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특징 - 서사라 목사님
내 삶을 통하여 내가 호흡 있는 동안에 내 생명이 있는 동안에 내 삶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릅니다.
아버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 영광 받아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찬양받아 주시고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이 시간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참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방향이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정말 이 세상에 우리로 하여금 호흡하게 하시고 생명 주신 그 삶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정화시켜 주시고, 아버지 모든 걸 버리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렸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첫 번째 시간 우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나눌 것은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특징이 되겠습니다.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특징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번 달을 마치면 기본과정 16개월을 마치게 됩니다. 이번달로써 마치고 그다음에 우리는 인제 성장반으로 넘어가죠. 인제 성장반으로 넘어가는데 성장반은 성경만 우리가 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만 보는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18개월 여러분과 제가 성경만을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달이 마지막 기본과정의 마지막 달이라는 걸 아시고, 오늘은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입니다.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특징에 대해서 보도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번 달만 마치면 우리 기본과정 16개월을 마치고 다음 달부터는 성장반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화요일날 저녁에는 지금 기본과정 제1 과정을 들어갔어요. 그러니까는 제일 첫 달 16개월의 제일 첫 번째 달 화요일날 저녁 들어갔으니까 여러분이 또 기본과정 처음부터 나는 들어야 되겠다 하시는 분들은 화요일날 저녁에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특징인데요.
여러분 그 우리 영성훈련에는 4가지 기둥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영혼과 영성이 있고, 그다음에 육체와 영성이 있죠. 육체와 영성이 있고, 그다음 이쪽에는 물질과 영성, 대물과 영성, 물질과 영성 같은 말입니다. 그 다음에 대인과 영성, 여러분 영혼과 영성 육체의 영성은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거라고 한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거라고 하면 이 물질과 영성과 대인과 영성은 나와 이웃 간의 관계 주로 그래서 영혼과 영성은 우리가 바깥으로 보면 땅이 있잖아요. 땅에는 나무가 있는데, 나무 나무가 뿌리가 이렇게 얕으면 나무가 위가 아무리 무겁고 많이 이렇게 있어도 뿌리가 얕으면 어떨까요? 바람이 불면 그냥 쓰러지죠. 근데 이 뿌리가 아주 깊이 넓게 이렇게 쭉 뻗어있으면 아무리 이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해도 이게 나무가 안 넘어지죠. 그래서 이 뿌리에 해당하는 게 뭐냐면 영혼과 영성과 육체와 영성이에요. 우리가 영성 훈련해서 이걸 나무의 비교를 한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물질과 영성과 대인과 영성은 나무가 위로 자라나서 그다음에 잎을 맺고 그죠. 잎이 나고 그다음 꽃이 피고 거기에 꽃이 아름다운 꽃이 피고, 동백꽃 이런 거 참 예쁘잖아요. 나무는 크고 그러면서 동백꽃 참 이쁘죠. 그런 물질과 영성과 대인과 영성은 바깥으로 보이는 부분들이에요. 이 밑이 또 잘 돼야 요것도 잘 되고 또 이것만 잘 됐는데 이게 없다면 이것도 문제가 있죠. 영혼과 영성과 육체와 영성,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는 잘 됐는데 바깥으로 보이는 물질과 영성과 대인가 형성이 잘 안 돼 있다. 그럼 보여지는 실제로는 사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열매 맺는 삶이거든요. 열매.
뿌리가 튼튼해서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이 우리가 지금 영성훈련을 할 목적인데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 잎은 무성하고 잎도 무성하고 한데 열매가 안 맺어진다 이게 문제가 있죠. 그죠.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는 대인과 영성은 열매 맺는 일에 관계되는 거예요. 열매. 그래서 여러분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대인과 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다른 건 다 잘되는데 이게 많은 사람들이요. 기둥이 집이 기둥이 4개 있잖아요. 4개. 영혼과 영성, 육체와 영성, 대물과 영성, 대인과 영성 이렇게 있는데, 4개가 집이 지어질려면은 이 4가지 기둥이 똑같이 높이가 똑같아야 이 집이 지어지잖아요. 근데 3개는 잘 돼 있는데, 한쪽은 이게 요것밖에 안 된다. 다른 거는 다 이렇게 똑같은데, 예를 들어서 이것도 조금 작다 대물과 영성과 대인과 영성이 안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잘 돼 있어요. 이게 안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집이 지붕을 얹어도요 이상하게 되고 기울어지죠. 이게 무슨 집입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는 여러분이 기본 과정에서 열심히 배우셨으면서 내가 가장 이상 안 되는 부분이 어느 기둥이다. 이게 느껴지면 그 안되는 기둥 그걸 갖고 씨름해야 되는 거예요. 이 안되는 기둥 나는 지금 대물과 영성이 안 된다.
