻겼어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너희들은 지금 나를 이해 잘 못할 거다. 그렇지만 내가 가고 난 후에 내가 너희를 이렇게 발을 씻겼으니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라 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멘입니까? 내가 너를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서로 사랑해라 아멘 여러분 그 당시에 발은요, 제일 더러운 데가 발이었어요. 왜냐하면 사막지역이니까.

발이 가장 더럽지요. 하루종일 그런 나막신 신고 걸어다니는데 이런 신발이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발가락 사이에 전부 다 이렇게 흙이고 먼지고 제일 더러운 곳이 발이에요. 근데 그 발을 주님이 씻기는 거야. 그것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하나 하나 다 벗기고 문질러주고 씻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냥 대강대강 씻겼겠습니까? 예수님인데. 확 씻기는 제일 더러운 데를 씻기는 거예요. 냄새도 하루종일 그러니까 얼마나 냄새나 특히 남자들은요, 발가락 냄새 많이 나더라고요. 제자들, 그걸 바로 씻기라는 거예요. 제일 더러운 여러분 이게 뭐냐? 발을 씻기라 제일 더러운 데를 가장 더러운 곳, 여러분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서로의 단점과 결점이 있습니다. 허점이 있습니다.

그 허물을 주님은 덮어주라는 거예요. 덮어줘라 이게 발을 씻기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허물을 까발리지 말고 여러분이 여러분은 애들을 낳아봤잖아요. 그럼 갓난아기가 똥을 쌌어요. 여러분이 난 새끼가 기저귀를 갈아주잖아요. 뭐라 그러면서 갈아입어 아이고 이 새끼가 이게 똥을 싸고 말이야. '아이고 냄새야 저리 가' 이래요. 아니면 그 기저귀 갈아주면서 냄새가 나더라도 '아유 내 새끼 똥 색깔 이쁘네 아이고 잘 쌌다' 그러고 갈아줘요 아니면 '이 새끼 저리 가' 그러면서 갈아줘요? 다시 한번 싸게만 해봐라. 그냥 어떠세요? 그렇죠.

'아유 우리 새끼 똥 색깔 이쁘네' 그러고 갈아주지요. 여러분 이게 뭐냐면 냄새 나는 거는 허물이에요. 허물을 덮어주는 발을 씻기는 거예요. 똑같은 얘기에요. 허물을 덮고 그 똥 색깔이 왜 이쁘다고 칭찬합니까? '아이구 내 새끼 잘 먹고 잘 소화했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이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장점을 보는 거예요. 허물은 덥고 그렇잖아요.

그의 장점을 보는 것, 그러니까 '아유 내 새끼 똥 색깔 이쁘네' 그러고 갈아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발을 씻긴다는 것은 그 사람의 허물을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그 허물 때문에 우리는 내쳐버리고 이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그 허물을 덮어주고 그렇잖아요. 더러운 거 씻겨 주는 거예요. 덮어주고 그다음에 그의 장점을 바라보면서 격려해 주고 섬기면서 그렇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그런 행위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할 때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겨줄 때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사람의 허물을 바라보고 살면 생명의 삶을 살 수가 없죠. 오히려 허물은 눈에 띄더라도 섬기기 위해서 강한 자가 약자의 약점을 감당할 수 있다잖아요. 강한 자가 그 얘기가 무슨 얘기냐면 그의 허물을 덮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 주면서 이 얘기죠. 주면서 그의 장점을 바라보면서 상대방을 섬기면 우리는 어느새 생명의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나는 생명의 삶을 살 것이다. 하는 게 중요해요. 나는 저분의 모습이 어떻다 할지라도 나는 저 분 앞에서 생명의 삶을 살아들여서 저 분을 섬길 것이야. 할렐루야.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그게 진짜 사랑하는 자의 모습 아닙니까? 그분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분을 사랑한다는 게 그분의 모습이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것이지요. 거룩한 자의 모습으로. 아멘입니까? 이게 생명의 삶입니다. 우리가 서로가 이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분이나 저나 노력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요한복음 151절에서 5절의 말씀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그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주님은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라 라고 말했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신 걸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정말 기도와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그 생명을 마음껏 공급받아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우리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예수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내려놓는 삶,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살겠다고 하는 그 결심으로 주님으로 내가 살아야 되겠다는 나를 통하여 주님이 나가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초빙하여 넣어서 사는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