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194.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하나님으로 충만하라 - 서사라 목사님

하늘이슬 2024. 8. 7. 16:04

194. 바른영성훈련 - 대인과 영성 IV. 하나님으로 충만하라 - 서사라 목사님

 

두 번째 시간은 첫 시간을 다 못 맞춰서 이걸 다 마쳐야 그다음에 또 넘어가니까 오늘 두 번째 시간 원래 하기로 했던 것은 다음 주에 아마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던 거를 다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418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내가 너희에게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니까 이 사도바울이 지금 말하는 건데 방언을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내가 가장 많이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그랬죠. 그럼 방언을 많이 말하는 게 좋겠습니까? 많이 안 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렇죠. 방언을 많이 해야 됩니다. 요즘에 어떤 CD들 돌아다니죠. 그렇죠. 방언은 또 뭐 이상한 거다. 그런 거 혹시 못 봤어요? 저도 그 방언 처음에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서 제가 저 자신을 시험을 해봤어요. 내가 방언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가? 아니면 멀어지는가를 혼자 앉아서 실험을 해 봤어요.

과연 우리가 따따따따 하는 방언들이 정말 이렇게 마귀 방언인가?

그래서 앉아서 해봤는데 내가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더 친해지더라구요.

이거는 그러면 그게 뭐예요? 마귀가 준 게 아니죠. 그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그다음에 하나님과 더 친해지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CD가 좀 문제가 있구나. 방언을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아멘 그러니까 우리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조차 까지도 지금까지는 잘해온 것 같은데, 어느 한순간에 가서 또 다른 소리를 할 수 있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항상 내가 언제 넘어질까를 잘 봐야 돼요. 안 넘어지게. 아멘

 

로마서 826절에서 27절 보도록 합니다. 826절에서 27절 다같이 시작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하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러분 이게 방언이 뭔지에 대해서 여기 나와 있죠. 그죠.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 뜻을 잘 몰라요. 우리는 그러나 오직 성령이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내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리고 뭘 간구하냐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간과하는 기도가 뭐라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탄식인 방언이라는 거예요. 아멘. 그러니까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어떻게 인도함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를 많이 하셔야 돼요. 그래 가지고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나는 어느새 모르게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살고자 하는 방향대로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어요. 아멘.

 

그다음에 고린도전서 144절 한번 더 가봅니다.
다같이 시작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 덕을 세운다니 이런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 덕을 세운다는 거죠. 자기 덕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하고 친해진다는 얘기에요. 근데 예언하는 자는 교회 덕을 세운다잖아요. 근데 예언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죠. 각 교회에 예언한다는 권사님들 문제 일으켜요? 안 일으켜요?

우리 아까 우리 사모님 얘기하셨잖아. 똑같은 얘기예요.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사람이 교회 문제를 일으키고, 그래서 목사님들이 안 좋아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한쪽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하니까 차라리 나가십시오, 그런다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죠. 여러분 제가 저도 하나님이 예언의 은사를 주고, 저한테 또 방언통력의 은사를 저에게 줬기 때문에 또 지혜 말씀의 은사,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은사를 줬기 때문에 대개는 이렇게 손 얹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말씀을 주셔요. 그래서 제가 부흥에 가서 앞에 기도 받으러 나온 사람 다 한 사람씩 기도하면 그 사람한테 딱 맞는 말들을 다 줘요. 근데 제가 예를 들어서 상담사역을 할 때 누군가 와서 자기네들 보고 기도해 달라 그랬어요. 저는 방언통역이 되니까. 방언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막 기도해 주면서 하나님 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뭐라고 하시면 하잖아요. 근데 그게 사실은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도움이 안될 때도 있어요. 이게 경험상 처음에는 흥분하죠. 하나님이 진짜 다 말씀하시고 다 이렇게 맞게 하시고 가만 보면 다 맞아떨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도 흥분하는 거야. 하나님이 나를 막 쓰시는구나. 그런데요. 이 양들은 또 말한대로 가냐? 안 가요. 무슨 얘긴지 알아요? 하나님 말씀을 받아도 지 생각 섞어 갖고 그래도 아닐 것이야 하고 딴 길을 가요 그럼 차라리 나중에 보면 내가 그 말을 안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때가 있어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차라리 입을 다물었으면 그 사람이 모양이 내가 아무 얘기 안 했을 때보다 핸 것보다 안 했을 때가 오히려 더 낫지 않았나? 왜냐하면, 그 사람도 갈등하면서 지 갈 길을 갔거든. 그러니까 더 모양이 더 안 좋은 거예요. 차라리 모르고 갔으면 그 속에서 자기 깨달음이 또 있을 텐데, 죄는 짓고 싶고 가지 말라 그러는데, 그게 이제 결국 하나님 뜻대로 안 하면 다 죄예요. 가르쳐 줘도 특별히 나쁜 죄가 아니라 하나님 뜻을 알고도 다른 길을 간 거죠. 그게 인제 죄죠. 그 길을 가면서 자기 욕심 때문에 가면서 이쪽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가면서 일이 더 틀어지고 자기가 혼자서 깨달아서 오면 더 빨리 왔을지도 모르는데 반항하다 가다 보니까 더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아님 못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를 제가 경험하면서 하나님 차라리 저에게 가르쳐주지나 말걸, 마시지나 마시지. 왜 그분의 인생이 그렇게 풀리게 하셨습니까? 그런 의문이 저에게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준다 그래도 다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여기 보면 영성훈련 받으러 오셔갖고 은사 쪽에 치우친 분들이 지난번에 왔었어요.

