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서사라 목사님
먼저 우리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4절 한번 봅니다. 야고보서 1장입니다. 1장 2절에서 4절 거기를 오늘 또 많이 올 거니까 뭘 표시로 끼워놓던지 또 다른 곳도 많이 찾아볼 겁니다. 2절에서 4절 우리가 같은 목소리를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암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할렐루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어떤 시험이 오든지 간에 기쁘게 여기라 이러면 시험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죠. 그죠. 시험의 종류에 대해서 먼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험은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시험에는 크게 3가지가 있죠. 그죠. 3가지가 있다. 더 나눌 수도 있겠지만,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이 시험은 금방 우리가 읽은 것처럼 왜 오느냐? 그렇죠. 이거는 우리로 하여금 구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 더 부족함을 없게 하기 위해서 오는 거니까, 이것은 연단의 목적으로 연단의 목적으로 옵니다. 연단이 된 후에는 소망을 이룬다 그랬습니다.
소망을 이루는 소망을 이루는 연단, 연단의 목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있다는 거죠. 두 번째 종류의 시험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정말 저자가 되었나? 안 되었나? 합격이 합격할 만한가 안한가를 시험하는 거, 즉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시험 에 아브라함에게 했듯이 하시는 믿음에 대한 시험이죠. 믿음에 대한 시험, 시험이 있다. 합격했나? 안 했나?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뭐가 있냐면은 우리가 이걸 갖다 시험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데, 이게 뭐냐면 사단이 주는 유혹, 주는 유혹이죠. 이게 시험하는 거죠.
아담과 하와가 여기 넘어갔죠. 그렇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 크게 시험의 3가지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야고보서 1장 지금 펴놨잖아요. 13절에서 15절 말씀 한번 읽어봅니다. 다같이 시작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적 사망을 낳느니라 지금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이 3가지 중에 어디에 들어갈까요? 네, 그렇죠. 3번이죠. 역시 공부 많이 하신 분이 틀립니다. 고등학교 선생님 하셨대. 고등학교 가사 선생님 하신 분이에요.
그렇죠. 사단이 주는 유혹이 들어가는 거죠. 그죠. 그러니까 이 시험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지금 우리가 읽은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4절을 읽은 것은 그건 어디에 해당하는 겁니까? 1번에 해당하는 거예요. 1번 그렇죠. 그죠.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위해서 주시는 시험이죠. 그러니까 야고보서 1장 2절의 4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거예요. 사단이 주는 유혹을 받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면 안 되죠. 그죠. 그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렇죠. 거절해야 되죠. 근데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의 목적으로 주는 시험은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온전히 인내를 이루라. 그러면 승리한다는 겁니다.
그죠.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주로 어떻게 오냐 이거죠. 어떻게 옵니까? 우리 삶에 어떤 형식으로 옵니까? 어떤 모양으로? 환란으로 옵니다. 환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 인생에 뭐로 다가오느냐? 환란으로 다가오더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가 뭐에 대해서 볼 거냐면요. 이렇게 3가지 시험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볼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요거에 대해서만 오늘 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때 이 주시는 시험, 어떻게 해서 그런 시험이 오는가? 그리고 이런 시험을 누굴 통해서 하시나? 또 하나님이 누구를 시켜서 허락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환란이 오는 그 과정 그리고 그 환란이 환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며 그리고 그 환란은 언제 거두어지는가? 이런 면에서 잠깐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윗을 잘 알고 있죠. 그죠 다윗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했습니까? 사울이죠. 사울을 사용했습니다. 그죠.
오늘 이 다윗과 사울을 통해서 주로 한번 하나님이 주시는 환란이 어떠한 목적으로 오고, 어떻게 해서 오게 되며, 또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되며, 하나님은 우리가 또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언제 또 그 환란이 거두어지는가? 한번 보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상 18장 한번 봅니다. 사무엘상 18장입니다.
사무엘상 18장 10절에서 11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그 이틑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이 얘기를 보면 어 그 얘기는 조금 이따 하구요. 6절 7절 8절 9절 다시 한번 읽습니다.
시작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의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 골리앗을 죽였죠.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놓아야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에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그리고 나서 십절 다시 시작 그 이틑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거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죽일려고 그런단 말이죠. 다윗을 죽이려고 그랬죠. 근데 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그 말도 참 희한하고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 그다음에 이 악신이 언제 내렸냐는 거죠? 언제 내렸습니까?
