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영성 III 1-1- 영혼과 영성 진리단계 - 정의
여러분과 제가 오늘 볼 것은 드디어 영혼과 영성 제 3단계, 진리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영혼과 영성, 자 영혼과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제 3단계가 진리단계죠.
영혼과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죠! 그죠? 내 영혼과 나는... 나의 진짜 나는 영혼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 육체를 벗고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선다고 했어요.
우리 육체는 다 벗게 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설텐데...
지금 내 안에 있는 그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영혼과 영성이라고 이야기 했 어요.
그래서 진리단계라고 하면 여러분 진리가 누구입니까? 무엇이 진리입니까? 예!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또? 예수님이 진리시죠. 예수님이 진리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내가 진리라고 그랬어요.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방도가 없습 니다.
진리! 진리.. 그러니까 영혼과 영성 제 3단계 진리단계라고 하는 것은 내 삶이 이제 진리단계로 들어가는 걸 얘기해요. 진리 단계로 들어가는 거..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에 억지로라도 내가 따라가는 것을 얘기해요. 자 이 런 상태가 어떤 상태냐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이 영성훈련을 들어왔을 때는 우리가 영이 있고 육이 있잖아요?
그 포션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영이 20%, 육이 강해서 80%.
내가 하루를 살면서도 육으로 행하는 것이 80%, 영으로 행하는 거 20% 이런 포션으 로 왔는데, 진리단계에 가면은 이제 영이 육보다 강해집니다.
50%를 넘어서는 단계가 이제 진리단계죠! 영이 강해지는 거.
영이 주체가 되어서 내가 삶을 살기 시작하는 단계, 시작입니다.
영이 주체가 되어져서 삶을 사는 단계, 시작하는 단계가 진리단계라는 것이죠.
여러분, 육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는지... 원수! 원수! 원수다.. 아예 원수라고 못 박아 놨어요. 육으로 사는 것이.. 그러니까 육으로 산다는 게 뭐예요? 내 맘대로 사는 거죠!
지금 나에게 고난이 와 있는 이유가 뭡니까?
나를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육체의 고난이 와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육체가 필요 없는 게 아니예요.
육체가 고난을 당함으로 해서 영이 깨닫게 되어있어요. 영이 자라게 되어있어요.
지금 나에게 고난이 와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감 사해야 돼요. 감사해야 될 문제예요.
왜냐면 그 고난이 아니면 내가 자랄 수가 없거든요.
내 영이 자라는 것은 내 육체의 고난이 올 때 자랍니다. 내 육체가 고난을 당하는 것 이... 육체가 필요한 이유를 아시겠죠?
물론 의의 병기로 쓰는 것이 육체를 주신 이유인데, 그러나 내 영이 자라기 위해서는 내 육체가 고달파야 돼요. 내 육체가 희생해야 돼요. 내 육체가 댓가를 치러야 해요. 그래야 영이 자라거든요.
자 그래서 우리 요한복음 6장 63절 찾아가봅니다. 예.. 요한복음 6장 63절입니다. 자..다같이 시작!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니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이고 생명이라는 것이죠. 육은 무익하다 그랬어요. 근데 우리는 무익한 육을 붙들고 살잖아요. 그게 원수 된다는 거.. 하나님과 원수 되는 삶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빨리 내 육을 위해 사는 모습들을 내려 놓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 육체예요, 육신이예요.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은 요약을 하면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뭡니까? 육신입니다. 나를 위한 모든 것들...
여러분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이게 육신이라는 거거든요. 육신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어요.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뭘까요?
편안하고 싶고 그죠? 행복하고 싶고 이게 다 육신입니다. 잘 보셔요. 아~ 그게 어떻게 육신이예요? 근데 육신이예요.
내가 편안하고 싶고, 잘 먹고 잘 입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이게 다 육신이예요.
그러면 영은 뭐냐? 영은.. 영의 사람들은...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한 것보다도 우리는 어떻게요?
내가 좀 덜 행복해도.. 덜 행복하고, 덜 편안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 로 살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영의 사람이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그렇게 변화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아세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다 이룬다.
여호와이 열심히 특심이라는 거.