누군지 저는 말씀 안 드리는데 부부싸움이 막 일어났는데 가정이 깨지고 그러는데 가서 기도해 주면 귀신이 나가고 가정이 회복된다는 거야. 처음에 들을 때는 너무 귀한 사역이다. 귀신이 떠나가고, 그 자리에서. 그다음에 가정이 그자리에서 헤어졌던 가정이 회복되면 참 좋다고 그런 생각했는데 여러분 그들에게 들어온 귀신은 내 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지 아니하면 또 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귀신 쫓는다고 해서 그 과정이 당장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원천적인 치유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니구나, 볼 때는 치유된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사람들 안에 있는 앙금이라든지. 예를 들어서 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이상은 또 동일한 현상이 또 일어나겠구나, 그거 제가 바보가 아닌데 그게 안 오겠어요. 그런 사역에 미쳐 갖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처음에는 잘 들어간 것 같이 보여요. 그러니까 자기들은 막 눈에 보이니까. 여기서 1시간씩 앉아서 2시간 앉아서 듣는 게 지겨운 거야. 무슨 얘기 하는지 알죠? 자기들은 그걸 봐야 되는 거 쫓겨나가는 걸 봐야 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하는 일은 뭡니까? 여러분 청소하는 일이에요. 하나씩 내려놓게 하고 그게 더 중요하겠어요? 맨날 귀신 쫓고 안 간다는 게 중요하겠어요? 청소하는 일이 더 중요하죠. 이게 나와야 돼요. 이게 그런 사람들 보면 정신없어요.
이 집에 갔다가 저 집에 갔다가 하는 것 같은데, 결국 나중에 또 들어보면 그 결과가 나중에 보면요. 동일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영성훈련 받으러 와갖고 여기는 기척도 안 일어나고 뭐 하지만 그냥 가버려요. 내 다 아는 얘기하는데, 내가 다 알고 있는 얘기를 또 한대, 내가 보기에는 별로 아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여러분, 여러분이 봤지만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어요. 그리고 막 이렇게 전화했고 저한테 대들구요. 그랬어요. 여러분 다 얘기 안 하지만. 근데 그분들이 딱 앉아 앉았을 때 앉았을 때 저에게 주신 말씀 있었어요. 하나님 근데 그분들한테 얘기 안 했어요. 해 봤자야, 못 알아들어,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 뜻을 알려줘도 받지를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말을 받아서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안 하죠. 제가 그럼 그 사람들은 뭐라고 했냐면 아 목사님 뭘 봤는지 얘기해 주세요. 전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얘기해 주세요. 지금 빨리 얘기하세요.
지금 빨리 얘기해 달래.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시켜갖고 또 그분이 와서 혹시 하나님 그분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데요? 우리 사모님이 알아서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내가 그래 딱 못을 박아버렸어요. 여러분 제가 왜 이런 얘기를 자꾸 하냐면은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언을 안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셔요. 차라리 내가 모르면 더 빨리 가요. 왜냐하면, 그분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날 사랑하잖아요. 그렇게 사랑하시는 그분이 나를 지금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사실은 모든 게 주님 손 안에 있잖아요.