그 이틑날이 바로 그 다음 날이죠.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전에. 사울이 다윗을 질투했죠. 이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겠죠. 시기 질투가, 교회 안에서도 시기 질투 있죠. 이런 시기와 질투가 막 올라올 때 그다음날 이 사울에게는 악신이 내려서 창을 가지고 그걸 죽일려고 그러는 거예요. 교회 안에서 질투하고 시기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내 마음 안에 시기와 질투가 올라올 때 하나님 앞에 앉아라. 아멘. 앉아서 주여!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주님이 시키는 일만 하겠습니다. 아멘 그것만 하는 게 제일 좋은 거예요. 시기 질투해서 내가 저 자리를 뺐어야지, 이러면 안되는 거에요. 그럼 악신 낼 수도 있네. 악신. 그러니까 어느 자리에 있든 간에 하나님이 화장실 청소시키면 화장실 청소해요.
그게 하나님 시키는 일이야. 나는 그 일만 하면 하나님한테 칭찬받는 거예요. 근데 엉뚱하게 시키지도 않는 저희를 시기질투 해갖고 내가 그 자리를 내가 그걸 해야 되겠다. 그래서 시기질투를 하게 되면 하나님이 뭐 한다는 거예요? 악신을 내릴 수가 있어요. 근데 이것도 희한한 게 하나님이 부리시는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 누구한테 내린 거예요? 사울한테 내린 거예요. 사울에게 내린거에요. 내리고 나니까 그다음에 뭐 했다는 거예요. 사울이 다윗에게 창을 던져서 두번이나 벽으로 던져 갖고 죽이려고고 그랬단 말이죠.
여러분 그러고 나서 이 사울은 어떻게 하냐면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이때부터 시작해서 약 16년간을 그를 죽이려고 16년간을 죽일려고 따라다녔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걸 보면 어떤 사람이 날 죽이려고 군사 뽑고 뽑은 3천 명을 데리고 따라다닌다, 날 죽이려고. 여러분을 그 도망자라는 타이틀을 불일 수도 있겠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을 다윗은 만난 거예요. 이걸 보면 다윗은 그 인생 속에 뭘 만난 겁니까?
정말 환란을 죽었다 깨나도 환장할 그런 환란을 만나게 된 거예요. 왜 하나님은 다윗이 그렇게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환란 속에 집어넣으시냐 이거예요. 그것도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을 보내갖고 그렇잖아요. 누가 하고 계신 거에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지금 누가 하고 계신다는 겁니까? 그렇죠. 하나님이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금 안 나타났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환란을 보내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 부르신 악신을 통해서 누굴 사용했어요?
여러분 저기 요한복음 15장 다시 한번 가봅니다.
15장 2절 말씀 한가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 다같이 시작.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다윗을 하나님은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깨끗케 하시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시고,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해 버린다잖아요. 참 미안한 얘기지만 사울은 거기 쓰임 받았어요.
사울이 어떻게 잘 풀려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이런 얘기가 없죠. 버림받은 거죠. 버려졌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과실을 맺는 가지를 더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누굴 사용하고 있는 겁니까?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자를 붙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환란을 갖고 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말도 안 되는 사울, 그러니까 육신으로 사는 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두 번이나 어기고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서 패한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러나 그가 왕의 자리에 끝까지 있은 것은 40년 이상 40년 정도 있은 것은 다윗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가 잘해서 패하기로 마음먹었어도 주님은 바로 패한 게 아니라 그를 늘 왕의 자리에 두면서 누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은 누굴 사랑하십니까? 누굴 사랑하세요? 다윗을 사랑하시죠.
다윗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깨끗케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하나님이 악신을 내리게 한 자를 사용해서 그를 만드시는 작업을 했다는 거에요. 그럼 왜 지금 나를 괴롭히는 그는 누군가? 잘 봐야 돼요. 나를 힘들게 하는 자, 혹시 여러분에게도 그렇죠. 우리는 다 적용을 해야되니까. 하나님이 지금 뭘 하고 계신가를 보라는 거예요. 나에게 지금 그렇잖아요. 혹시라도 말도 안되는 사람 붙여갖고 난 별로 잘못한 거 없는데 나를 짓밟고 있다? 그게 왜 일어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어떻게 해요.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자. 아멘입니까? 이 욥에게 환란을 가져다 준 게 누굽니까? 그렇죠. 사단. 그 사단을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서잖아요. 서갖고 이렇게, 이렇게 뭐 둘이서 막 얘기하잖아요. 그죠. 그러고서 하나님이 그래 좋다. 가서 그렇게 해라. 해봐라. 한번 니가. 그리고 또 욥의 환란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은 뭐냐면 왜 주셨습니까?