우리를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 특심이라는거.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걸 원하신다는 거예요. 영의 사람으로 살기를.
그러니까 내가 푹 퍼져갖고, 내가 편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행복하면 되 고.. 이게 다 육신이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과 원수 된다는 거예요. 깨어있으란 말 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거기서 깨어나라는 거예요
육신에 젖어있는 육신을 행복하게 하고, 육신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그 육신적인 삶에서 깨어나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내가 행복하고 내가 편안하고 이런 게 아니예요.
오히려 내가 육신적으로는 좀 불편하고, 육신적으로 내가 좀 불행해도 하나님의 말씀 대로 되어져가는 것을 감사해야 해요 아멘!
그게 이제 진리로 들어가는 자의 모습이죠!
진리가 뭔데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아가요 안 죽으려고 빠닥빠닥 하잖아 요. 여러분 잘 보세요.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어야 돼요.
너무 주관적으로 빠져있으면요 내가 불쌍해.
나만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돼? 이게 주관적으로 빠져있는 거예요.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겨야 되나 이거예요.
아니요! 많은 사람들이 다 모습은 다르지만 그 정도가 비슷비슷해요. 왜? 우리가 깨져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깨집니까?
한 사람에게는 질병의 모습으로, 한 사람은 남편을 통해서, 한 사람은 시집식구들을 통해서, 또 한사람은 자녀를 통해서... 다 다르잖아요.
각 집에 있는 우환과 고민이 다 다르잖아요.
그러나 그 정도의 크기는 비슷비슷해요. 어떻게 나만 이 고통을? 그럼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그만큼 더 못됐나보다.
근데 다 비슷비슷해요 받는 이 고난들을 보면. 그니까 나만 당하는 게 아니에요.
근데 그 속에서 정말 봐야 할 것은 뭐냐?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놓고 불수 있어야 해요.
아~ 지금 하나님이 예를 들어서, 나에게 이런 문제를 허락하셨다 떼어놓고 불수 있어 야 해요.
아.. 그러면 이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이 뭘 하기를 원하시는가? 아 내가 죽기를 원하시는구나! 왜냐고요? 환경은 누가 만드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환경을 내가 아니라고 뛰쳐나갈 수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러면 그 환경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는, 좀 밀어놓고 “아 거기서 내가 죽으라는 거구나!” 그걸 깨달아야죠.
근데 그 상황 속에서 부딪혀 보면요, 여러분들 알다시피 자아가 빠닥빠닥 올라 오잖 아요 그쵸?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자아를 붙들고 살아야할까 아니면 “콱! 그래 그냥 이거 내려놔 버리자! 밟아버리 자! 그냥 나는 없다. 나는 죽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올라오는 자아를 붙들고 “그래 나는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고 살아야 돼?” 이 걸 붙들고 살아야겠어요?
야 너는 그렇게 당해도 “야 더 들어가! 너 성숙하고 성장하려면 너 거기서 죽어야지~ 하나님 이 원하시는 게 뭔데?” 이렇게 생각해야겠어요? 어떻게 생각해야겠어요? 빠닥빠닥 올 라오는 자아를 붙들고 살아야 될까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정신을 차리고 나 를 이렇게 제압 할 수 있는 자. 딱 들어가게끔..
그러는 자가 훈련되어지고 더 성숙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육신이라 그랬어요.
아직도 내가 죽기 싫어서 빠닥빠닥 올라오는 나, 그쵸? 왜 내가 덜 행복해야 되냐? 이거야.
왜 내가 자유를 침범당해야 되냐? 이거야.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냐? 이거야.. 이게 다 육신이라는 거죠.
이게 하나님과 원수 된다 했어요.
자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사람들이 오고 가잖아요~
길게 갖다 붙여놓는 자가 있고 짧게 붙여놓는 자가 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하고 계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지금 상태에서 나에게 붙어있다. 그럼 거기서 뭐하라는 거예요? 그들에게 충성하라는 거예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우실 때가 있습니다. 언제요? 내가 통과하면..