하나님의 관계는 잘되는데 대물과 영성이 안되고 있고 그렇다 그러면 대물과 영성이 여기에 주력해야 되는 거예요. 이걸 올려야 돼. 기둥을. 그래야 집이 바로 서게 되거든요. 나는 대인과 영성이 안 된다. 이거에 주력하면 결국에는 이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내가 안되는 것에 주력하면요 결국은 이 안 되는 것이 가장 잘 돼요. 나중에. 할렐루야. 그걸 발견하셔서 사람들은 다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다 잘되는 게 아니에요. 그 안 되는 부분을 발견하셔서 그걸 계속해서 발전시켜서 가장 잘되게 하실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대인과 영성 보면 대인과 영성 특징을 보면 첫째는 이 생명단계는 생명단계에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뭐냐 하면 상대방 안에 있는 주님을 주님에 대해서 사는 자, 상대방 안에 있는 주님에 대하여 사는 자, 그런 자로 산다는 거죠.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은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주님이 계세요? 안 계세요? 계시죠. 그럼 내가 대하고 있는 이웃 그 안에는 주님이 계실까요? 안 계실까요? 계시죠. 근데 우리가 보는 것은 뭘 보죠. 항상 그 사람의 외모와 또 행위와 말과 이런 거를 보잖아요. 근데 생명 단계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이걸 보지 않습니다. 뭘 보냐?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그 사람 안에서 보는 거예요.
저도 이게 참 처음에는 안 됐었어요. 왜냐? 그 사람 하는 짓은 개망나니 짓 같은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서 내가 주님을 볼 수 있냐 이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이 여러분 주님은 누굴 사랑합니까? 나를 사랑하잖아요. 그럼 주님은 또 누굴 사랑할까요? 그 사람도 사랑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 사람도 나만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주님을 받아야 되고 주님을 줄 수 있어야 돼. 그 사람의 언행이나 그 사람의 외모나 이걸 보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는 거예요. 우리 눈은 어떻게 해야 될까?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을 봐야 되니까.
그 사람 외모로 봐서는 주님이 안 보이니까. 눈을 좀 멀리 딴 데로 보면서 주님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고 계시는 모양인데 어떤 사람이 A라는 사람이 그죠. A라는 사람이 이제 내 앞에 있는 거예요. 그죠 내 앞에 있다. 근데 이 사람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주님 생각이 안 나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생명 단계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지 않는다고 그랬죠. 그럼 어떻게 되냐? 우리는 뭘 봐야 되냐 A라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A를 사랑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돼요. 할렐루야. 주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그니까 그 주님이 그 사람을 아직까지 그렇게 놔두고 계시다는 거예요. 놔두고 계신데,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 사람에게 내가 지금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팍 주셔갖고 은혜를 팍 주셔 가지고 바꿔놓을 수 있는 분일까요? 없는 분일까요? 바꿔놓을 수 있는 분이잖아요. 나에게 주신 은혜보다도 더 큰 은혜를 주셔서 바꿔놓을 수 있는 분이에요. 근데 안 하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의 눈은 항상 어디에 둬야 되냐면 주님한테 포커스를 맞춰야 돼요. 그 사람을 보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주님을 바라봐야 돼요. 할렐루야. 이게 생명 단계에 있는 삶의 모습이에요. 근데 우리는 어떻게 늘 어떻게 하고 살아요? 그 사람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말, 그 사람의 행위, 이걸 보고 사니까 그 사람의 육신 우리에게도 육신으로 보고 사니 육신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나, 영으로 받아라 우리가 영으로 생각하고 영으로 받아라 영으로 받자. 이게 무슨 얘기냐면은 그 사람을 육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아무도 육신대로 알지 아니하노니 예수 그리스도도도 우리가 육신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니하노라 모든 사람들을 육신으로 보지 말라는 거예요.
영으로 보는 훈련을, 영으로 보는 훈련을 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뭐냐면 기다림과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 하나님이 참음과 인내 사랑 화평 희락 온유 절제 이런 걸 원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위를 봐선 안 되더라는 것이죠. 그 사람 안에 계신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주님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야 우리가 성령의 사람으로 바꿔질 수 있어요. 이게 훈련입니다. 훈련.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는 자는 이런 생명의 삶을 살 수가 없어요.