자신의 의를 내려놓으라고. 욥은 자기가 의롭다라고 생각해서 하나님보다 사실 더 의롭다 생각한 사람이에요. 난 잘못할 거 없는데 하나님 괜히 나를 공격하신다. 이거는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내가 옳고 하나님은 틀리다는 것 아니에요? 결국 그 말까지 하잖아요. 나는 잘못하고 없는데 괜히 전능자의 화살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얘기는 그러나 오직 의로우신 분은 누구 한분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밖에 없는 거에요. 결국 일이 드러난 것도 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게 옳아요. 왜냐 결국 욥은 뭐라 했냐면 내가 자기 의가 무너지니까 자기 의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걸 알고 계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욥은 뭐라 그래요? 내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나이다.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환란을 주신 것은 그의 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자기가 의롭다는 거. 자기 의가 안 무너지면 하나님을 본다? 안본다? 못본다는 겁니다. 아멘. 자기 의의가 무너져야 돼요. 하나님을 못 보고 사는 거예요. 그 의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누구를 시켜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 사탄을 시켜서라도 그에게 환란을 가져다줘서 의를 무너뜨리십니다. 근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환란이 오면 나에게 이 환란을 갖고 온 더러운 귀신아, 사단아 뭐라 그래요. 물러가라, 물러가겠습니까? 물러갈까요? 안 갈까요? 안 물러가죠. 안 물러가죠. 언제까지 안 물러갈까? 그러니까 사단을 쫓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지. 나를 고쳐야죠. 나를 고쳐야 이게 해결함을 받는 거예요. 사단을 쫓아갖고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왜? 하나님 오히려 사단을 시키고 있으니까. 아멘.그러니까 어떤 환란이 나에게 왔다 내게 이 비즈니스를 망하게 하는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하나님은 뭐 땜에 주신 거예요. 욥을 보면. 다 재산이 망가졌어. 자기의 그 자기의 의를 그러니까 재산을 앗아가도 이 욥은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어요. 그 얘기는 뭐냐면 아직도 내가 견딜만 하다는 거예요. 견딜만하다. 이 정도까지 갖고는 나에 있는 요 안에 있는 의가, 내 의가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다 여호와만이 찬양을 받길 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말처럼 들립니까? 그죠. 그런데 그 정도의 고난 갖고는 자기가 의롭다는 게 안 드러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또 뭘 합니까? 사단을 시켜서 몸까지 함 쳐봐라. 그래도 하나님 그러잖아요. 내 의로운 종 욕을 봤냐? 저렇게도 저 욥은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걸 이용한 거죠. 그죠. 저 저자를 봐라. 그랬더니, 사단님 말하냐면 아유 몸을 함 쳐보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을 욕하고 욕할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뭐라 그래요? 그래 진짜 니 그래봐라. 그리고서 그렇지만 생명에는 손대지 마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가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정수리까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뭐가 욕창이 나게 만드니까 너무 괴로운 거야.
친구들이 찾아와서 일주야를 말도 못하고 그 괴로움을 지켜만 봤다는 거에요. 하루도 지켜보기 힘들 텐데 너무 힘든 걸 1주일을 지켜봤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니까는 개가 와서 핥고 기와장으로 긁고 어디냐? 거지 나사로 얘기에 있지요. 이게 기와장으로 이렇게 긁었다잖아요. 긁었다. 그 정도로 너무 괴로우니까 인제 뭐라 그러냐면 하나님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그냥 내가 죽었으면 나를 왜 이렇게 태어나게 해 갖고 날 이렇게 괴롭게 하냐? 이 식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탄생을 저주하는 거예요. 그때서부터 이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 입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 생일을 저주하고 탄생한 날을 그다음에 나중에는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공격하십니까? 나에게 전능한 화살이 전능한 그 살이 나를 향하여 겨냥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뭐냐면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하나님 지금 잘못하고 계십니다. 이 얘기거든요. 그때부터 자기의 의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아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게 지금 말로써 드러나잖아요. 그 의를 묻는 하나님한테 야 이 욥아 너가 사내 대장부처럼 허리띠를 딱 메고 내가 묻는 말에 니가 대답해라 내가 너 이 세상에 기초를 놓을 때 너 있었냐? 니가 산토끼가 새끼를 베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언제 낳았는지 니가 아는 게 있으면 한번 얘기해 봐. 너 아는 게 있으면 도대체 아는 게 뭐가 있는지 한번 얘기해 봐. 그랬더니, 욥이 입을 싹 가리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도 없는 주제에 제가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해서 하나님만이 옳습니다. 그러고서 이제 무너지잖아요. 무너지니까 그때 인제 그는 자기 의, 자기가 옳다는 거,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뭐가 옳아요? 옳기는, 무지함. 그런 모든 것 속에서 자기 의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 그는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제가 눈으로 봅니다. 주님 제가 제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이제 나가는 거죠. 하나님은 그에게 있는 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 삶의 환란을 보내 누구를 사용하시냐면은 사단을 사용한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면을 봐도 우리 삶에 환란이 왔을 때 환란을 갖고 오는 이 사단아, 귀신아, 물러가라 한다고 물러가겠어요? 누가 하고 계신데? 하나님이 하고 계신데, 그럼 언제 물러가냐? 언제 물러갑니까? 그렇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아멘입니까? 아멘. 결국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가 있다. 주여 저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 사탄아 물러가라. 왜 저 사람을 통해서 나를 괴롭게 하냐? 괴롭게 하는 저 사람을 통해서 괴롭게 한 이 더러운 귀신아 떠나갈지어다 그렇다고 떠나가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떠나갈까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딱 바꿔지면 그 상대방은 하든 짓도 안 한다. 아멘. 들어옵니까? 이게 들어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란을 보내시는 이유,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할려고 보내시는데 거기에 사용하시는 게 누구냐면은 우리가 금방 봤듯이 환란을 하나님을 직접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단을 사용하기도 허락해서 우리의 삶에 환란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그 환란의 목적이 뭐냐?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보내시는데, 거기서 아까 야고보서에서 우리 읽었던 것처럼 너희가 그 환란이 올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그 속에서 인내하라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끝까지, 끝까지 인내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잘 보면 부부 사이에도 여러분 부부 사이에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죠.