다윗이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다윗이 다 만들어지니까 사울을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어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통과하면 그것이 치워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런데 우리가 통과하지를 못하니깐 계속 붙여놓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그 상황이 싫다고 해서 벗어난다. 또 다른 게 온다니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 하나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하나 통과하기까지 안 넘어가고 다음
거를요.
그러면 지금 상황 속에서 통과하자~ 할렐루야~ 감사하고, 아멘!
그게 맞는 정답이예요. 여러분이 그거 피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다음에는 그거 지 금 안 죽었는데 그거 죽이려고 이렇게 붙여놨는데...
예를 들어서 우리는 다 마찬가지예요.
남편도 붙어있고, 자녀도 붙어있고 다 붙여있어요.
그럼 붙여놨는데 거기서 내가 안 죽으면 다른 거 또 만나게요? 아니잖아요.
바로 나에게 지금 현재 상태 붙여놓은 그 자리에서 통과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나를 위한 모든 것들, 내가 지금 내가 진리로 살아드리지 못하는 이유. 육신의 것들은,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은 육신이라 그랬어요.
나를 위한 것들을 버리면 돼.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려 하면 돼요.
내가 편안해지지 않으려고 하면 돼요. 조금 덜 편안하면 돼요. 덜 행복하면 돼요. 그냥.. 원래 그거 원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하나님은 상대방을 보는 게 아니고 누굴 본다고 그랬어요?
나를 사랑한다 그래요. 나를, 나를 사랑해서 지금 그 고난이 와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 속에서 잘 만들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0장을 한번 보죠. 마태복음 20장. 마태복음 20장을 보면요 예... 다는 못 읽고요. 이 내용을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어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근데 이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계속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포도원에 안 들어가고 계속해서 바깥에서 놀고 섰다. 그게 누 굽니까?
계속 바깥에서 놀고 선 사람이 나를 위해 인생을 사는 자들이예요.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안 하려고 그래..
포도원에 들어가면 어때요? 햇빛이 쨍쨍 쬐고 괴롭죠!
근데 바깥에 놀고 선 사람은 내 편한대로 사는 거야, 나를 위해 사는 삶. 근데 주님은요? 그러면 삯을 안 주는거야! 상도 없고.
니 멋대로 산 삶, 놀고 선 사람들, 육신으로 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삯도 안 주고...
근데,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영으로 살고자 내가 좀 덜 행복하고 덜 편안하고 내 시간 이 없고 자유가 없다 할지라도..
내가 영으로 살고자 해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자들..
하나님이 그걸 원하신다라는 거예요. 영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어... 우리 시편 90편 12절 한번 찾아봅시다.
적혀있나요? 적혀있으면 그냥 읽으셔도 되고..
시편 90편 12절.. 다같이 시작.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우리가 오래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거죠! 그 오래 사는 인생이 아닌 삶 속에서.. 늘 우리 앞에는 영혼들이 왔다갔다.
오랫동안 붙여져 있는 자도 있고, 그 다음에 짧게 붙어져 있는 자도 있고. 그러나 그 게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이셔서 그 속에서 우리가 섬기고 하늘나라의 상을 쌓기 를 원하고, 내가 죽기를 원하고, 그런 인생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짜여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벗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 인생은, 우리 인생의 수는 정해져 있어요.
그들이 우리에게 붙어있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놓으신 동안 그 영혼들을 주 의 이름으로 잘 섬기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시편 90편 10절.. 거기 있네 그죠? 10절 다같이 시작..
“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제가 은혜를 좀 받았어요. 정말 믿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런 태도구나! 뭐냐면, 광주에 이기영 목사님이라고 계세요 영성훈련을 원래 여기에 오셔서. 제가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근데 그분께서 부인이 사모님이 유방암에 걸리신 거예요.
처음에 발견될 때가 그 때가 한2기 인가 그랬던 거 같아요. 3기인가 모르겠어요 하여 간 그랬는데..
그분이 이제 4년 만에 이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대개 이제 암에 걸려서 5년을 넘으 면 괜찮다잖아요.
근데 5년을 못 넘기시고 4년 만에 가셨어요.
근데 이 사모님이 또 굉장히 영적으로 또 깨어있으신 분이라서 자기가 4년 만에 갈 것도 다 일기장에 써놨대 이미..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거든요.