우리 육체가 있는 동안은 육신이 먼저 나가게 되어있거든요. 근데 그걸 거절하고 생명의 삶을 살려고 하니 모든 사람들을 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은요, 정말 사실은 여러분을 사랑하세요. 여러분과 저를 사랑해요.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이는 거예요. 나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을 만들기 위해서 붙이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정작 그 하나님의 의도는 알지 못하고 그냥 육신으로 받으니까 어떻게 돼? 인생이 허비되는 거예요. 인생이 허비된다. 성경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잖아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육신으로 살고 육신으로 받으니까 육신으로 보니까 인간들을 우리에게 오는 이웃들을 그러니까 인생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 허비되고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 거기 나와 있죠.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니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러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게 첫째되는 계명이라는 거예요. 목숨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근데 이게 첫째되는 가장 큰 계명이고, 두 번째도 이와 같으니 그랬어요. 이와 같은 건 뭐냐면 첫째되는 계명에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는 말이죠. 그래서 결국 이 얘기가 뭐냐면 니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뜻을 다해서 내 이웃을 니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도 그렇게 사랑하라는 거야. 목숨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게 하나님의 가장 큰 두계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는 친구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거, 얼마나 그게 큰 일인지 가장 큰 일이 친구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니 가장 큰 일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기를 원하는 자는 잘 안 되지만 여러분 잘 안되고 있는 거 알거든요. 잘 안되지만 상대방을 주님으로 보는 훈련을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도 구원받은 영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마태복음 25장 40절 보면 거기 적혀 있죠. 그죠 이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이거는 우리 이웃에게 한 것이라
하나님은 뭘 보고 있냐면요? 우리 이웃에게 내가 한 것이 주님한테 한 거라는 거예요. 주님한테 내가 이웃에게 대한 것이 주님한테 한 것이다. 근데 여러분 제가 이 생명의 삶을 우리가 왜 못 사는가를 좀 봤더니요. 어떤 경우에 참 잘 안 되는 거를 봤어요.
제 자신도 보고 그것도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 그러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여러분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던가요? 이때 가장 생명의 삶을 잘 못살더라는 것이 근데 우리는 사실은 하나님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예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라는 빛을 비추고 소금이 예수님이시니까 말씀이 소금이잖아요.
말씀이 예수님이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데 이방인들에게 이방인들 예수 믿지 않는 자들 그러면 얼마나 아 이 세상은 험악하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속이고 그런 세상에 여러분 바깥세상을 저는 잘 몰랐어요. 교회만 있으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이런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더라 이거예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얘기하냐면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너희가 착한 행실로 뭐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라.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했어도 착한 행실로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교회 바깥에서 부당한 일 당할 때 참고 그죠. 견뎌내고 주님을 위해서 내가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되니까. 참고 견뎌내고 그다고 오히려 그 상황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가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언제냐면 부당한 일을 당할 때예요.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남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 때 예를 들어서 재정적인 손해를 끼친다, 재정적인 손해를 끼친다 그리고 여러분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러고서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이럴 때 여러분 어떻던가요? 여러분 파킹장을 다른 사람이 계속 쓴다 이런 이럴 때에 여러분이나 저나 마찬가지예요.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생명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에도 내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타나야 되는데 만일에 내가 드러났다고 한다면, 내가 화가 올라오고 이 화를 갖다 내 컨트롤을 못하고 쏟았다. 쏟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왜 이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건 어유 저건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저 얘기를 하나? 그런 모습들 같은데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화를 내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디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느냐? 만일에 이게 되면 여러분이 생전 모르는 사람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서 재정적인 화를 당하고 또 이웃집이 계속 여러분의 파킹장을 쓰고 자기는 댈 데 없고 이럴 때 이거를 여러분이 넘어가고 정말 생명의 삶을 살 수가 있다면 여러분 많이 통과한 사람이에요. 할렐루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까요? 왜 이런 일이 부당한 일이 내 삶에 일어나게 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사랑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넓히시려고. 할렐루야.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면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가? 그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니까 똑같은 사건이 계속 그제도 일어나고 오늘도 일어나고 똑같은 유형의 문제들을 일으키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통과하라고.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이 생명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영성훈련을 왜 받냐 영성훈련 몇 년이고 왜 받냐? 이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 봤거든요.
근데 내가 이런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한 추구가 없다. 열정이 없다. 그러면 안 되죠. 그죠. 우리가 영성훈련을 받는 이유가 뭐냐? 내 안에 뭐에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내 안에.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받는 겁니다. 사도 바울도 뭐라 그랬어요? 너희 안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내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그랬어요.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우리의 삶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도 보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사건을 일으키고 계시고, 할렐루야.