그죠. 여러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다 하고 계신 거예요. 하나님이 다 하고 계신데, 내가 바꿔지면 그 사람도 예를 들어서 한다? 안 한다? 안 한다. 하던 짓도.아멘. 그 얘기예요. 여러분 우리가 부부나 또 어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별로 잘못한 거 없는데, 계속 어떤 사람이 와서 나를 밟고 말이에요. 이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는 거죠.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로 사용한다고 그랬어요. 우리 하나 찾아볼 데가 있어요.
사무엘하 7장 14절 함 찾아봅니다.
사무엘상이 아니고 사무엘하 7장입니다. 14절 다같이 시작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 하려니와
그러니까 이 얘기가 무슨 얘기냐 하면은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고, 우리는 그의 자녀,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어쨌든 자녀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 막대기와 사람을 막대기로 쓰신다는 거죠. 그 다음 인생 채찍으로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환란이 오는데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해를 하다 보면 나의 결혼 생활 나의 부부관계, 또 여러 가지 인간관계, 그로 맺어진 인간관계, 또 교회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그니까 직장에서 그렇고 다 이런 이유 것들이 다 이해가 갈 줄 믿습니다. 그 속에서 사단을 쫓을 게 아니라 악한 귀신과 영만을 쫓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가를 봐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그 환란은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멈춰진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목적을 잃으면 그 환란은 멈춥니다.
물론 다음에 또 다른 걸로 넘어가겠지만, 다른 거 다루시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중요한 사실이 뭐냐? 오늘 이걸 배우면서 사단을 쫓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라고요? 내가 변하면 된다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요. 이 사람 막대기로 사용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해서 사울을 사람 막대기로 사용합니다.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죠. 이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은 누구를 보냈냐면 이 사람을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을 보냈어요.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그에게 힘 있게 내리더라. 힘있게 내렸다고 그랬죠. 악신이 힘있게 내렸다 그랬더니, 이 사울이 다윗을 창으로 죽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이 사람 막대기로 사용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개는 이 사람 막대기로 사용받는 사람들을 보면요. 하나님 눈에 벗어난 자들이에요. 하나님 눈에 벗어난 자들, 그럼 하나님 눈에 벗어난 자들이 누구냐? 하나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세상에 있는 악한 자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별로 상관이 없는 자들,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붙여서 하나님이 진짜 사랑하는 '나는 니 아비고 너는 내 딸이야 너는 내 아들이야'라고 하는 그런 자들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붙여서 훈련을 시키더라, 연단을 시키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혹이라도 내가 내가 혹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람 막대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거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멘? 아멘. 이거는 이거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람 막대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에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위험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고 난 다음에 나중에 어떻게 해요. 사울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회개치 않고 끝내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기 세 아들과 함께 어떻게 돼요? 죽게 되죠. 물론 여러분 하나님은 예를 들어서 부부다, 부부다 정말 한쪽은 예를 들어서 A는 A와 B가 있는데, 부부예요. A는 그래도 참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B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세상에 빠져있고 그럼 어떻게 해요? 하나님은 이 자를 사용해서 A를 깨끗케 하시려는 그렇잖아요. 근데 여러분 이런 환란이 어떻게 오냐면 가벼운 게 아니에요. 우리가 다윗과 사울을 보면 죽일려고 하는 입장이 가벼운 상황입니까?