근데 그 암이 걸려갖고 빼빼 마른 상황 속에서 병상에 누워있을 때 이 목사님이 찾아
가갔고 목사님이 몇 살이냐면, 57인가 58인가 그래요.
57인가 그래요. 아직 젊잖아요. 부인이 53, 54세인가 밖에 안됐어요.. 근데 이제 찾아가서 손을 꼭 붙잡고 그랬다는 거야.
“나는 네가 참 부럽다 정말로...”
왜냐면 인생은 금방 뭐라고 그랬어요? 인생은 슬픔과 수고 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라고 얘기 하냐면,
나이가 56세, 53세 되는 사모님 붙들고 “나는 네가 참 부럽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활짝 웃더라는 거예요
무슨 얘기하는지 알죠?
그게 믿음인거 같아요. 정말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인거 같아요. 근데 그분들은 그렇게 살았어요.
“난 네가 참 부럽다.. 정말로..” 그러니까 그 이기영 목사님의 마음은
내가 여기 지금 사는 것은... 사실 그 부인하고 같이 가고 싶은 거지! 뭐~ 그 얘기하는 거 보면..
근데 사는 것은 뭐냐면, 오직 영혼들을 위해서 내가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예요. 그분.. 여러분 참 이게 믿음의 문제예요.
미주 성산교회 신성종 목사님이라고 계셨어요. 혹시 아세요?
그분이 한국 가 계신 거 같은데 은퇴하시고, 나이가 70, 한 4~5세 되신 거 같아요. 그 분이 간증을 하셨대요..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
자기가 여기서 목회하거나 그럴 때는 간증을 안 했대요. 근데 해야될 거 같아서 한다는 거예요.
이제 자기도 지금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나간다네요.. 인도인가 인도네시아인가...
근데 그분이 하는 얘기가 자기가 지옥과 천국을 보면서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가졌냐면, “아 내 가 죽는 것이 내가 천국의 들어가는 현관문을 통과하는 거구나!” 그렇게 느껴지더라 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죽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고 그런데 죽는 것 그 자체가 우리 믿는 자에게는, 영으로 살고자 노력한 자에게는 현관문을 통과하는 거예요
또 하나 더,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합시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 하냐면요.
휴거가 일어나면 그리스도인들의 십분의 일만 휴거가 된대요. 10%만. 그러면 온 세계 지구상에는요 성경책 들고 교회 가는 자의 수가 15억 정도. 20억이거든요.. 70억에서.. 그러면 그자들이 진짜 예수를 믿냐?
그중에서 진짜 믿는 사람은 5억. 그러면 5억에서 십분의 일은 얼마입니까?
오천만명? 오천만명.. 오천만명중에 여러분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면 내가 오늘 삶을 살면서 영으로 살려고 노력해야할까? 안해야할까?
나에게 붙여진 영혼을 내가 섬기려고 해야 할까? 안 해야할까? 무슨 얘기하는지 알죠?
우리가 십분의 일에 들어 가야 하는 거예요.
응? 내가 아웅다웅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멘? 내가 그 십분의 일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신성종 목사님 그 간증 속에는 뭐냐면.. 가장 큰 상을 받은 자들이 누구냐?
천국에서... 사도바울과 12제자.. 그 자들이 가장 큰 상을 받고 있고, 그 다음 서열이 누구냐 하면은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평생을 통해서 열심히 복음 전한 자. 할렐루야~
그래서 신성종.. 그분이 70 몇 살에 인도로 선교사로 가는 거예요. 그걸 봤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여러분 아~ 내가 복음 전하고 살아야 되겠구나! 아멘~
내 개인적인 삶에만 매여서 나에게만 매여 있는 삶이 그렇게 좋지는 안다는 말입니 다.
나가서 전파하고 내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고 다하란 말입니다. 할렐루 야~
그리고 날마다 사는 삶속에 내가 영으로 살지 않으면 다 사망의 삶이라 했어요. 사데교회에 우리 주님이 뭐라 했어요? 너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다. 그것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니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 자다 그게 뭡니까? 육신으로 사는 삶을 얘기하거든요.