그 땜에 돌아가고 있는데, 내가 그걸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받아보겠다는 내가 내 인생을 주관해 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얼마 전에 양로원 사역하시는 어떤 여자 목사님을 만났어요. 하나님 분명히 만나게 해 주셨어요. 왜냐하면, 분명히 인도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는 20~30초간에 서로가 만나는 장소에 있는데, 그분은 그 장소에 왔고, 나는 그 장소에 있었던 거예요. 20~301분만 틀려도 못 만났던 분이에요. 하나님 분명히 인도하신 게 맞죠. 그 상세한 얘기는 제가 안 한 이유가 이게 녹음이 나갈 때 그분이 알아들을까 봐 내가 못 해요. 만났는데 예를 들어서 한번 들어보십시오.

자기는 지금 남편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그 자기는 원래 이게 성악 전공한 분이에요. 성악한 대로 노래를 벨기에 가서도 해야 되고, 중국에 가서도 선교를 해야 되고, 뭐도 해야 되는데 남편 때문에 못 간다 이거야. 남편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 보내는 분이 누굽니까? 그렇죠. 하나님이죠. 남편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못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맡고 계신 거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잘 이렇게 잘 봐야 돼요. 눈이 열려져야 돼. 그럼 그분은 누구 탓하고 있겠어요.

항상 그렇죠. 사람 탓을 하고 있죠. 그죠. 근데 그걸 진짜 뒤에서 못 나가게 찾고 있는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인 걸 몰라요. 여러분 인생에서 여러분의 인생을 찾고 있는 분이 누굴까요? 하나님이에요. 내가 누구 땜에 못 한다? 저는 왜 인간인데 그런 마음이 안 들겠습니까? 그건 제 열정이에요. 모세가 자기 열정으로 일하려다가 어디로 쫓겨났어요? 미디안 광야로 오히려 하나님이 쫓아버렸어요. 그래갖고 몇십 년간 거 처박아 놨어요. 왜 그랬다구요? 자기 열정으로 일하려고 하니까. 여러분 저에게도 참 열정이 많아요.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싶고, 왜 나를 이 모양 이대로 놔두십니까? 저는 안 부르짖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그렇죠.

잘 봤네. 잘 봤네. 바로 직접적으로 제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이 앞에 앉아서 하나님께 주여 언제입니까? 이렇게 안하고 있을까? 없을까요? 마음을 찢고 울기까지 하면서 하고 있을 거 보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람 탓을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한테 가서 부르짖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요. 하나님, 진짜 나를 선교지에서 쓸 것 같으면 하나님 진짜 원하시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남편 마음을 싹 바꿔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제가 하나님 음성 한번 들었다고 해서 싹 바뀌어져 갖고 목사가 된 거 봐봐. 얼마나 하나님이 한번 건드리는 게 강한지 아세요? 우리 인간은 당해 내질 못해요.

조금만 가서 건드리면 돼. 그러면 싹 돌아서서 우리 남편이 예를 들어서 선교지 같이 가자. 지금 가자. 할렐루야. 그러고 가는 거지. 아멘 그런데 하나님 왜 안하고 계실까요? 말은 잘하네.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사람이 아니에요. 절대 사람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이야.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주신 분이 그분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안에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 그랬는데, 나를 지금 이 지경에 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면 이 지경을 통해서라도 이 지경도, 지금 이 상황도, 하나님이 합력해서 분명히 선이라고 하는 그 선을 이루기 위해서 이 과정이 필요하고 다 필요한 것임을 우리가 인정해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거기서 무슨 예언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믿음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느냐? 안 붙었냐는 거야. 그게 더 중요한 거야. 아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으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못 믿으니까 이리 쫓아다가 저리 쫓아다가 하는 거야. 해봤죠. 저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믿어지면 가만히 그냥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 그렇다고 해서 복음 전파하지 않아, 이 얘기가 아닙니다. 나의 근본이, 나의 근본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고, 하나님 말씀이 진짜고, 온 천지는 다 무너져도 하나님 말씀만은 꿋꿋이 서 있는다 그랬으니까, 말씀 그 한마디에 내 목숨을 걸어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한번 넘어지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집회에 가서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했는데, 그리고 손 많이 이케 하면 더 많이 능력받는 거~ 웃기고 있네.