내가 오늘 죽을지 모르고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들이 나를 기가 막히게 하는 상황이야. 이 상황이. 가벼운 상황들이 아니에요. 그 목숨이 등잔불 앞에 있는 것과 같애. 3천 명을 뽑고 뽑으면 3천명을 데리고 따라다니면서 죽일려고 그러니까 그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입니까?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한다구요? 다윗을 만들 위해서, 그러면 이 A라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상황을 허락하시다는 거에요. B를 통해서, 도저히 못 살겠다. 그것도 치고 싶다. 이거예요. 너무 못살겠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왜 그럴 수밖에 없냐면 우리 육신은 너무 질겨갖구요. 우리 자아는 그렇지 않으면 결코 내려놔지지 아니하니까. 우리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아세요.?
그거 하나 처리할려고 하니까 하나님은 죽을 것 같은 상황을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내가 내려짐을 받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허락하시더라는 거에요. 그래야 그 자아가 무너지더라는 거예요. 그 자를 내려놓더라는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질기기 때문에. 그러니까 모든 부부가 보면요 산다, 안산다를 몇 번 하는지 아세요? 목사님 사모님도 100번을 쌌대. 보따리를 100번. 저는 몇 번 쌌나? 저는 1번 싸서 1번, 이제 1번 싸갖고 우리 엄마 집에 가버렸어요. 진짜로 딱 1번 쌌네. 그게 보따리 싸는 거예요.
그죠. 떠나는 거, 떠나는 거, 보따리 싸고 떠나는 거. 저는 1번 쌌지만 우리 남편을 몇 번 쌌나? 가만있어 봐. 우리 남편이 몇 번 쌌나? 집을 1번 나갔으니까 그 보따리 싸고 나갔다 생각하고 나갔다 들어왔지만 그런 상황이 1번 있었어요. 근데 이 목사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모님이 보따리를 몇 번 쌌냐? 100번을 쌌대. 얼마나 못살겠으면 백번을 쌀까? 그래도 다 돌아왔지만 말이에요. 그것도 힘들 거 같애. 어떻게 100번을 싸냐? 나도 한 번도 힘들던데. 100번을 쌌고 들어왔다 내가 들어왔다 하여간 100번을 쌌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이것 때문에 그런거지. 이거 도저히 못 살겠다. 너랑은 도저히 못 살겠다. 이래 된 거야. 이게 뭐예요? 하나님 뜻을 모르고 무슨 얘긴지 알죠? 하나님이 왜 그 환란을 보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환란만 피하기를 원하니까 뛰쳐나가고 달아나고 보따리 싸고 결국 돌아오지만 또 안 들어온 분도 많잖아요. 하나님 뜻을 모르니까. 하나님 뜻을 알고 나면 그래서 성경이 뭐냐 끝까지 인내해라. 할렐루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그러잖아요. 제가 말을 끝까지 이렇게 했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그러잖아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라, 그러면 그 환란을 보내신 이유가 너희랑 그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지금 너 삶에 그게 있는 줄 모르고 뛰쳐나가지 마라. 우리 야고보서 다시 한번 가봅니다. 야고보서 저는 참 중요한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조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야고보서 1장 12절 다같이 시작
시험을 찾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아멘. 시험을 찾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게 뭡니까? 온전히 인내한 자를 얘기하죠. 저 위에서 얘기하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랬잖아요.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고 12절 말씀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가 온전히 인내하고 나면 시험을 온전히 참고 나면 주님이 뭘 주신다는 거예요?
생명의 면류관. 할렐루야. 생명의 면류관을 시험을 온전히 참고 견뎌내고 인내하고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뭘 준다고요? 생명의 면류관. 아멘입니까? 할렐루야. 생명의 면류관 받아 써야죠. 생명 면류관을 받았어야지. 아멘
그다음에 우리 사무엘하 24장 함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절만 함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절 다같이 시작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주어가 누굽니까? 여호와. 여호와께서 그다음에 다윗을 감동시킨 자가 누굽니까? 여호와죠. 여호와를 감동시키자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를 한지라. 여러분 이 사건은 다윗은 평생에 2가지 실수를 했어요. 첫째는 뭡니까? 밧세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했다. 물론 철저하게 회개하고 침대가 눈물에 적셔서 둥둥 뜨기까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를 했죠. 여러분 주의 종들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해요.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죠. 하지만 죄를 한번 지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죽을 때까지 그런 동일한 죄를 안 짓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두 번째 실수가 뭐냐면 인구조사한 거예요. 아니 전쟁에 이기고 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렇게 고백을 해 놓고 골리앗에 나갈 때도 내가 너는 창과 칼로 나에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한테 나간다고 해서 골리앗을 쳐 죽인 그가 나중에는 자기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고, 잠잠하게 되고 인제 뭔가 조금 사실은 된 것처럼 보이니까 우리나라의 인구가 군대의 수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고 싶은 거야.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 군대의 수가 얼마가 되는 걸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게 뭐냐면 내 안에 다윗의 마음 안에 자만하는 마음이 끼어든 거예요.