사데교회 교인들도 교인들이거든요 예수 믿는 자들..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주를 위해서 고난 받는다 생각해야 돼요. 아멘!
아~ 주의 이름으로 내가 남을 섬긴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가정에서나 다른데서 예를 들어서 남편이 참 나를 잘 안대해 주고 힘들게 한다. 무엇에 있어서나...
근데 그에게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그를 섬긴다 하는 것이 좀 힘들죠 그죠? 그렇게 생각을 이렇게 바꾸는 게 힘들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 주여! 주님의 이름을 불러요.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그를 사랑하겠습니다. 내가 평생을 그를 주의 이름으로, 주 님이 하라했기 때문에 내가 죽고 지내고, 내가 여기서 만들어지고, 또 하나님께서 변
화시켜 주실 때까지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바꿔서 소망을 가지고 (내가 주님 때문에 소망을 갖고) 그가 언젠가는 하나남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대 하면서 할렐루야! 그렇게 내가 현재 상황을 참고 인내하는 거예요. 그게 상이 된다는 거죠.
그게 주의 이름으로 하는 거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바꾸기 힘들 때, 소망을 생각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저를 바꾸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걸 믿기 때문에 내가 지금 참고 인내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바꾸란 말이예요.
자 여러분 진리단계에서 정의 함 들어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가 영혼이 중심이 되어 말씀을 지키기 시작하는 단계다라고 그 얘기를 했죠 그죠?
영혼이 중심이 된다. 옛날에는 뭐예요 그냥 육으로만 했어요.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살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진리단계로 오면 영혼이 중심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시작하는 단계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뭡니까?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기 시작하는 단계다 이렇게 애기했죠? 어~ 신령한 집, 여러분, 신령한 집이라는 게 뭐예요? 신령한 집이 내안에 지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내안에 신령한 집이 지어지면, 여기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누가 살아요?
주님이 살기 시작하는 거, 내가 여기 안에 신령한 집이 지어지지 않으면 주님이 오시 지도 않죠! 그 더러운데 어디 주님이 와요?
더러운데 오시지도 않아 주님이..
근데 내가 신령한 집이 지어지면서 그 안에 주님이 살기 시작하는 단계가 진리단계라 는 거죠.
우리 빌립보서 3장 한번 가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
이런 단계에 있으면 내가 진리단계라는 겁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
그니까 이 진리 단계에서는 어떤 마음이 나에게 생기는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단계에 있으면 내가 진리단계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 다같이 시작...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 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별견되려 함이니”
할렐루야~ 여기까지만.
그러니까 예수를 얻기 위해서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해로 여기고 배설물 로 여기는... 주님을 얻기 위해서...
이 단계가 진리단계라는 거죠. 그니까 내 영혼이 그 가치관이요.
주님을 얻는데 있어서 이게 방해가 된다 싶으면 그러면 다 버리는 거예요. 다 배설물로 여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진리단계에 있기 전에는 어떻게 했냐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내가 입고 싶은 거 다 입고, 내가 하고 싶 은 거 다했어요.
근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아니네 그게...
그니까 다 끊는 거예요. 내가 사고 싶은 거 이제 안 사.
왜? 내 마음속에 양심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이제 하면 안 되 겠어. 내가 이전에는 비싼 거 먹고 다녔어요. 그것도 안 먹어, 이제.
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심으라 했는데 심지도 않고 말이야 응?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 되기 시작하는 거야..
주님을 얻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그 모습이 어 떤 모습인지를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러고 또 하나, 교회에서 내가 옛날에는 막 인정을 받으려고 그 마음이 더 커서 막 하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깐, 나는 쫌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한테 버림 받 은 바 되어짐을 알게 돼서...
이제 오히려 모르게 도우고 인정을 안 받아도 주님만이 나를 아시니까 기뻐하고 이런 게 주를 얻는 거예요.
옛날에 내가 주를 얻기 위해서는 옛날에 내가 하던 이상한 짓, 어리석은 짓, 어린애 짓을 다 버리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게 주를 얻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유익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을 버리는 거죠.. 해로 여기고.. 그러니까 진리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요.
겉사람은 후패해 보이는데 속사람은 날로 새로운 단계. 그런데 여러분이 이걸 오해해가지고..