아니 글쎄 들어봐요. 저도 누가 부흥사가 와서 내가 바닥을 떴다잖아. 내 몸이 떠 봤어요. 나도 경험한 사람이야. 그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한테 머리 손도 안 댔어요. 그냥 여기에 한 뺨 위로 이렇게 딱 했는데 제가 위에서 떠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 물 위를 걸은 게 이렇게 무게가 없어서 걸었구나를 이해를 했어. 그 순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뭘 얘기하고자 하냐면 이렇게 떴잖아요. 경험은 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그게 예를 들어서 내가 떠보고 더 기도를 많이 받고 한다고 해서 나에게 능력이 임하던 게 아니더라는 거죠.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건 믿음이야. 내가 믿음을 예수한테 두면 능력이 나타나게 돼 있어요. 내가 머리를 더 많이 눌림을 받고 더 많이 가서 무슨 기름 부음인지 뭔지 모르지만 뭐 불이 임하고 이렇다고 해서 나한테 능력에 임하는 게 아니라 그때뿐이야. 능력은 내가 정말 믿음이 하나님이 하시는 걸 믿으면 하나님 역사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순수할 때 하나님 역사를 많이 한다는 그 얘기예요.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우리는 내가 능력을 받아서 한다고 생각하면 No 나는 능력 있는 자가 아니야. 나는 하나님에 나는 도저히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할 때 오히려 하나님이 더 역사십니다. 능력 없는 나를 통해서, 능력 있는 그거 하시는 거예요.

내가 능력 받으러 돌아다닌다고 해서 고개를 드민다고 해서 능력이 많은 게 아니라니까dy. 능력은 누구라고요. 하나님밖에 하나님이 하신다니까. 우리가 잘못 알고 있죠. 내가 가서 머리 더 내밀면 능력 더 받아도 No 그건 기름 부으면 이제 잠깐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거야. 그 현상이 머무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고 나서 안 와요. 내가 능력이 있는 게 아니야.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오히려 내가 믿음을 하나님 말씀에 더 두면 하나님이 역사해 버려요. 아멘입니까? 능력 자체를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능력은 내가 아니에요. 오히려 힘을 빼야 돼. 하나님 나는 능력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옵소서. 저는 손만 빌려드릴 뿐입니다. 하나님 하라 그러면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손에 여기에 제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능력이란 게 써있습니까? 여기에. 이 손에 능력이 있다 라고 돼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내가 오히려 비워드리고 하나님이 하라 할 때 하나님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 하시고 제가 손만 올리겠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 역사하신다니까요. 뭐가 뭔지를 몰라요. 저도 그러고 돌아다녔으니까. 여러분

사도행전 238절을 한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38절 다같이 시작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8절 말씀을 보면 차례가 있죠.

너희가 회개하라. 하나님이 안 계시다에서 계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하라 이게 물세례와 똑같은 겁니다. 세례요한이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줬어요. 물세례를 준 이유는 세례요한을 보낸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님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의 백성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 세례 요한을 먼저 보냈습니다. 이게 회개하는 겁니다. 저도 예수 믿기 전에 예수라는 이름을 알기 전에 하나님부터 믿었어요. 여러분 저만 그런 단계를 겪었습니까? 하나님이 없다에서 있다로 변하는 회개가 일어났고, 그다음에 예수에 대해서 소식을 들었고, 그다음에 교육을 받고, 예수라는 분이 그런 분이었구나 나를 위해서 돌아가 주신 분이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구나로 듣고 영접하고 믿고 세례를 받았어요.

내가 하나님이 계시다라고만 깨달았을 때 나는 세례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이게 지금 차례를 얘기하는 건데, 회개,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역사,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이 없다에서 있다로 변하고, 그다음에 예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신 분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내 죄가 그분으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하는 그것이 나에게 믿음으로 들어오고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들어오고 그래서 저는 세례를 받았어요.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세례를 사람들 앞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근데 내가 믿는 그 순간에 믿는 내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그 순간에 나에게는 어떤 게 일어났다구요? 성령 세례가 일어나 버린 상태입니다.

사람들한테 세례받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거에요. 사람들 앞에서.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순간에 나는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에요. 아멘입니까? 그다음에 뭐라고 하고 있냐면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내가 예수를 믿는 동시에 죄를 사함을 받는 거죠. 예수 믿는 동시에.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지금 베드로가 한 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제가 베드로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는 동시에 성령 세례를 두고 성령을 받는다고 얘기를 했는지 아니면 베드로는 현상적인 방언을 말하는 거를 선물로 받는다고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게 뭐가 있다고요? 예수 믿는 거, 죄사함 받는 거,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는 건 동시적인 현상입니다. 아멘.