예레미야야 48장 11절 한번 가봅니다.
예레미야 48장 11절 봅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을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문제가 없는 사람 사건이 없는 사람은 바로 이 모압과 같은 존재예요.
하나님이 전혀 관심이 없는 자, 하나님이 정말 그를 사랑하는 자는 그 인생의 문제와 사건을 많이 일으키세요. 왜냐? 그 안에 있는 더러운 거 드러내실라고. 여러분 꾸중물을 꾸중물통을 한 3일간 가만히 놔둬 봐요. 위에는 깨끗한데 밑에는요. 젓가락과 젓가락이나 막대기를 한번 휙 함 저어 보세요. 얼마나 더러운 냄새와 더러운 찌꺼기가 올라오는지 여러분의 인생에 왜 하나님께서 문제와 사건을 허락하시느냐?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찌꺼기 냄새 나는 거 다 처리하실라고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얼마나 많이 포로가 됐었습니까? 그렇잖아요?
식민지가 되고 남의 포로가 되고 바빌론으로 다 끌려가고 나라가 망하고 왜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가 터졌다 예를 들어 내 인생의 문제가 터졌고 사건이 발생했다. 나를 위해서 터진 건데 거기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사람들로 변화받고자 하는 열정과 추구가 여러분과 저에게 항상 있을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생명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요. 나중에 또 두 번째 시간에도 생명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다루겠지만, 정말 내가 그리스도와 같은 자, 내가 정말 그리스도가 나에게서 나가고 정말 내가 내가 없어지고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살겠다라고 하는 그런 결단과 의지가 없이는 결코 여러분은 여러분의 옛자아의 모습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데 어떻게 그리스도 형상이 내가 입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의 모습을 벗고자 하는 자만이 그 안에 예수님이 들어가서 살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뭐냐 하면 생명 단계에서는 열매가 맺어집니다.
열매가 에 열매가 맺어진다. 여러분 이 열매는요 정말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나는 자,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나는 자, 우리는 이런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 그 이 길을 가고 있거든요. 나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나기 위해서 나에게서 이 하나님이 나타나는 자는 그 하나님을 다른 사람이 받아요. 받죠.
이걸 우리는 생명의 전이, 생명이 여기서 저기로 옮겨간다 이런 말을 쓰는데, 그러니까 늘 우리는요 사람들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 나를 주는 자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주는 자가 있어요.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는 어떤 자가 되어야 되냐면은 나를 주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주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원합니다. 이게 말이나 내 안이 바뀌어져서 말이나 행동에서 나타나야 돼요.
말이나 행동에서 예수가 나타난다. 이럼으로 해서 우리에게는 인제 점차 내 삶에는 평범하게 살면서 대인과 영성에서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만난 자는 만나는 사람은 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어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바울과 신라가 감옥에 갇혀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었잖아요.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컷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 피멍이 든 그 몸을 갖고도 매맞은 자리 씻지도 않고 엉겨 붙었잖아요. 그 몸으로 바울과 신라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했어요.
왜 바울은 그럴 수 있었나? 제가 한번 생각을 해봤어요. 바울은 어떻게 하면 매 맞고 주님 때문에 매 맞고 들어가서도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옥에서 찬양할 수 있었는가 생각해 봤더니, 바울은요, 삼층천을 갔다 온 자였어요. 이미 모든 것을 다 봐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하잘것이 없는 거예요. 주님 때문에 오히려 고난받고 핍박 받는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천국에서는 어떤 자가 큰 자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근데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감옥이 문이 이렇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절로 열려버렸잖아요. 근데 이제 그 모습을 보고 간수가 나와서 어떻겠어요? 자결을 하려고 그랬잖아요.
두 죄인이 없어졌으니까 감옥에 갇힌 자들이 없어졌으니까 자기가 죽을 걸 생각하고 차라리 자결을 할라 그러는데 바울과 신라가 바울이 그 앞에 나타나서 뭐라 그래요? 너 칼을 내려놔라. 내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참 그런 모습을 볼 때 여러분 바울을 만난 자는 참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이었어요. 바울에게서는 정말 내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가는 자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수가 뭐랄까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서 고꾸라져 무릎을 꿇고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거기서 그 말에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 간수는 어떻게 해요? 나중에는 이제 그들이 풀려나고 그다음에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이게 뭐예요?