아~ 겉사람은 후패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내가 옷을 옛날에는 막 차려입고 다녔는데 이제는 쫌 아무렇게 입고 다니고.. 그게 겉사람이 후패한 거죠..
근데 내 속은 참 주님 때문에 기쁘단 말이예요.
근데 그 기쁨이 기쁜건 좋은데, 이게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고 “그래 내가 하나님의 자녀야 내가 어디 가서든지 내가 어디 가서든지 하 나님의 자녀로 대접받아야 하고, 내가 왜 희생을 해야 돼? 하나님이 다 나에게 줄거 고,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고 말이야” 이러면 이상하게 되는 거야.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예요.
진리라고 하는 것은 겉사람은 후패해도 내가 인정을 못 받아도 속사람은 정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가 기뻐하는 거야.
하나님은 안 기뻐하는데 내가 막 기뻐서 날 뛸 수 있어요. 무슨 얘기하는지 아시죠? 이게 착각하는 거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진짜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가 기뻐해야 돼요. 이게 속이 날로 새로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최면을 걸어요. 착각을 해갖고.
하나님은 전혀 안 기뻐하는데, 자기가 막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맘대로 살면서 할렐 루야~ 이렇게 하면서 사는 사람이 또 많아요. 이게 착각이라는 거야.
정말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기뻐해야 그게 진리의 사람이예요. 속이 날마다 새롭도다 하는 말이 거기에 해당되는 말이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냐?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기쁘게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안 기뻐하면 다 틀린 거야. 다. 다. 아닌거야.
그 다음, 세 번째로 진리단계의 특징이 뭐냐? 다섯 가지 신분으로 살아드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다섯 가지 신분이 있죠 그죠? 다섯 가지 신분이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외우기를 자왕제성신 이렇게 외웁니다. 자.왕.제.성.신 이렇게 외운다고요...
그러면 다섯 가지 신분이 자녀로서 그 다음에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 그 다음에.. 성전으로서
신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단계
여러분, 자녀라고 하는 것은 그렇죠! 자녀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죠? 특권.. 누리는 게 있죠? 자녀로서의 특권, 누림이 있습니다.
누림이 있으면 그 다음 뭐가 있는가? 반면에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아요.
동전이 앞면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앞면도 있고 뒷면도 있고 그림도 다르고. 뒷면이 있는 게 뭡니까? 책임과 의무
자녀로서의 책임과 의무..
책임과 의무가 뭡니까? 내가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지만,
책임과 의무는 뭐예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그 분의 말씀을 잘 지켜드리고 이게 자녀의 신분이죠. 두 개 다 잘하라는 거예요, 자녀로서.
왕은요 우리는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잖아요. 왕으로서 또 살게 된다는 거죠.
왕은 뭡니까 내가 다스리면서 산다는 거예요. 뭘 다스리면서? 나를 다스리고 육신을 다스리고 죄를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고 환경에 넘어지지 말고 환경은 자꾸 날 넘어 뜨리려 하잖아요.
그러나 환경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승리하는 쪽으로 가야하고, 그 다음에 뭐가 있습니까? 사단을 다스리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거죠.
이걸 다 다스리는 자가 왕의 신분으로 사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왕으로서 신분을 살려면, 동전의 뒷면, 뒷면이 뭐냐면 하나님을 내가 나 의 왕으로 삼지 않으면 나는 다스리는 자가 될 수가 없는 거야.
동전의 뒷면이 뭐냐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삼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나는 다스리는 자로 살수 있다는 거야.
이런 삶이 시작하는 단계가 진리단계.
왕의 신분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왕으로서의 다스리는 왕으로 살기 시작하는 단계가 진리단계라는 거예요.
그러면 제사장은요? 날마다 나를 번제로 드리라 그랬죠. 제사장의 역할은 뭐냐면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
“그분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그 분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우리 몸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 몸을 날마다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게 지금 제사장의 삶이죠. 우리 몸을 날마다 그분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드릴 영적예
배라 그랬잖아요~
이게 제사장의 삶이라는 거죠! 진리 단계가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시작 단계라는 거죠.