다음에 그러니까 내가 예수 믿고 예수를 믿는 즉시 죄사함 받고, 죄사함 받는 즉시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 세례는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동시적으로. 그렇지만 앞에 회개하는 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건은 내가 예수 믿고 회개하고 죄사함 받는 거하곤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 예를 들어서 이것이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이것이 방언이라고 한다면, 나중에 받을 수 있어요. 외적인 은사니까, 외적 충만이니까. 그러나 이 성경 구절에서전 238절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차례가 그대로 나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그다음에 우리 사도행전 31절에서 10절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31절에서 10절 다 같이 시작

제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걸으라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로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 이 사건이 뭐냐 하면 성전의 기도하러 올라갈 때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있었다는 거죠.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 앉은뱅이를 보고 이 베드로와 요한이 베드로가 뭐라 그러냐면은 그를 주목하여 보면서 하는 얘기가 베드로가 하는 얘기가 6절 다같이 크게 시작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예수 이름으로 걷게 된 거예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근데 여기서 보면 베드로가 하는 말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한테 있는 거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내가 나에게 있는 거를 너에게 준다는 거야. 나한테 내가 너에게 줄 금과 은은 없다는 거예요.

그 앉은뱅이는 먹을 것 구걸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죠. 돈을 조금 줄까 하고 앉아있는데, 그렇게 먹고사는 사람인데 근데 베드로가 하는 얘기가 은과 금은 나에게 없는데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서 걸어라. 예수님을 준다는 거예요. 예수 이름을.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가져야 될 게 뭡니까? 예수님이라는 거예요. 예수님 그분이 주시는 은사 이런게 아니라 내가 정말 갖고 있어야 될 것은 뭐라는 거예요?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나 너에게 줄 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내 가진 게 없는데 나한테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예수님을 주겠다는 거예요. 아멘이니까?

삶에서 예수님을 주시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지, 예수님이 주신 어떤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믿는다거나 무슨 얘기인지 알죠?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어떤 은사를 믿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내가 나에게 있어야 될 것은 이런 게 아니라 내 안에 내가 가져야 될 것, 내가 다른 사람의 줘야 될 거는 다른 어떤 게 아니라 뭐라는 거예요? 예수님이라는 거요. 예수님 외에 내가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예수님 자체를 의지해야 되는데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있다면 그건 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많은 시대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미혹되고 저렇게 미혹되냐?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그래요. 아멘. 여러분 예수님에게 집중할 수 있기를 주의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금이나 보석이나 다 소용없어요. 그죠. 그래서 우리가 자랑해야 될 것도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랑해야 될 게, 나의 나에게 임한 어떤 은사나 능력과 어떤 달란트가 아니라 예수님밖에 없어야 돼요. 아멘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자랑해야 됩니다.

참 할례당은 예수로 자랑하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육체를 행하지 않는 그런 자가 참 할례당이라고 그랬어요. 뭐로 자랑한다구요? 예수로. 여러분이 예수로 자랑할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되죠? 예수로 자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내 삶에서 누가 나타나야 돼요? 그렇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는 그거예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더라는 것입니다. 은사가 아닙니다. 내가 너에게 더 큰 은사를 보여줄 텐데 그게 뭐라 그랬어요? 사랑이라고 그랬어요. 사랑. 예수님은 이 세상을 어떻게 이기셨냐? 어떻게 이기셨어요?

사랑으로 이겼어요. 주님 저 내게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지금 뭐 하는 지, 무슨 짓을 하는지를 모르고 하는 짓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이긴 것은 사랑이었어요. 은사가 아니었어요. 사랑이었어요.

은사가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왔다면 13장은 사랑장이에요.

여러분 어떤 은사를 받아야 되겠어요?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

근데 그 사랑이 누구냐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내 안의 하나님을 가지는 거, 하나님이 진짜 우리에게 신앙생활에서 원하는 거는 뭐냐면 사랑이에요. 내 안의 하나님으로 충만하는 거예요. 예수로 자랑하고 은사받은 나를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촛대가 옮겨진다는 말, 이럴 때 써야 돼. 촛대는 어떻게 하면 옮겨진다고요? 예수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능력 받은 나를 자랑할 때 촛대는 옮겨져 버립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는 참 나는 뭐라구요? 참 나는 영이다. 영이다. 우리는 영을 쫓아서 살아야 돼. 내 안에 계신, 내 안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돼요. 성령의 지도와 인도함을 받는 삶, 그게 영에 속한 사람이죠.