피멍을 다 씻어주고 설교를 듣는 중에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더라. 여러분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우리를 만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끔 하나님을 볼 수 있게끔 그렇게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되어져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래서 우리가 정말 대인과 영성에서 힘써야 될 게 뭐냐면 이웃이 나타났다. 이웃이 나타났는데 그 이웃이 원수건 원수가 아니건 상관없이 나에게 나타난 모든 이웃에게는 우리는 뭘 주려고 노력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줄려고 노력해야 돼요. 하나님을 줄려고 그래야 돼. 우리가 하나님을 줄려고 하면 내가 나갈 수가 없지요. 내 감정이 나갈 수가 없고, 내 생각과 판단이 나갈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 주기를 원한다면, 미워할 수도 없고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요 생명 단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 속에서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사는지를 한번 봐야 돼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 이게 사실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삶이거든요. 근데 정말 우리가 살아온 이 세상과 있는 교육과 문화와 환경을 보면 니가 기쁘면 되고 니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게 아니라는 거죠. 저도 예수 모를 때는 그게 그건 줄 알았어요. 그리고 내 신앙이 어릴 때도 그게 그건 줄 알고 그게 그게 맞다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행복하면 모든 것이 오케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주님은 주님을 알면 알수록 내가 주님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내가 행복해지고, 내가 기쁘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너희는 날마다 자라가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해서 내가 다 다른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그래서 여러분 생명의 삶은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거를 여러분의 삶에 모든 영역에다가 적용을 함 시켜보세요.
하나님이 뭘 기뻐하실까? 이게 결국은 우리에게 뭐가 적용이 되냐면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뜻이 적용이 되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삶,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아드리는 삶, 그리고 그 네 번째 특징은 뭐라고 나와 있냐면 영화로움이다라고 나와있는데, 정말 생명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요 모든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섬기는 것도 기쁘게 여기고, 이웃이 오는 것을 버거워하지 않고, 섬기는 것을 기회로 삼고 이웃에게 하나님을 주면서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 모든 삶이 영화롭게 느껴진다는 거죠. 그죠. 제가 왜 이렇게 짤막짤막하게 넘어가냐면 좀 더 얘기할 게 뒤에 있어서 좀 넘어갑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로, 생명은 뭐냐? 시비를 가리는 게 아니다. 시비를 가리는 게 아니다. 여러분 영성훈련 7년 8년 10년을 해도 7년 8년 10년을 해도 이 시비를 가리고 있다면 이건 아직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시비는 뭐예요? 옳고 그름이죠.
옳고 그름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지 않는 이방인들 속에서 예를 들어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가 올라온다. 그랬잖아요. 거기에 왜 화가 올라옵니까? 시비를 가리기 때문에 화가 올라옵니다. 왜 당신이 내 파킹장에 파킹했냐? 이거야.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런 그 이게 시비를 가리는 거죠. 근데 하나님은 왜 그 사건을 우리 인생 속에 있게 하시느냐? 그것마저도 니가 정말 빛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정말 지금 당장 니 앞에 있는 이방인 그에게 빛을 보여주라는 거예요. 빛을 나타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 음성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왜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하나님을 그런 상황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주라고, 하나님을 주라고, 하나님을 주라고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걸 깨닫게 되면 그렇게 화나던 것이 화가 안 나요? 왜? 하나님 날 위해서 이 상황을 만들고 계시니까. 저 사람을 사용했으니까 할렐루야. 저도 이걸 깨닫기까지 몇 년이 걸렸어요. 제가 얘기했잖아요. 제가 맨하탄에 살 때 나 파킹장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근데 그 1층에 아파트에서 한의사 하는 분이 계셨어요. 맨날 가면 거기 뭐야? 손님들이 내 파킹장에다 파킹해 놓는 거야. 나는 들어가질 못해요.