여러분 어떠세요?
이 단계에 지금 내가 들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아닌 거 같아요? 들어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성전.
우리는 아까 신령한 집이 지어진다고 했죠? 내가 성전으로서의 삶을 우리는 살게 되는 거..
그니까 내가 성전으로 살 때에 내가 하나님이 내안에 사시는 내 몸이 성전이라고 했 는데 내 몸을 더러운 데다가 갖다놓고 죄짓는데 내 몸을 갖다 놓고 그 다음에 남을 막 험담하는데 같이 끼어갖고 같이 험담하고..
여러분 술은 안 먹겠죠? 그 다음에 담배 안 피겠죠? 그죠? 그런 것들이 다 내 몸이 성전이라고 했으니까.
내 몸을 성전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해요. 내 몸을 거룩하게..
그 다음에 신부로서의 삶. 신부는 뭐한다고 그랬어요?
옳은 행실, 옳은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됩니다. 옳은 행실. 세마포 옷을 입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은 빛이라고 했어요.
빛은 사람들에게, 집안사람들에게 비취느니라. 할렐루야~ 어디서부터 비취라고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 빛이 나는 그것을 빛을 등경위에 둔다고 했어요. 말 아래 두지 않고, 선반위에 둔다고 했어요.
모든 집안사람에게 비칠 수 있도록. .
할렐루야 빛이 누군데요? 빛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거든요.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있잖아요. 그 빛을, 예수의 빛을 비추고 살아야한다 어디서부터 요? 가정에서부터..
집안사람에게 다 비취느니라.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거룩한 삶이 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집안에서부터, 집안에서부터 우리는 집안사람들에게 그 빛을 비추는 자가 돼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나에게서 그 사람들이 뭘 봐야 된다고요? 빛을 봐야 된다고요. 빛이 누구라 했습니까? 예수그리스도. 아멘?
그러면 나를 예수를 비추고 살지 못하는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거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삶을 살고 있지 않는 거란 말이예요.
우리는 빛을 비추고 사는 자들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번째 특징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요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구속사적인 면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는 거.. 하나님의 말씀을.. 자~ 구속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어요. 뭐가 있다고 했어요? 객관적인 구속사와 그 다음에 주관적인 구속사가 있다고 했어요. 객관적인 구속사는 내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되는 거
주관적인 구속사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는 과정.
하나님 나라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참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다루시는 과정이, 각 개인마다 다루시는 주관적인 구속사라고 그랬어요..
성경 말씀을 볼 때 이제는 어떤 게 열리냐면요.
구속사적인 해석으로 해석이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 그게 이제 열리게 되어져 서 이해가 가기 시작해요.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거는 하나님께서 이를 다스리는 거구나!
근데 하나님 말씀만 그러는 게 아니라, 내 삶도 이제는 구속사적인 면에서 이해가 가 기 시작해요. 할렐루야~
주관적인 구속사로 하나님은 나를 지금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그리고 객관적인 구속 사로서는 어떻게 지금 나를 쓰시기 원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쓰시기 원하시는지. 지금 나는 어떻게 참가되고 있는지.
이게 이제 구속사적인 면으로 하나님 말씀뿐만 아니라 내 삶도 해석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전에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여러분, 이게 내 삶에서 해석이 되어진다는 게 참 큰 거예요. 이전에는 주관적인 구속사가 뭔지...
하나님이 내 삶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몰랐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을 때, 저 자신을 봐도 말씀을 읽으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뭔가 그 생각하고 읽죠? 그죠?
그러면 그건 누구 중심으로 읽는 겁니까?
나 중심.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지금 받아야 될 말씀 그걸 기대하고 성경을 읽어요. 그것도 잘못됐다는 건 아니예요.
그러나 원래 성경이 쓰여진 이유는 누구 입장에서 쓰여졌습니까? 하나님!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어 나가기 시작해야 돼요 제가 한번은 기도를 막 했어요.
“하나님 성경을 깨닫는 지혜와 지식의 그 계시의 영을 나에게 주십시오.
왜냐면 성도들을 잘 먹이려면 나를 갖다가 하나님이 잘 깨닫게 해주시고 잘해야 성도 들이 와서 먹을 건데 나를 안 열어주시면 내가 어떻게 먹입니까?