영에 속한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처럼 은사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은사는 육체에 임하는 거예요. 그러다 가버려요. 하나님 쓸 때만 하는 거예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지도와 인도를 받는 삶, 그 삶이 첫째예요. 그 삶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데를 쫓아다니다 보면 거꾸로 가는 삶이야.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받는 삶을 살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 음성을 들어야 돼요. 아멘입니까?

성령님은 어디 계시다? 내 안에 몇 시간 계시다? 24시간. 항상 계시는 분. 그분하고 교통하는 시간이 많고 가장 큰 은사인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결국 내 안에 하나님을 넣어서 세상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주려고 하는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삶이라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딴 거 하면 벌써 여기는 눈이 가려지고 딴 쪽으로 흘러버려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서는 자랑할 것이 누구밖에 없다고요? 예수님 밖에 없어야 돼요.

내가 예수 외에 다른 걸 자랑하고 있다면 나는 벌써 하나님은 나에게 요놈~ 이러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말씀을 조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 그죠. 성령이 오시고 나서 사도행전 18절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주된 요지라고 그랬죠. 그렇죠. 18절 다같이 함 읽어보시죠.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이르러 뭐가 되라구요?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에 임했으니까 인제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증거거하는 겁니다. 근데 뭘 증거하느냐? 뭘 증가하느냐는 거죠.

사도행전 232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에 증인으로다
여러분 이 베드로가 지금 오순절 날 성령 강림한 걸 보고 지금 인제 이 베드로가 일어나서 사람들 앞에 설교를 처음 하는 겁니다. 거기서 뭐라 그러냐면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로다

31절 미리 보는 고로 다윗의 얘깁니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제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의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로다. 여러분 증인된 삶을 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도 똑같이 함께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는 부활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는 이 일의 증인이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전할 때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구세주이십니다 라고 마칠 수 있잖아. 근데 베드로는 뭐라 그러냐?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는 거야. 뭐야? 부활하신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다음에 어떻게 해요? 부활하신 거에요. 꼭 전해야 되는 거에요. 우리도 부활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산다. 아멘이니까? 복음 전할 때 예수님 십자가 못 박혀 죽은 걸로 끝나면 안 되고 그분은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이 되면 죄사함 받고 우리도 영원히 천국에서 부활해서 지금 있는 몸은 죽고 썩고 없어지지만 부활된 몸은 온전한 몸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할렐루야. 그걸 전하는 거예요.

부활의 종교, 부활의 종교. 그래서 여러분 이 사도행전은 성령 강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제자들이 초대 교회 때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부활을 증거했죠. 그리고 사도 바울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만났다 그랬어요.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도 예수의 부활을 같이 증거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도행전은 초대교에게 형성되고, 9장에서부터는 사도바울의 회심, 하나님을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니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예수님을 만났죠. 다메섹 도상에서. 그럼으로 해서 3일만에 돌아서가지고 예수를 핍핍박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거를 증거하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복이 예수를 만나는 복이 제일 큰 복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에 그게 가장 큰 복이에요. 그리고서 사도바올이 13장부터는 선교지로 떠나는 거죠. 123차 선교 여행에 대해서 쭉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여러분 아까 참 좋은 질문을 했어요. 서로가 우리가 점심을 먹으면서 나누는 말 중에 하나를 제가 정리할 게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 있을 당시 기적과 표적을 많이 행했다? 안 행했다? 많이 행했습니다. 근데 그분이 기적과 표적을 행하신 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신 이유가 뭘까요?