거기를 파킹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근데 그런 일들이 왜 내 인생이 일어나나? 그걸 나중에야 내가 알고 오 마이 갓 하나님이 지금 나를 다루고 계신 걸 제가 알고 파킹을 길거리에다 하기 시작했어요. 말 안하고 그때야 제가 통과가 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알고 보니까 그 사람 예수 안 믿는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일으키는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예수 잘 믿는다 그러고 잘 믿는 신앙인처럼 정말 필요할 때는 빛을 비추지 못하고 소금 역할도 감당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안 해도 돼야 될 상황에 가서는 내가 잘난 척하고 그런 우리의 모습들~ 그니까 내가 길거리 주차하기 시작하니까 그다음부터 파킹 안 하더라고요. 내 자리에 누가 하시는 일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요. 처음에는 그분들이 많이 미웠어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감사했어요. 저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결코 깨달을 수 없었던 건너지 못하는 그 강을 건널 수 없었던 그 강을 저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건너게 하시는구나. 할렐루야. 그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예수 믿게 되고 좋은 결과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최소한 예수 믿는 자들로서 예수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욕먹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할렐루야. 더 나아가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분이나 저나 항상 깨어있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원합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에게 거기 없는 얘기들을 제가 조금 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거기 때문에 적으실 분들은 적으시고 여러분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가 필요해요. 두가지.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 결국은 이 생명의 삶을 살게 되면 많은 열매가 맺어지는데 이 생명의 삶을 살기엔 크게 두가지가 필요 첫째는 내가 비워져야 됩니다. 내가 비워져야 되는데, 이 비워지는 거에는 우리가 영성훈련을 받을 때 뭐에 주력을 하냐면은 자아파세에 주력하죠. 자아파쇄. 나의 못된 자아들이 내려놔져야 비워진 내 안에 누가 와서 살게 될까요? 그렇죠. 안 비워지면 못 들어오시는 거예요. 컵에다가 물을 채워 놓으면 물을 반 정도 채워 놓으면 공기는 반 정도 차 있잖아요. 근데 물을 다 버리면 공기가 다 차죠. 그것처럼 우리가 우리 안에 나를 비워내야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는 거예요. 첫째는 비우는 작업을 해야 돼. 우리는 이거를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 영성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들어와 사는 것을 신령한 집이 지어진다 라고 말을 하죠.
신령한 집이 지어지는 삶, 그다음에는요, 내가 비워지고 나서 자아 파쇄 훈련을 열심히 하고 나서 신령한 집을 지어서 예수가 거의 삼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동거동락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져야 되고, 두 번째는요 이기는 생명으로 넘어가야 돼요. 이기는 생명, 생명의 성령의 법을 쫓아서 사는, 성령의 법을 쫓아 사는 삶, 순종하는 삶, 이 두가지가 같이 이루어져야 돼요. 어떤 사람은요 밑에 것만 강조를 해요.
아무리 이걸 강조해도 내 안이 비워지지 않는 이상은 내가 하나님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입으로 나는 죽었다 입으로만 나는 죽은 사람이다. 예수님이 십자군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나도 죽었다라고 말은 하지만 내 안이 비워지지 않고 그 안에 예수가 없는 사람을 아무리 얘기해도 예수가 안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두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영성훈련 3년을 받는데 3년 동안 뭐하냐? 이 두가지 하는 거예요.
나를 비우는 작업, 그리고 그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사실 때 내가 생명의 성령의 법을 쫓아서 사는 이 두가지를 위해서 여러분이 3년 동안 훈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인 가 보죠.
에베소서 4장 22절부터 24절 말씀 다같이 시작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세 사람을 입어라 우리 갈라디아서 4장 19절 여기 다시 돌아올 거거든요. 좀 놔두고. 갈라디아서서 4장 19절은 307페이지 있네요.
갈라디아서 4장 19절 다같이 시작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 형상에 이르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다음에 갈라디아서 앞으로 2장 20절 다같이 시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다 버려지고 그 안에 누가 산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사는 것이라 그랬죠. 그렇죠.
그다음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 다같이 시작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래서 이렇게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의 삶이 어떻게 나타나냐?
22절 다같이 시작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 갈라디아서 아까 4장 22절 24절 봤잖아요? 거기 다시 가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게 자아파쇄죠.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벗는 훈련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세 사람을 입어라 명령이잖아요. 입으라. 제가 자아파쇄훈련을 한다고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이 전화가 와서 이런 얘기를 해요. 성경에 자아파쇄란 얘기가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물어요. 왜 그런 말을 성경에도 없는 그런 말을 씁니까라고 묻습니다. 저에게. 그러면 제가 뭐라고 얘기하냐면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벗고 입으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우리는 자아파쇄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그걸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래서 그럼 와서 좀 들으십시오. 내가 그랬죠. 그래서 여러분 자아파쇄 훈련은 벗고 입는 거예요.
벗고 입는 거다. 내 나의 옛사람을 벗고 입는 거죠. 그죠. 입는 것이다. 제가 그림을 하나 조금 한번 그려볼게요. 그림을 한번 그려볼게요. 우리가 많은 경우에 예수님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감정 아까 화가 올라온다고 그랬죠. 부당한 일을 당할 때 감정. 주님은 보세요. 이게 어떻게 되냐? 감정이라는 거기에 자아잖아요. 자아. 나의 욕심. 이게 자야가 아니라 자아입니다. 근데 주님은 어디 계시냐? 우리 속사람 안에 있거든요. 주님이 주님의 마음이 여기 있어요. 주님이 여기 계셔요.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내가 느끼는 것, 느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은 바깥에 있는 감정밖에 안 느껴지는 거예요.