그 교만한 마음이 있는 걸 아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뭐냐면은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한지라. 이게 여호와께서 그를 감동시키사 이렇게 나왔지만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너 죄지어라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표현이 됐냐? 이거죠. 왜 이렇게. 우리 다른 데 하나를 또 하나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상 21장 한번 가 봅니다.
역대상 21장 똑같은 사건을 지금 기록하고 있어요. 21장 1절 한번 봅니다.
21장 1절 641페이지 있습니다. 다같이 시작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여러분 여기는 누가 주체가 돼 있습니까? 그렇죠. 사단이 누구를 격동했다는 거예요. 다윗을 격동했다. 그럼 아까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24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해서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그러면 이 두 구절을 합해서 보면 한 여호와께서 분명히 이런 일을 하게끔 했는데 누구를 시켜서 한 겁니까? 그렇죠. 사단, 사단이 뭘 갖고 끼어드냐면은 여러분 우리 안에는 먹을 게 있어야 사단이 온다고 그러잖아요.
내 안에는 욕심이 있는 거를 알고 사단이 와서 그걸 부추기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보면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의 마음이 있어야 되지 말아야 될 게 있는 거예요. 교만한 마음 그 교만한 마음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단을 보냅니다. 보내서 다윗에게 있는 교만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시죠. 인구를 조사하고 하는 그 마음을 생기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인구를 조사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거기 한번 봅니다. 역대상 21장 1절에서 2절부터 3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요를 알게 하라 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100배나 더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에 종이 아니니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나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백성의 수요를 다윗에게 고하니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때 보면 요압은 뭐라고 했냐면 아니 이런 일을 어떻게 왕이 기뻐하시나이까? 이 상태를 보면 요압이 더 깨어 있었죠. 그죠. 어떻게 이런 일을 나한테 시킵니까? 왕이 가진 숫자보다도 100배나 더 있기를 원하는데 왜 이런 일을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이런 일을 시키십니까? 아니 요압이 더 깨어있었어요. 다윗에게 하시나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왕의 명령인지라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요압은 장군이 부하인데 그래서 가서 인구 조사를 하면서 몇 개는 빼놓고 미워가지고 몇 개는 빼놓고 가서 보고했어요. 조사 안 했어요. 몇 개는 빼고. 여러분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 있다. 여러분 이게 뭐냐면 우리 안에 있는 그러니까 인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자는 거예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원하지 아니하는 우린 자녀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예를 들어서 교만이 있거나 자만이 있거나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거예요? 악신을 보내서라도 보내서 이거를 드러나게 해서 처리하게 하시더라. 처리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중에 이 인구 조사한 것을 선지자를 보내서 너 잘못했다라고 또 고백하게 하잖아요. 그 자리에서 다윗은 또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뭘 하고 계신가를 보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러니까 우리 안에 우리 안에 있지 말아야 될 그런 성질들, 자아의 모습들, 그런 것들을 하나님은 처리하기 위해서 악신을,악신을 보내서 하나님 부리시는 악신을 보내서 그래서 다윗을 격동 시켰다잖아요. 격동시켰다. 하나님이 다윗을 감동시킨다는는 게 그게 사단을 통해서 감동의 좋은 감동이 아니라 나쁜 감동, 죄를 짓게 하는, 감동 있게 하셔서 그 안에 있는 교만과 자만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일을 만드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지금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하나님은 그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우리 안에 있는 자아, 못된 자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못된 자아를 처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문제와 사건과 환란을 일으키시는데 문제와 사건과 환란을 일으키시는데 이게 왜 일어나냐를 봤더니, 하나님은, 하나님은 모두가 다 누구를 위해서 일으키고 있다? 이게 우리를 위해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흠없게 하기 위해서 그날에, 그날에 온몸과 영과 온몸과 영과 혼이 그분 앞에 그분 강림하실 때 흠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이렇게 어려운 악신, 사단을 이용해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끄집어내기 위한 문제와 사건과 환란을 허락하지 아니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과 환란 속에서 우리는 사단을 택할 게 아니라 악한 영을 쫓을 게 아니라 그 사건과 문제와 환란 속에서 누구를 바라봐야 된다는 거예요? 전에 얘기했잖아요.