내 양이 아니고 하나님 양이지 않습니까?” 막 기도를 열심히 했어요. 그 때 하나님이 딱 말씀하시는데 뭐라고 하냐면..
“성경을 볼 때 너 입장에서 보지마라.” 그 성경을 읽을 때 나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 라보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원래 성경에 쓰여진 이유가. 내 입장에서 쓰여진 게 아니라 누구 입장에서 쓰여진 거 예요? 하나님 입장에서 쓰여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열어달라고 애타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딱 하시는 이야기가 내 입장에 서 성경을 보기 시작하라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내가 해석하는 거예요. 응? 그러니까 아~ 진짜 오리지널 뜻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안 그러면 내 입장에서 읽잖아요.
내 처지와 내 상황 속에 맞는 말, 대개는 마음이 그렇잖아요 읽을 때..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그런 생각으로 읽으라고 또 얘기하잖아요. 그죠? 그렇지만 그렇게 해갖고는 정작 하나님이 오리지널로 쓰신 그 목적과 의도를 전혀 캐 치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읽을 때 하나님이 어떤 마음에서 이걸 쓰셨을까? 이걸 생각하는 거예요. 무슨 얘긴지 알죠?
하나님의 입장에서 내가 이해한다는 건 뭐냐면, 하나님이 무슨 의미로, 왜 이야기를 쓰셨지? 딱 보면 내 입장에서 보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아 우리를 사랑해서 이렇게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할 렐루야~
우리를 사랑해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요.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아멘입니까?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성경이요 또 보면은 인물영성 쪽에서 개인들을 보면은 아~ 모든 게 다 주관적인 구속사와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들을 다루시는 입장,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게 하는 객관적인 구속사로 지금 성경이 쓰여져 있구나가 깨달 아져요~
근데 그 인생이 누구냐? 내 인생이라는 거예요. 나의 인생이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내 인생이 성경에만 안 적혀있다 뿐이지...
왜 안 적혀 있을까요? 왜 몇 명만 적혀있을까? 그 사람들은 승리했기 때문이예요. 할 렐루야 여러분들도 승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근데 하늘나라에 가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았나..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가 다 기록이 되어 있을 거예요. 천국에 가면 여러분 한명, 한명에 대해서..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 속에서 얼마나 내가 불순종 했고 돌아갔고 조금 더 빨리 갔으면 됐을 걸 이게 다 기록이 되어 있단 말이야..
그게 다 적혀있대요.
여러분 잘 적혀져 있을 수 있도록 승리할 수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해서 여러분 우리는 이 진리단계 들어온 거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요. 내가 진리로 살아지기 시작하는 단계.
진리가 뭐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내가 살아지기 시작하는 단계. 못살면요? 마음이 아픈 거야..
마음이 안 아픈 게 그게 이상한거야, 마음이 아파야 돼요. 마음이 아프면서 내가 왜 못살지? 하나님 말씀대로..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 말씀대로 못사는 게 내가 발견되기 시작하면요. 하나님 앞에 막 부끄러워져 그게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이예요.
부끄러워지는 거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워.. 괜히 날 보고 있는 거 같아. 앉아있어도 부끄럽고 서있어도 부끄럽고 막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운 사람 그게 이상한거야! 부끄러워야 돼.. 그게 지금 하나님 앞에 살기 시작하는 단계란 말입니다..
여러분 많이 부끄러워 질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성훈련 열달째 영혼과 영성 III 1-3 믿음의 종류 /서사라목 (1) | 2024.06.29 |
---|---|
영성훈련 열달째 영혼과영성 III 1-2 하나님이 육체를 주신이유/서사라목사 (0) | 2024.06.29 |
영성훈련 아홉달째 대인과 영성 II 4-2 이웃은 하나님의 형상/서사라목사 (0) | 2024.06.29 |
영성훈련 아홉달째 대인과영성 II 4-1 훈련 II/서사라목사 (0) | 2024.06.29 |
영성훈련 아홉달째 대인과영성 II 3-3 두 가지 허상/서사라목사 (0) | 2024.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