이걸 안 내려놓으면. 그럼 내가 주님으로 행할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가진다는 건 뭐냐 하면 내가 지금 올라오는 이 감정 자아를 벗지 않고는 이걸 깨뜨리지 않고는 결코 주님이 만나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정이 up 돼있을 때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던가요? 아무리 생각할라 그래도 하나님이 안 느껴껴지잖아요. 내가 느끼는 거, 바깥에서 느끼는, 내가 느끼는 거는 그 주님의 바깥에 내 안에 있는 감정이 줄 주님을 완전히 싸 버려요. 아예 안 느껴지는 거예요.
이 나의 자아를 내려놓지 않고는 주님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주님이 만져지지도 않고, 주님으로 행할 수도 없고, 그런 것을 보더라는 거지. 그래서 내가 내 옛사람의 이 모습들 항상 가지고 산 이 모습들을 다 이렇게 자아파쇄 훈련을 통해서 이거를 벗기는 훈련을 하는 거에요. 이걸 깨는 훈련을 하라는 거예요. 이게 없어지고 정말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가 느껴질 수 있게끔. 할렐루야. 이게 자아파쇄훈련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자아파쇄는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자아파쇄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냐?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문제로 다가오고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여러분을 깨기를 원하시는 거, 그니까 여러분 왜 이 문제가 생겨서 나는 오늘 또 넘어졌나? 낙심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넘어지잖아요. 여러분 그죠? 저도 가끔 넘어지고. 그럼 왜 이 사건과 문제를 허락하시나? 내가 넘어지게 하시나 넘어지게 하신 거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사가 나오더라고요. 감사. 왜냐?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서 그걸 고치시기를 원하시니까. 우리는요 내가 정말 자아파쇄가 되어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고자 하는 추구를 가진 자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뭐로 봐야 되냐면은 기회로 봐야 돼요. 기회. 무슨 기회요? 내 자아가 파쇄될 기회로 삼으시라는 것이죠. 아멘입니까? 그 문제가 터졌다 감정이 올라오려고 그런다 우리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브레이크를 잘 걸어라. 브레이크. 여러분 브레이크가 잘 말을 잘 안 들으면 어떻게 돼요? 차가 브레이크가 말을 잘 안 듣는다 이 응급상황이죠. 이게 브레이크가 잘 안 들어서 분명히 빨간불인데 브레이크를 밟아야 되는데 안 들어서 그냥 지나간다 그러면 그 속도로 어떻게 될까요? 사망해요. 사망. 그니까 여러분 내가 지금 밑에서 화가 올라올라 그런다 감정이 올라오는 건 다 브레이크를 잘 거는 사람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거예요. 브레이크를 잘 걸어라. 그래서 여러분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나를 내가 변화될 수 있는 내가 자아파쇄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내가 설사 넘어졌다 넘어졌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왜 이 문제가 나에게 발생했습니까? 왜 이 사건이 발생했습니까? 그리고 나의 반응이 어땠고 나는 또 넘어졌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여기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그게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나오죠. 이 문제와 사건 속에서 예를 들어서 다른 사건도 있겠지만, 정말 부당한 일을 당해서 화가 올라왔다. 화가.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하고 쏟았다. 그러면 그 사건을 통해서 넘어졌잖아요. 쏟았으니까 넘어진 거지. 뭐 쏟고 나서 너무 쏟은 게 너무 분해갖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막 애통하는 거야. 하나님 내 모습이 아직도 이렇습니다. 근데 왜 이 사건을 저에게 허락하 왜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라고 딱 봤더니요. 화가 나는 이유가 뭐라구요? 여러분 이 화에 대해서 워치만 니가 화에 대해서 썼어요. 화는 누가 내냐 교만한 자가 화를 낸답니다.
화를 내는 자는 교만 내가 교만하다는 증거가 화를 낸다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애 제가 봐도 교만하니까 화를 내는 거예요. 화가 왜 올라오냐 어 화를 내지 말아야 되잖아요. 화를 내고 성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했으니까 화를 어떤 상황에서도 내지 말아야 되는데 내가 왜 화를 내냐? 워치만 니는 이 화는 교만한 자가 낸대. 교만한 자. 근데 이 화가 나는 이유를 봤더니요. 내 안에서 왜 화가 나냐? 아아 아직도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네요. 니보다 옳다 이게 뭐예요?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거 드러내실라고 그잖아요. 아직도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는 너의 모습을 봐라 내가 옳다는 거죠.