자기 성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성찰.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에 어떻게 해서 이런 문제가 터지고 저런 문제가 터지고 이런 사건이 생기고 저런 환란이 오는가? 이런 환란이 내 인생 잊지 말아야 될 이런 환란이 왜 오는가를 봤더니, 하나님께서 뭐라는 거예요? 아까 우리 야고보서를 읽었던 것처럼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를 어떻게 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와 사건과 환란이 오는가를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시는가를 지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1군데만 더 찾아보죠. 사무엘상 22장 1절에서 5절입니다.
사무엘상 1절에서 5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함에 그 형제와 아비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00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이냐면 사울왕이 다윗을 죽일려고 하니까 다윗이 그를 따르는 자들 불쌍한 자들 아시죠. 그렇죠. 길거리에 유랑하는 자들, 그런 자들 다 억울한 자들이 모여갖고 한 400명 모였다고 그랬죠. 모여갖고 이제 자기를 죽일라니까 어디로 내려간 거예요? 모압으로 내려간 거예요. 모맙. 여러분 사울왕은 그렇잖아요.
이스라엘의 왕인데 예를 들어서 모압왕으로 가면 이거는 완전히 공격, 완전히 전쟁의 상황인 거예요. 그러니까 모압으로 내려가면 사울왕이 쫓아올 수 있을까? 없을까요? 못 쫓아오죠. 그러면 이제 다윗은 이 400명을 데리고 모압으로 가면 안전한 거예요. 쫓아오지 못하니까.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인제 우리는 끝났다 환란 끝. 왜냐하면 우린 안전한 곳을 발견했으니까. 못 돌아오게 만들었으니까. 인제는 우리는 그러면 모압에서 살자. 그러다가 때가 되면 예를 들어서 가든지 뭐 어떻게 하든지 어쨌든 모압압으로 내려간 거예요.
근데 이 모압으로 내려가서 이 참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그 마음의 합한 자가 분명한 것이 모압으로 내려간 다윗이 뭐라고 얘기하냐면은 그 3절에 보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하나님 뜻을 알고 싶어 한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이런 환란 속에서도 자기가 그 환란을 피했는데 인제 못 쫓아오잖아요. 피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같으면 안도의 숨을 내쉬고 그냥 거기서 안주한다든지 그럴 만한데,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 이게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안주할 우리는 그렇기 쉬운데 그거는 어떻게 하냐면 뭐라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여기 있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얘기했죠. 그 이게 무슨 얘기예요?
이 다윗은 하나님 뜻을 알기를 원했던 거예요. 이 환란 속에서도 우리의 머리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아 환란 끝이다. 인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정말 다윗이 하나님 마음이 합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진짜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그걸 알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은 누굴 보냈어요? 5절에 선지자 갓을 보낸 거야. 갓. 보내갖고 한 얘기가 뭐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5절에 다같이 시작 선지자 갓이 다윗의 길을 이 요새 있지 말고 떠나 어디로 들어가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아니 그거 들어가면 다 또 죽일려고 서울왕이 창을 갖고 쫓아올 텐데 나보고 또 들어가라 하십니까? 근데 하나님은요, 뭐라는 거야? 들어가라는 거예요. 왜 들어가라 그랬을까요?
환란이 끝이 아닌 거예요. 아멘 환란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에요. 하나님 뜻은 어떻게 하는가? 환란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이거는 초기상황에 그죠. 초기에 400명 끌어모아 갖고 그렇잖아요. 도망간 거예요. 사실 모압으로. 왜 돈 모아보러 도망갔을까요? 자기 증조할머니가 어 그 누구예요? 증조할머니가 그 누구죠? 룻, 룻이 모모압 여자거든.
그 증조 할머니를 빗대갖고 우리도 우리가 조상이 모압에서 우리 할머니가 증조할머니니까 우리 좀 받아달라는 거죠. 그래 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그가 환란을 피하는 게 아니라 환란을 어떻게 하는 거라고요. 받아야 되는 거예요. 받아야 되는 거. 아니 하나님이 왜 사울에게 악신을 힘 있게 내리게 해서 그다음 날부터 다윗을 죽일려고 쫓아다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몇 년이었어요? 16년인데, 지금 이 상황은 1년도 안 된 거예요. 이게 인제 다 어떻게 그 계산이 언젠지는 모르지만 이게 다 안 적혀혀 있지만 아주 초기라고요. 초기.