그분은 단 한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이유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기적과 표적이 목적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리기 위해서, 여러분 기적과 표적은 뭡니까? 떡입니다. , 보이는 떡이에요. 떡을 쫓아가는 자와 하나님 자신을 쫓아가는 자 틀리죠. 기적과 이사를 쫓아다니는 자와 하나님 자신을 쫓아다니는 자가 틀리죠.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적과 이사를 보여준 이유가 그분을 알리시기 위한 영적인 복을 위한 것이었어요. 근데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만을 원했던 거예요.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와 갖고 선생님이여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표적을 이미 많이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기가 차죠. 표적 부여주기를 원하죠. 그런데 주님 뭐라 했냐? 나는 너에게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야 내가 너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준밖에 없다'는 거예요. 요나는 밤낮 사흘을 뱃속에 들어가서 있었지만 나는 인자는 사흘을 땅 속에 있을 것이다. 그 표적밖에 보여줄 게 없다는 거예요. 그 표적은 뭐냐면 3일간 있다가 본인이 살아나신다는 거예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3일 만에 육지에 토해내서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나도 땅속에 3일간 있다가 살아난 그것이 너희가 봐야 될 표적이라는 거예요. 다른 표적이 아니라 그 얘기 뭡니까? 너희가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병고침 받고 귀신 쫓아내고 그게 표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표적은 이 악하고 험난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표적 쫓아다니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행했어요. 오병이어를 갖고 5천 명을 먹였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너무 좋거든. 저 사람만 붙들고 있으면 자기들 먹고사는 거야. 배고플 때 뚝딱 떡이 나오니까, 병이 아프니까, 병 고침 해주니까, 귀신 쫓아 주니까, 그럼 저 사람만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다 해결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그랬던 거야. 근데 하나님은 예수님 뭐예요? 그걸 피해서 사람들이 잡아갖고 임금 삼으려고 하니까 도저히 자기 의도하고는 전혀 안 맞거든요. 오히려 피해 갖고 어디로 가요? 저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러 갔어요. 기도하러 가서 뭐라 그랬을까? 본인이 하나님인데, 얼마나 근심하셨겠어요?

그러니까 보이는 떡을 쫓아가는 자들은 망해요. 나중에 하나님을 쫓아야 돼. 하나님. 하나님이 기적과 표적을 행하신 이유는 그걸 통해서 나를 알아라는 건데 오히려 그들의 눈은 떡에 있었어요. 기적과 표적에게 있었어요. 방향이 틀린 거죠. 그래서 주님이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야! 악하다 그랬어요. 악하다. 음란한 세대야! 똑바로 알아라. 내가 너에게 보여준 표적은 병을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예언하고 이런 게 아니라 누구라는 거예요? , 내가 누군지를 바로 알아라. 아멘입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꿋꿋이 서 있을 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여러분 안에 가득 차 있을 때 여러분은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십시오. 그럼 모든 게 풀리게 돼 있어요. 방황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과는 다르게 우리 인간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많은 이런 방황과 또 가지 말아야 될 길을 또 갑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과 광야에서 그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란 존재를 붙들지를 못해서 그들은 가난에 들어가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표적과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존재를 붙드는 그것이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런 자들은 믿음을 잃지 않고 가나안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그런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꼭 봐야만 믿는 자가 아니라 안 보고도 정말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그런 확고하고 굳은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가볍게 보여지는 것들에 의하여 흔들리고, 우리가 가볍게 움직여지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 정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붙들고, 그분의 말씀 붙들고, 살아갈 때 모든 악한 영들이 일곱길로 와서 우리를 미혹한다 할지라도 일곱길로 도망갈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내 안에 하나님으로 충만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많은 미혹과 또 악한 영들의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옵소서. 가장 큰 은사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사랑의 은사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주는 그런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를 주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실 것을 믿사하옵고 이 모든 말씀 예 수고 있으면 받도록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그다음에 우리 1분간만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2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받은 말씀대로 깨달은 말씀대로 하나님 제가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고 다른 것을 구했다면, 주님 용서하시고 내가 인제부터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하나님 내 안에서 가득 차 주시옵소서. 하나님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한번 기도합니다.
주여 부르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삶에서 예수를 주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예수를 주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살아가야 되는데 하나님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무엇보다도 내 안에 계신 그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해 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나와 교통하여 주옵시고,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나에게 감동 있게 하여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영감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부복되겠나이다. 우리는 아무런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오직 능력이 있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깨끗해지기만 하면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했습니다.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했습니다. 우리는 비우는데 힘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깨끗이 비워진 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장중에 붙으시고 하나님이 쓰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과 교통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님 우리 모두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하여 우리는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밖에서 하나님이 임하시는 줄 알고 밖에서 찾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어리석은 우리 모두를 반성하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서 더욱더 교통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