그 다음에 내가 너보다 낫다는 거죠. 이건 진리가 아니잖아요. 우리 주님은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은 남을 너보다 낫게 여기라 그랬는데 아직도 이런 마음이 있고,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화가 올라온다는 거예요. 이런 마음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자? 처리하시고자 그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셨다는 겁니다. 그 사람을 사용했다는 거예요. 왜 어저께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며칠 전에 왜 그렇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보니까 이런 마음들을 우리에게 있다는 걸 드러내시고 처리하실려고 그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그때는 넘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신 그분들을 미워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더 잘해줘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이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우리는 자아 파쇄 훈련받는 기회로 삼자. 아멘. 자아파쇄를 하는 기회로 삼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보면 우리 삶은 우리의 삶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문제와 사건이 있습니까? 이 삶이 뭐냐 하면 사실은 하나님이 나에게 걸어오시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내 삶에서 하나님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왜 이 사건을 일으키시는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문제와 사건 속에서 듣기 시작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영적 지각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가 장성한 자라 그랬어요.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다. 여러분의 삶이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변하여져 갑니다.
왜냐하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그리스도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나 자신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가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 음성이 들리고 물어볼 때 하나님 말씀하시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많이 말씀하시는 게 바로 문제와 사건 속에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로 걸어오시더라는 거예요. 여기에 대하는 눈이 여러분의 열리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그 정도가 많이 발전하게 됩니다.
근데 이거에서는 다 놓치고 기도 속에서만 예언하는 거에서만 무슨 그런 데서만 병 고침 일어나는 데서만 이런 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생각하고 그러면 하나님 여기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하나님 음성을 다 놓치기 때문에 10분의 7을 놓치고 사는 거예요. 10분의 7. 그래서 여러분 늘 애통하는 것은 주님 앞에 나가서 애통하는 것은 뭘 해야 돼요? 남편이 나에게 잘못해줘서 애통하는 게 아니라 뭘 놓고 애통해야 돼요? 나 때문에 애통해야 돼. 그런 남편을 안아줄 수 없고, 그런 남편을 주님의 마음으로 용서해 줄 수 없고, 안 되는 나를 놓고 애통 해야 된다. 할렐루야. 여러분을 승리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곳으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많은 아픔이 있을 거예요. 근데 그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숙시키길 성장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떤 목적을 갖고 있냐면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게 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어요.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구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자 하는 맏형, 그리스도가 맏형이잖아요.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 이 목적이 있으신데, 우리는 이 목적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하나님이 이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모든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목적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들어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깨려고 하실 때 잘 깨져주고 부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에요. 가만 보면 어제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구요.
1달 전에 2달 전에 사모님, 사모님, 그러면서 같이 수박도 잘라 먹고 했던 사모님이 벌써 안 보이고, 조금 일찍 가고 조금 늦게 가는 나그네 인생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나그네 인생 속에서 여러분이나 저나 아웅다웅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인생이 연극이라 그랬어요. 연극을 마치면 어디로 가냐면 본향으로 갑니다. 본향 집으로 갑니다. 연극이라는 거야. 인생의 연극이라는 거예요.
막 아닌 것처럼 살다가 진짜 본향에 돌아갔더니, 거지로 사네, 그렇잖아요. 내가 이 세상에 살 때는 막 돈이 많고 재물도 많고 번쩍지근하게 살았는데 인정도 받고 본향에 돌아가니까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데 보니까 아무것도 없네. 여기서 인생이 연극하는 삶이라는 거예요. 이런 연극하는 배우가 그 역할이 끝나면 집으로 가잖아요. 잠깐 무대에 나와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다가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거야.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진짜 자기로 본향향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자기 집에 살잖아요.
어떤 분이 그런 얘길 했어요. 인생은 연극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늘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 거는 내 본향에 가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극과 같은 이 인생 속에서 잘 살아라 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다 두고 가고 다 버리고 가고 없어질 것들, 그런 것들인데 죽고 썩고 없어질 그런 것들인데, 우리가 너무나 내 육신을 가져서 육신대로 생각하고 육신대로 행하고 하면서 사는 그 모습들이 우습습니다. 우습게 여겨지게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그렇게 사는 삶의 모습이 우습게 여겨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영으로 사는 자들 되게 하시고, 정말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저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을 받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하여 나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영적 지각이 열려지게 도와주시고 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바라볼 수 있는 그리고 나의 모습 안 되어서 처절한 나의 모습, 그 모습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결국에는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그런 귀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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