그러니까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통해서 '나는 모압으로 왔으니까 환란 끝'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다윗이 정말 하나님에게 합격된 이유가 뭐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 과연 이게 하나님 뜻입니까? 묻는 마음으로 있었다는 것이죠. 그랬더니 하나님이 선지자 갓을 보내서 '야 너 여기 있지 말고 도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왜 그랬다구요? 환란을 받고 그를 깨끗케 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아멘입니까? 그래서 가정생활이 어렵다고 뛰쳐 나와야 되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어야 되겠습니까? 있어야지요. 이제 제대로 대답이 나오네. 있어야 되는 거예요. 친정에 잠깐 보따리 싸고 왔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기까지 알게 됐길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뭐라 그럴까 '도로 들어가라' 할렐루야. 이 웃고 넘어가는 얘기들이지만 웃을 얘기들이 사실 아니에요. 이 상황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에요. 근데 거기에 다윗은 또 순종했어요. 참 하나님의 사람들 머저리들이야. 그냥 순종 안하고 그냥 모압에 있으면 환란 끝, 이렇게 될 텐데 또 이 다윗은 정말 또 하나님한테 이게 아니 이게 뭐야? 뭐가 없어? 뼈가 없는 사람, 뼈가 없이 그냥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또 죽는 상황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은 누굴 쓰신다? 이런 자를 쓰신다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러니까 환란을 거쳐서 만들어진 자를 하나님이 쓰신다는 거예요. 환란이 없는 자는 안 쓴다. 여러분 솔로몬 왕과 다윗왕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다윗은 이런 환란을 거쳤어요. 그는 승리했어요. 결국은.
솔로몬은요? 그 인생의 환란이 있었다? 없었다? 없었죠. 그러니까 말년에 어떻게 돼요? 다른 길로 가버려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환란이 있는 게 좋겠습니까? 없는 게 좋겠습니까? 있는게 좋아요. 할렐루야. 아멘. 아멘까지 해야 돼.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삶에 있어서 환란을 거둘 수가 있는 분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하신다면 금방이라도 거둘 수가 있는 분이에요. 근데 안 거두시는 이유가 누구 때문에 그렇다고요.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 환란을 아직 거두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이 다윗은 정말 하나님의 참 사람이었죠.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고 정말 본받을 점이 많아요. 그리고 들어가서 환란을 당하는 중에 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2번 있었어요. 그죠. 근데 그냥 칼 갖고 꽂아버리면 사울왕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면 자기는 2대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겠다 이제는 환란 끝이에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이질 않았습니다. 그럼 그 상황 속에서 다윗은 왜 죽이지 않았을까요? 왜 사울을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죽이지 않았냐 얘기입니다.
저는 그 상황 속에서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저는 다윗이 어떻게 행동을 했던가 생각을 해보니까 그는 항상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소리, 그리고 직관, 하나님의 뜻, 그것에 더 중점을 두고, 더 거기에 그 음성에 더 초점을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당장 내가 보이는 상황이나 환란이나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계신 그 하나님이 내 양심의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할렐루야 그래서 기름부음 받은 자 왕이 자기 원수잖아요. 그 옷자락 하나 밴 것도 마음 아파한 것은 그는 자기에게 그 양심의 뭐라고 하는 말씀에 그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를 자기 마음의 합한 자라고 진짜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 얘기가 무슨 얘기냐면 우리도 우리의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환란이 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삶이 있지만 그 안에서 뭐에 더 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살아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음성, 내 양심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직관, 하나님의 뜻, 이것에 더 귀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장 내가 당하는 그 환란의 어려움보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다윗을 본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칠 때가 거의 됐는데요. 하나만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환란을 주시는 이유가 아까도 얘기했듯이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환란을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와 사건이 우리를 위해서 터진다 했습니다. 근데 다윗은 그 고난 끝에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난 다음에 인내로 한 거죠. 끝까지 온전히 인내한 거죠. 그죠 생명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그런 자에게 준다는 거잖아요. 온전 인내한 그에게 그가 고백을 합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렇죠. 그릇 행하였는데, 고난을 당한 후에는 주의 법들을 지키나이다. 내가 고난을 통해서 뭘 배웠다는 거예요?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럼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에게 환란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인생에 환란이 오는 이유가 우리가 하나님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어떤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그분을 알게 하기 위해서 모든 문제와 사건과 환란이 우리 삶 속에 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고백하기를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인제는 제가 눈으로 보나이다. 우리가 모든 환란과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얻는 것이 뭐라는 겁니까?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나타나서 하시는 얘기가 나는 너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라. 아멘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란을 허락하시는 그 모든 이유가 그분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할렐루야. 환란을 통하여 우리가 얻어야 될 것이 뭐라고요? 하나님 그분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여러 가지를 통하여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환란과 고난과 문제가 우리의 삶에 허락되시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한번 또 성경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리석지 않게 하시고 오늘 주신 모든 말씀 속에서 정말 인내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온전히 참는 자에게는, 온전히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자에게는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우리 한번 1분만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와 있는 이 환란과 문제, 지금 와 있는 환란과 문제가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배운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시고 보여주시고 고치시기 위해서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한번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기도문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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